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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킬로그램 Jun 26. 2024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라는 시인이 쓴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다. 내용은 두 갈래 길을 만나 그중 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은 길을 골라 걸었고, 그중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시원 섭섭한 소회를 담은 것이다.

처음에 이 시를 읽었을 때, 이 시가 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은 길을 우리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 같았다. 누구나에게 자기가 특별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처럼, 나도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고, 그래서 이 시에 열광했다. 나는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었다. 그게 멋있어 보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특별해지고 싶었던 것은 흔히 말하는 정체성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나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었다. 이것만으로 나의 아이덴티티는 뚜렷했고, 성적은 명확하게 등수가 매겨졌기에, 전체에서 몇 등을 하는 게 곧 나의 뚜렷한 정체성이라고 믿었다. 대학교를 가서, 이런 나의 정체성은 옅어졌다. 나와 비슷한 취급을 받던 수많은 고등학생이 우리 학교를 왔고, 거기서 난 평범했다. 공부를 잘하는 건 더 이상 나의 정체성이 아니었다.

그래서 특이한 걸 더 쫒았다. 그것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줄 것 같았다. 누군가와도 구별되는 나의 반짝반짝한 특징은 남과 다른 인생을 사는 것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특이한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새벽을 지나 아침까지 여는 바에서 일을 한다던지, 남들은 기피하는 상하차와 막노동을 한다던지, 공대생이면서 경영경제에 관심이 많아진다던지. 나는 그 특이함이 나를 결정지어줄 것 같았다. 평범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직장을 얻은 뒤에도, 난 계속 특별한 경험을 하려고 했다. 돈이 있으면 놀러 갔다. 아니 없어도 놀러 갔다. 그렇게 스스로를 정의하고 확인했던 것 같다. 나는 특이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과 구분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금이 되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특이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예상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였다. 남들이 생각하는 범위, 이미 세상에 유명한 객관식 보기에서 그저 선택률이 낮은 보기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내가 가진 경험은 그렇게 특이하지 않았다. 문득, 특이한 경험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남은 건, 경험을 위해라고 소비했던 지난날의 선택으로부터 온 가벼운 통장 잔고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나는 지금 내가 하는 행동들에 의해 정의된다 생각한다. 또는, 조금 넓혀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아주 최근의 일이 나를 정의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일들은 특이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새 난 다른 사람들과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나뿐이 아니었다.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나는 그냥 나로써 정의되었다.

프로스트의 시에서 가지 않은 길은 그저 길을 달리 가면 다른 미래가 나옴을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을 선택해도, 그건 그것으로써, 그 길을 걷는 사람을 정의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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