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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한 용기

by 최점순

생명을 위한 용기


여덟 살짜리 아이가 학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목줄이 풀린 개에게 습격을 당했다. 아찔한 순간에 그 옆을 지나가던 택배기사가 손수레를 던져서 아이의 생명을 구해냈다는 동영상을 8시 뉴스에서 보았다. 그런데 한 사람은 슬쩍 피해서 가는 비정한 모습도 보였다. 용감한 택배기사가 개를 따라가며 저지하는 사이 아이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목숨을 구했다. 나도 어린 시절 들개에 습격당했던 적이 있었다.


농사짓는 일은 풀하고 전쟁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밭일하시는 아버지를 도와드렸다. 봄에는 파종하는 옆에서 잡풀을 뽑고, 여름이면 새끼를 밴 암소를 몰고 망태기를 짊어지고 검둥이와 들로 향했다. 소는 풀밭에 말뚝을 박아 놓으면 주위를 뱅뱅 돌면서 풀을 뜯어 먹는다. 김을 매다가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을 하곤 했다. 그곳에 있어야 할 소가 보이지 않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검정 고무신을 벗어들고 산꼭대기로 뛰어 올라갔다. 풀밭에 박아 놓은 말뚝이 뽑힌 채로 어디로 갔을까. 그때 바람결에 가까운 곳에서 워낭 소리가 딸랑딸랑 들렸다. 암소가 잔디밭에서 육중한 몸을 뒤척이며 새끼를 낳으려고 헐떡거렸다. 옆에는 들개 두 마리가 원을 그리며 돌았다. 순간 으악, 비명을 지르자 날카로운 이빨로 으르렁거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목이 터지라 아버지를 불러보아도 메아리만 되돌아왔다.


조금 후에 암소의 엉덩이에서 허연 막에 싸인 송아지가 우르르 쏟아졌다. 들개 한 마리가 잽싸게 암소를 덮쳤다. 새끼 낳은 암소가 모성 본능으로 뿔로 떠받으며 저항했다. 또 한 마리들개가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얼떨결에 내 손에 잡히는 돌멩이를 마구마구 집어 던졌다. 의식이 희미해질 무렵 “순아!” 하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여기예요.” 헉헉거리며 달려오셔서 막대기를 휘둘렀다. “이 못 된 짐승아, 썩 물러가거라.”라며 위협하니 들개가 뒷걸음치다가 두 마리가 한꺼번에 아버지한테 달려들었다. 왕년에 씨름 장사였지만 이번만큼은 힘에 부쳐 보였다. 순간적으로 광목치마를 훌러덩 벗어 흔들며 합세를 했다. 그때 손과 다리를 들개에게 물려 피를 철철 흘렸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 깨갱깨갱 소리를 듣다가 가물가물 정신을 잃었다. 양 볼이 얼얼하도록 뺨을 후려치는 통증에 깜짝 놀라 일어나니 들개들은 보이지 않았다. 암소의 고삐를 잡고 바지게에 송아지를 지고 집으로 왔다. 그날 밤부터 꿈속에서 들개울음 소리가 쩌렁쩌렁 들리면 소름이 끼쳤다.


해마다 개에게 물리는 사건이 이천 건, 하루에 6건 정도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강아지 때부터 교육을 통해 공격성을 조절하고 야성을 억제해서 사회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견주들이 우리 개는 위협적이지 않다며 목줄이나, 입마개를 하지 않기에 사고로 이어진다. 안타까운 것은 현행법상 개 물림을 당해도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한번 사람을 문 개는 반복적으로 문다고 하는데 안락사시킬 수 있는 법이 없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목줄이 풀린 큰 개를 보면 움찔 놀란다. 눈만 감으면 그때 상황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돌아보면 막대기를 휘둘러 나와 송아지를 구해주신 아버지도, 어린이를 구한 택배기사도 모두 생명을 위한 용기를 내신 분들이다. 반려견의 목줄과 입마개를 채우지 않고 활보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어디를 다녀도 안전하게 보호 받들 수 있는 법이 통과 되었으면 좋겠다. 택배기사님 덕분에 생명을 구한 어린이가 하루빨리 회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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