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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용산 신학교 성당

by 최점순

제대가 두개

바티칸 공의회이전에는 신부님이 미사 드 릴때 신자들을 보지 않고 성체를 모셔 놓은 제대를 향해 드렸다.

옛 용산 신학교 성당

카톨릭대학의 전신이 부엉골 예수 성심 신학교가 1887년 용산으로 이전하여 개교한 근대식 신학교로서 국내에서

교육받은 최초의 한국인 성직자를 배출하였다. 예수성심 신학교 성당은 김대건 신부와 초대교구장 소브뤼기에르 주교, 뮈텔 주교의 유해가 모셨던 곳이다.


옛 용산 신학교 성당은 1902년에 축성한 건물이다. 현재 성심여자고등학교 교정안에 있는 성당과 예수성심수녀회 관부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신학교 건물은 성소의

못자리였던 당시의 자취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 천주교회의 첫 방인 사제였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가 축성 당시부터 1958년까지 모셔져 있었고,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소 부뤼기에르 (바르톨로메오)주교와 제 8대 교구장이었던 뮈텔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유해가 거쳐 갔던 곳이다.


2005년에 간행된 가톨릭대학교 150주년 기념 회보집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는 충청도 베론에 세워진 신학당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1885년10월28일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엉골에 예수성심 신학교가 문을 열고, 1887년에는 바로 이곳 서울용산으로 이전하였다.


당시강원도 원주부엉골에서 개교한 예수 성심 신학교는 교명, 교수진, 학생, 설립 이념등을 감안할 때 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의 직접적인 전신이 되고 있다.

예수성심 신학교에서는 국내에서 새로 선발된

신학생들과 말레이 페낭에 소재한 신학교로 유학 보낸 신학생들을 귀국케 하였다.

첫 졸업자로서 사제로 서품된 한인들은 강도영姜道永 마르코,1863~1929, 鄭圭夏아우구스티노, 강성삼姜聖蔘라우렌시오 이다.


페낭으로 잠시 유학을 가긴 하였지만 바로 이들이 한국 내에서 교육받고 배출한 최최의 한국인 성직자들이었고, 신학교를 개교한지 지 10년만의 일이다. 이로써 한국인 사제로 세번째에서 다섯번째 사제는,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지 50년 만에 탄생했다.

103위 성인 중에

유대철베드로는 역관유진길 아우구스티노의 장남이다.

1925년 7월30일 교황비오 11세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3월6일 한국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순교를 당하는 장면, 주스타니안 작

한세기의 증인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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