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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 (以心傳心)

선배님의 따스한 배려

by 최점순


추석을 며칠 앞두고 친한 선배님이 메시를 보내왔다. 색상과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2년 전에 거금을 주고 구입한 옷인데, 허물없는 우리 사이라서 아이보리 빗살 무늬 원피스를 그대에게 주고 싶다고 카톡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아무리 아끼는 좋은 옷이라도 체형이 변해서 내 몸에 맞지 않는다고 하셨다. 서로 이심전심 (以心傳心)으로 통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추석에 입을 만한 옷이 없어 고민 고민 하던 중이었다.



선배님은 옷을 구입한 후 딱 한 번 입고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고 한다. 깨끗하게 드라이해서 장롱 속에 고이 잠자던 옷인데 마음에 들면 선물로 주고 싶다는 마음을 전해왔다. 내가 입고 좋아 할 모습을 상상 한 것일까. 날씬한 그대가 입으면 잘 어울릴 같으니 얼른 우체국 택배로 부치겠고 한다. 사진 속에 옷이 명품 값을 하는지 한눈에 보아도 우아하고 품위 있게 나의 몸매를 빛내 줄 것만 같았다. 이번 추석에 고향방문 때 입고 가려고 선배님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막상 옷을 받으려 가려니 얼굴이 화근 거렸다. 일 년 전 선배님이 무릎 수술을 한 후 병원에서 한 달 동안 입원하였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방문을 못한 미안함이었다. 전철로 가는 중에 문자가 다시 왔다. 그대가 번거롭게 우리 집까지 올 것 없으니 역에서 받아 가라고 했다. 나는 그냥 집에 계시면 방문을 한다는 답신을 보냈다. 전철역에 도착해 보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태운 선배님의 차는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와 금방 도착했다. 옷장 문을 활짝 열자 아이보리 빗살무늬 원피스가 옷 주인을 알아보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나는 모델처럼 원피스를 입고 방안을 걸어 다녀보니 옆에서 꼭 맞춤형처럼 잘 맞는다며 행복해하시는 선배님을 뵈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작년에 무릎 수술하기 전에 꿰매 놓았다는 잠옷과 미색 핸드백도 덤으로 가방에 싸주셨다. 원 황제인가. 룰루랄라!!



이심전심이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로나, 글로 전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뜻이 아닐까. 선배님과 나의 마음이 그렇게 잘 통했는가 보다. 며칠 후 나는 주방용품들이 몇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덮인 그릇, 반찬통, 김치 통 등. 체형이 바뀌어 입지 못하는 바지와 티셔츠를 깨끗하게 씻고 빨았다. 상표도 뜯지 않은 물건이라 새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모난 큰 박스 두 곳에 담아서 재활용 수거 옆에 가져다 놓았다. 몇 층, 몇 호에서 내어놓았다는 메모장을 써서 필요한 분은 갔다 쓰리라고 적어놓고 들어왔다. 그런데 조금 후에 나가보니 하나도 없었다. 순간 나에게 불필요한 물건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요긴하게 쓸 수 있다는 나눔에 대한 좋은 인식이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바쁘게 살다 보니 치마 정장은 번거로웠다. 손주 3명을 키우는 동안 옷과 구두, 핸드백까지 구색을 갖추어 입을 여유가 없었다. 제일 편하고 입기 쉬운 난방과 바지를 훌러덩 거칠고 외출을 하곤 했다. 입었다. 그런 나를 배려해서인지 선배님은 고급 치마 정장을 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옷을 받아서 전철 다고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자 말자 남편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를 쳐다보고 꼭 철부지 같다며 구시렁구시렁거리면서도 청을 들어주었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더니 선배님이 무척 행복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친자매 이상으로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서 그럴까. 그분이 아끼던 옷과 핸드백의 나눔을 통해서 서로 끈끈한 정을 쌓아간다고 생각된다. 올 추석빔은 닥스 원피스를 입고 고향 방문을 하고 돌아왔다. 친척들이 어디서 구입했냐고 물어볼 때마다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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