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에 30년을 보너스로 받았다. 자식들은 일찌감치 출가를 했다. 손자들도 다 자라서 할머니 손이 안 가도 된다.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도서를 추천받았다. 레이철 나오미 레먼 작가의 “할아버지의 기도”였다. 레이철 나오미 레먼의 책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저자의 외할아버지는 유태인 히브 라이 신비 철학의 전통을 이어오는 카발라 학자였다.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샘물이 솟는 듯 설렘이었다. 삶의 뒤안길에 한 번쯤 들어 봄직한 줄거리는 온 몸에 전율으로 받아들이었다. 가슴 밑바닥에 고여있던 정겨운 시간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신혼시절 시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축복의 기도였다. 인생살이는 좋은 축억도 삼켜버렸다. 요즘에서야 그 시절이 한 올씩 떠오른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옷깃을 스친다. 인연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이 신비롭다. 처음에는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가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 헤어지는 경우도 있고, 평생 형제처럼 이어지는 사람도 있다. 내 옆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살아오면서 읽었던 명작들이 있다. 수 많은 책을 통해 작가와 만나는 인연도 내 가슴에 소중한 보물보물이 되어 살아 숨쉬고 있다.
레이철 나오미 레먼 책 저자의 어린 시절이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다섯 살 때 외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책에서 다루었다. 그림처럼 눈에 선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살았는데 인생 말년에 의사가 되어서야 다시 생각났다. 그 후부터 환자들에게 영혼 육신을 살리려고 혼신의 노력으로 쏟던 중에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천사처럼 해맑은 모습에 매료되었다며 보물을 발견하듯 임상 실험 경험을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혈연, 지연, 학연 기타 모임에서 만나 서로 교감을 나무며 살아간다. ‘내 안에 보물’ 제목을 써 놓고 고민하던 중에 그녀의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았다.
내 가슴에도 값진 보물이 묻혀있다. 시어머니의 기도였다. 오랜 세월 잠자고 있던 소중한 기억들이 글감이 되어 다시 살아났다. 팍팍한 인생살이에 마음이 매 말라 갈 적마다 가슴에 고인 보물이 윤활유가 되어 내 목을 축여주었다. 시어머님은 슬하에 5남 2녀를 두셨다. 가난한 살림에 여러 자식들을 키워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입에는 언제나 따뜻한 축복의 기도를 달고 살았다. 명절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북적거리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자식들이 짐을 챙기는 동안 먼저 대문 밖으로 나갔다. 골목길에 세워둔 차들의 꽁무니에서 오른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자식들이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받아야 도회지로 떠난다. 십자 성호였다.
집을 나서면 이웃들에게도 축복의 기도로 인사했다. 이십 대에 남편과 결혼을 했다. 넷째 며느리의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시어머님은 은발이 덮인 곱슬머리에 구리 비녀를 꼽았다. 동네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기도 천사 할머니라고 불렀다. 고단한 삶이 깃든 아픈 사연들을 훤하게 꿰뚫어 보셨다. 길을 가다도 사람을 만나면 천주님,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했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모두 덤덤하게 받아들였지만 특별한 비법이었다. 표정이 어두우면 웃으며 말을 걸었고 헤어지면서 축복의 말을 건넸다. 시어머님의 머릿속에는 깨알 같은 기도 노트가 수 십 권이 들어 있었다. 그 명단에는 지구 반대편 월남 전쟁터로 떠난 자식 같은 수많은 군인들이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랐다. 아들 몇 명을 사지로 보내 놓고 맨 정신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분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큰 동서가 기도 바통을 물려받았다.
명절이 가족들이 모였다 흩어질 때 큰 동서가 축복의 기도를 바쳤다. 형제들은 그런 모습을 볼 적마다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착각을 일으키곤 했다. 이제 내가 다시 그 숙제를 물려받았다. 딸과 아들이 다녀갈 적마다 자연스럽게 손을 높이 쳐들고 기도로 축복하게 된다. 내 머릿속에도 기도 노투가 몇 권이 꽂혔다. 나는 무료한 여가 시간을 활용해서 글쓰기에 도전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곧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새댁 시절 시집살이했던 시린 이야기에서 여러 동서들과 배꼽을 잡고 웃었던 고운 추억이 명주실처럼 술술 풀려나왔다. 시어머님이 섰던 자리에 서 보니 철이 없었기에 부끄러워진다.
신혼시절은 달콤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혼자 두고 자전거를 타고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내성적이라 동서들한테 시시 컬컬한 이야기를 들어 내놓고 말할 수 없어 속으로 삭혔다. 시어머님은 자식들이 많아도 하나같이 소중한 하느님께서 선물이라고 생각하셨다. 나는 동서들이 부러웠다. 자상한 시숙들은 아기도 돌봐 주고, 연탄불도 갈고, 기저귀도 빨아 주었다. 모두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각자 방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남편을 기다리며 밤마다 시어머님의 말벗을 해드리기로 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손에 묵주를 들고 내 표정을 다 읽었다. 새 아가, 고민 있으면, 속 시원하게 말해봐. 하셨다.
아무리 사랑이 많은 어머님이시라도 조심스러웠다. 남편 흉을 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번번이 속을 털어놓을 좋은 기회를 놓쳤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모깃소리만큼 작게 말했다. 이야기를 들으시고 고개를 끄떡이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추임새를 넣어주셨다. 새 아가, 나한테는 어떤 말을 해도 다 괜찮다. 한 집에 사는 동서나 다른 식구들에게는 그 녀석 흉을 보지 말라. 미운 팔이 치이면 고운 팔도 치이게 마련이란다. 그 녀석 들어오면 경을 칠 테니 너는 잠자코 기다려라. 새벽이었다. 대문을 소리가 삐 그 덕 열렸다. 새벽에 남편은 고양이 걸음으로 들어왔다. 나는 속으로 오늘 딱 걸렸어.라고 손짓을 하며 고개를 쌩, 돌렸다. 어머님이 부르셔. 빨리 가 봐요. 안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쪼르르 방으로 들어와 귀를 열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리 기다려도 혼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단수 시어머님에게 매번 넘어갔다. 밭에서 일하시는 곁에서 어머님, 그이한테 경치신다고 했잖아요? 호미를 땅에 콕, 박아놓고 나를 쳐다보셨다. 내 말 새겨들어라. 집에는 눈, 귀가 많아 야단칠 수는 없단다.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그분의 말뜻을 몰랐다. 시어머님 나이가 되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남편이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으면, 나도 도매금으로 넘어갈까 봐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그날 이후 누구의 험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시어머님과 나는 보물 같은 인연이었고 훌륭한 맨 토이셨다. 시어머님의 기도를 전수받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도가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훗날 자식들도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바란다.
레이철 나오미 레먼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어린 손녀에게 말했다. 네 쉬 메래야, 종이컵 씨앗에 네가 매일 물을 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된단다. 생명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단다. 그분이 사람들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할 몫이란다. 저자는 어릴 적 기억을 살려 임상에 실험하고 책으로 발간했다. 나도 좋은 책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 내 안에 묻혀 있던 보물을 발굴하여 싹을 틔우고 레이철 나오미 레먼 작가처럼 좋은 글을 써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