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인생의 르네상스

by 최점순

인생의 르네상스

예고 없이 지구촌에 출몰한 바이러스는 삶의 질서를 360으로 바꿔놓았다. 처음에는 집에만 있으니 갑갑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적응이 되었다. 덤으로 주어진 여유로움을 이용해서 오래전에 미루어 두었던 책을 읽고 글을 써보았다. 글감을 찾아내면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흥미진진 한 글감報告나 다름이 없었다.



사람의 동선이 차단 되니 아무데도 갈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서 초등학교 때 써본 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워드를 두드리는데 복잡한 머릿속이 맑아졌다. 작가는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일기 쓰기가 발전하면 작가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현대인들은 전문직으로 글을 쓰는 분들이 많지만, 직장인들이 생활 글쓰기를 병행하고, 학생들, 전업주부들도 자전적 글을 써서 책으로 출판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어쩌면 과학, 의학 발달로 발전을 거듭할수록 내적 공허에 시달렸다. 유능한 인제들도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편리해질수록 타성에 젖어져 삭막하게 변해간다. 이런 징조들이 사회 전반에 물들어 다시 인문학으로 돌아가라는 신호가 아닐까. 서양 중세 시대 신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야 했던 절박함이 아니었을까. 이참에 현실의 삶을 밀어내고, 시처럼 소설처럼 어린 시절에 꿈을 꾸었던 시절로 돌아가려는 내 인생의 르네상스가 도래하지 않았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꿈을 꾸었던 아련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나의 마음은 변덕이 죽 끓듯 해서 계획을 세웠다가 변한다. 그런 나를 알기에 미리 여행 가방을 싸 놓았다. 남편의 삼시 세끼 식사 일주일 분을 준미해놓기로 했다. 국을 끓이고 밑반찬을 찬합에 골고루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하였다. 행선지를 어디로 정하 지를 걸어가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전철 노선을 훑어본 후 터미널로 향했다. 우등버스를 예매했다. 혼자서 가는 여행이라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창밖으로 진녹색 물이 뚝뚝 떨어지는 들판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한적한 시골 정거장에 내렸다. 길을 가는 할머님의 안내로 민박집을 찾아 나섰다.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을 일주일 쓰려고 얻었다. 등산 가방에 챙겨 온 짐을 풀고 조용한 오솔길을 걸었다.



무엇을 위해 들소 무리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을까. 나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해보았다.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인생의 목적이 어디일까.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단어들을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내가 만들어 놓은 네모난 틀에 가두어 두고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여자의 일생을 사명처럼 착각 속에 빠져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삶을 낯설기를 해보려고 새로운 출발을 시도한다. 동네 주민에게 물어서 시장을 찾아갔다. 과일과 야채 찬거리를 몇 가지 사 왔다. 나만을 위한 반찬을 만들어 소박한 방상을 차렸다. 저녁을 먹고 민박집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강변으로 향했다. 제철을 만난 금계국 꽃이 흐르러 지게 피어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머릿속을 비우고 달리고 달렸다. 가슴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확 날리는 기분이었다.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손자들의 할머니만 있었다. 인생은 일회성인데 나의 삶은 어디로 증발해 버렸을까. 칭얼거리는 또 다른 아기를 눈 감아 버리지 않았던가.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강가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가슴 밑바닥에 고인 흙탕물 같은 앙금이 모두 쏟아져 나올 때까지 멈춰지지 않았다. 휴, 괜찮아, 지금부터 내 인생의 르네상스를 펼쳐가면 되는 거야. 그동안 참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칭찬을 해 주니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신의 선물인 듯 덤이라 생각하고 30년 전으로 시곗바늘을 돌려놓았다. 이런 기회를 통해 나를 주인공으로, 시를 쓰고, 소설을, 써보면 재미있고 더 멋진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폈다. 늦은 밤에 창가에 앉아 별을 바라보며 시인이 되고, 소설의 주인공도 되어보니 재미있었다. 그러나 나의 가슴속 어디엔가 시린 옹달샘이 숨어있나 글을 쓸 때마다 손수건을 몇 개씩 준비를 해도 모자란다. 기억의 창고에 쌓인 소재를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듯 줄을 당겨도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인 것일까.



오늘 밤은 백설 공주가 되고 싶다. 내 마음의 채널을 돌리니 시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마치 난쟁이들의 왕국의 아름다운 백설 공주가 살았던 순간으로 돌아간 듯 행복해졌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자신의 마음에서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닐까. 시골에서 높은 창공을 쳐다보니 파란 하늘에 무수한 보석들이 자신의 빛깔로 반짝거린다. 나의 빛깔은 분홍색일까 아니면 파란색일까. 나의 이름도 잃어버리고, 꿈도 진흙탕에 묻혔고, 칠십 평생을 입고 싶은 옷, 먹고 싶은 음식을 누구에게 양보해왔을까. 아직도 너덜거리는 습관을 못 버려 용돈이 생기도 나를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웠다. 어쩌다가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도 선뜻 사지 못하는 바보가 되었을까.



이튿날 아침 뭇 새들이 재갈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강가에서 맑은 물로 세수를 하니 개운했다. 풀 섶에는 메뚜기가 뛰고 새들의 노래를 들었다. 맑은 강물에는 물오리 가족이 자맥질을 한다. 어미 오리를 꽁무니를 새끼들 졸졸 따라가는 풍경에 홀려버렸다. 아침을 먹고 밖에 나가니 화장품을 파는 상점이 눈에 띄었다. 빨간색 립스틱 발라보니 기분이 묘했다. 마치 신혼시절 새색시처럼 볼이 발그레 물들여진다. 아, 나도 고운 시절이 있었지. 이런 소소한 것들을 해보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 바랐던 내 인생의 르네상스가 아니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飛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