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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색을 넣는다는 것

by 구십

요즘에 꽂힌 생각은 나의 색을 인생에 입히고 싶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이 고민이 된다.


지금보다 조금 어린 시절 내게 있어 삶이란 원 웨이 였다. 하나의 길 위에 모두가 있고, 결승을 향해 레이스를 뛰는 것이라 생각했다. 금수저냐 흙수저냐에 따라 그 레이스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 여부가 달라졌고, 더 앞서나간 사람들이 그만큼 위대하고, 보상을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집단이 가진 시각은 이런 나의 생각을 더 강화했다. 이른바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교를 다녔고, 내가 느끼기엔 모두 본인들의 노력이 보상받아야 한다고 느끼는지, 학벌 또는 학점과 같은 것들이 곧 인생의 순위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소득 수준이나 사회계급이 높으면 보수적이라고 했던가. 학습되어 온 그 원웨이에서 나는 어디쯤 위치하는지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도 그들 중 하나였기에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을 하였다.


시험을 준비했다. 4년 정도로 꽤 길었다고 체감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엔 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었다면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갔을 텐데, 난 그와 다른 선택을 해서 나이가 들어 대기업은 쳐다도 못 볼지도 모른단 불안감이 들 때, 이게 레일을 벗어난 리스크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험을 붙고 나니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은 우리는 여전히 원웨이에 있고, 다만 또 다른 친구들보다 앞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원웨이 안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처음 취직을 하고 일 년 정도는 주말이 거의 없이 지냈다. 남들도 그렇게 산다는 말이, 그리고 이 레이스에서 상위권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 그런 생활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인생이 과연 맞는 인생인가 생각이 든다. 좀 더 정확히는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맞추느라 이렇게 노력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물론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본 각자의 인생은 생각보다 각각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사는 것 같다가도 이따금씩 아주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을 본다. 그들이 가진 색은 특이해서 눈에 띄고, 그게 내 눈에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그 사람들을 조금 더 바라보았다.


내 생각에는 그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생각의 출처가 본인인 사람들. 나는 인터넷도 많이 하고 책도 베스트셀러는 항상 다 읽기에, 세상에 떠도는 지식은 얼추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의 생각을 들었을 때,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논리를 듣는다면 그 논리가 조금 어설퍼도 신선하고 매력 있게 다가온다. 그 생각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왔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다른 생각은 다른 색을 만들어 냈다.


다른 생각은 다른 행동을 만들었다. 사람은 자기의 여유 시간에 하는 행동에 의해 정의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시간을 다르게 보냈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분석하고 또 확장하는 일들을 스스로를 동력 삼아하였다.


내가 아직 나의 색을 입히기에 늦지 않았다면, 나도 나만의 색을 갖고 싶다. 나의 색을 어떻게 입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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