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하고 있는 학원은 기존에 다른 학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이 내 친구와 같이 새로 오픈한 학원이다. 친구는 거기서 관리직이자 중학생들의 수학 교육을 담당하였다. 더 자세하게는, 친구의 포지션은 사실 관리 포지션이 강했다. 그러나 이미 관리는 원장님이 하고 계셨고, 내가 보기엔 친구의 포지션이 애매했다.
그런 애매한 포지션은 급여에서 드러났다. 친구는 일을 시작하고 여섯 달 정도는 돈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몇 달에서야 약간의 돈을 급여 형태로 받았다. 명목상으론 친구와 원장님은 동업관계이지만, 새로 차린 학원은 기존 원장님의 학원에서 투입된 아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친구가 그 학원에 기여한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친구의 학원에서의 포지션은 알바생으로도 대체 가능한 부분이므로, 그에 맞는 돈이 급여의 형태로 지급되었다. 수익의 분배가 아닌 급여의 형태 말이다. 더욱이, 급여가 지급되기 시작된 시기는 내가 학원에 들어와 강사로 일한 시기와 같았다. 내가 학원에서 고등학교 수학 강사로 일을 하면서, 급여를 주어야 하자, 나와 친구관계이던 친구에게도 급여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그런 것으로 이해되었다.
친구는 이런 관계에 불만이 있었다. 투자를 했음에도 제대로 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 관리직으로서 자신에게 일을 잘 알려주지 않는 점이 불만이었다. 내가 옆에서 보기엔 원장님은 본인이 헤드역할을 하고 부하직원으로서 친구를 사용하려 했다. 그러기에, 친구에게 실질적인 무언가를 알려주는 시점을 늦추는 것 같았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도 이해는 되는 게, 누군가가 평생을 걸쳐 얻은 어떤 팁을 그렇게 단시간에 얻으려 하는 것도 도둑놈 심보긴 하단 생각도 들긴 했다. 그렇지만, 친구의 입장에선 답답하긴 해 보였다.
그런 이유로 둘 사이에선 자잘한 언쟁이 오고 갔다. 그것은 각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었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와중에 원장님은 내게 연락을 해 이런 상황을 전하며, 친구가 떠나더라도, 나는 남아있어 줬음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상당한 폭의 급여 인상을 약속한다 했다.
순간은 정말 흔들렸다. 약속한 급여는 상당했으니까. 최종적으로는 친구가 떠나면 나 역시도 간다고 했지만, 그 순간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는 건 분명했다.
평소 의리 있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고, 그걸 놓아버리면 사람으로서 정말 별로인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그치만, 그 순간만큼은 그런 신념에 따라 당연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좀 부끄럽다 지금은.
학원에서 강사를 하는 일은 내게는 작은 일로 느껴졌었다. 지정된 수업 시간에 맡은 바 수업을 하는 것일 뿐, 그 외 큰 고민이 들어갈 부분이 적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선택의 폭이 적은 영역에도 선택할 것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어떤 스타일로 선택을 하고 살고 싶은지 다시 다잡아야겠다. 자칫 후회를 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