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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어버이날

by 최점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기억하고 축하할 일이 많다. 계절적으로도 꽃들의 축제가 열리는 여왕의 달이다. 코로나 팬데믹 pandemic) 삼 년째다. 지구촌은 한 가족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알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불철주야로 K방역을 했고, 국민들도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예방접종도 3, 4차까지 맞았다. 힘든 시간을 견디는 동안 오미크론의 확산세가 줄어들고 이제 거리두기 해제되었다. 사람들이 일상을 되찾고 다양한 모임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달력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표시해놓았고, 어버이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려고 예약했다. 늙으면 어린이 된다는 말처럼 손꼽아 기다리는 동안 두근두근 설렘이었다.


아, 숨죽이고 살아온 날이 얼마만인가. 손님처럼 찾아온 봄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하였다. 선물 같은 일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날아갈 듯 즐거웠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남편은 예상도 못한 대수술을 하였고 병실 부족으로 입, 퇴원을 반복하며 수술 환자라 조심하고 두문불출을 하고 살았다 때를 맞추엊 남편의 친구들이 작년에 해주지 못한 위로 전화가 빗발쳤고, 만류하는 내 손을 뿌리치고 외출을 했다. 한정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삼 일 후부터 고열과 기침이 심해졌고 감기약을 나 몰래 복용을 했다. 혹시나 코로나에 감염되었는지 검사를 해보자가 권유했으나 펄쩍 뛰면서 약한 감기 증세라고 해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5월 7일 새벽에 나는 심한 오환에 시달렸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동안 일각이 여삼추였다. 아침 일찍 남편의 팔을 잡아끌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병원 문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고 우리 아파트 주민들도 몇 명이 나를 보고 눈으로 인사를 했다. 남편과 내 차례가 되어 한 사람씩 검사하니 의사 선생님이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며 7일간 자가 격리하라고 했다. 이럴 수가 내일은 5월 8일 어버이날이고, 모처럼 만에 가족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예약을 해 놓았는데 난감했다. 아득한 상황이 눈앞에 일렁거렸다. 다른 사람은 다 걸려도, 나는 걸리지 않을 거라는 오만이 무너졌다. 왜 하필, 어버이날에 우리 부부가 확진되어 꼼짝없이 외딴섬에 감금이 될 듯했다.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식당 예약을 취소하고 아무도 집에 오지 말라는 당부를 했지만 기분은 씁쓸했다. 남편과 나는 각자 방에서 고열과 기침, 가래, 구토에 시달리며 끙끙 앓았다.


일요일 날,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 앞에는 딸과 사위, 손주들이 도착해서 카네이션 꽃바구니, 케이크, 통닭, 탕수육 과일들을 산더미처럼 사다 놓았다. 문만 살짝 열어놓고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발길을 돌렸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고 한 장면을 연출하듯, 자식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좋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나는 행복한 비명을 질을 뻔했다. 식탁 위에 가득히 쌓인 진수성찬도 입맛이 없어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정성껏 준비한 사랑이 가슴 깊이 전달되었다. 위층, 옆 층 주민들도 확진이 되어 집에서 격리 중이었다. 마스크로 무장하고 손에는 비닐 장감을 끼고 포장을 뜯지 않은 음식을 골고루 쟁반에 담아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다. 다음날 저녘에는 우리 현관앞에 따끈따끈한 구운 달걀바구니와 손글씨로 쓴 감사 인사 쪽지가 담겨 있었다. 평소에는 서로 무심하게 지냈던 사이였는데, 그날 이후 높은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되었고 인정에 굶주렸던 지난날을 되돌아 보았다. 내가 먼저 이웃들에게 한발 다가서 손을 내밀지 못한 옹졸함에 미안해서 울컥거렸다.



이 정도면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코로나19 발병 초기에는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다. 지구촌 사람들이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 막막했지만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잘 적응해갔다. 바이러스는 세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오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일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은 지구촌의 모든 경계를 허물고 번졌다. 한 동안 하늘 길, 바닷길을 막아버렸다.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메스미디어의 방역 소식을 접할 때마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사람들의 동, 선을 따라 전파되기에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동안 정부의 방역지침을 준수하느라 밥도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 먹었다. 설, 추석 명절을 앞두고 거리두기 4단계로 격상되면 손주들이 많은 우리 가족은 인원 제한에 걸렸다. 핸드폰 영상으로 가족들이 안부를 전했다. 성당 미사도 비대면 TV평화 방송을 보고 드렸다. 이 질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들은 고인과 마지막 길을 배웅도 못하고 쓸쓸히 보내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던 날들이 지금은 현실이 되어 눈앞에 스쳤다. 인생에 휴가를 받은 심정으로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슈퍼백신을 한방 맞은 샘 치니 나쁘지 않았다. 특별한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잊고 살았던 소중한 보물을 발견하였다. 이웃사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지 알게 되었다. 이제 가족을 넘어 이웃, 사회, 국가, 지구촌 모든 사람들과 형제애로 연대하고 허물어진 인간관계 회복하고 서로 배려하며, 힘내세요, 용기 내세요. 친절한 말 한마디와 환한 웃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 함께 바꾸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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