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복이 대세다. 좋은 세월을 만났다. 길쌈과 바느질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시장에 가면 옷이 천지에 널려 있어 입맛대로 살 수 있다. 길쌈을 못 해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험한 인생을 살아보니 마음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가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의 벼랑이 따라다녔다. 그때 나도 모르는 엄마를 닮은 추진력이 툭 불거나 왔다. 그날의 정겨운 노랫가락이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황금빛 들판을 일렁거린다.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엄마는 종일 삼밭에서 낫질을 했다. 토굴에 장작불을 피워 삼을 쪄내는 일은 손이 많이 필요했다. 동네 사람들은 두레로 낮에 찐 삼을 물에 푹 불려서 껍질을 벗겼다. 저녁이면 마당에 쑥으로 모기향을 피워놓고 엄마 친구들이 모여 앉아 삼을 삼았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후렴구를 붙여 고단함을 풀어냈다. 종갓집 며느리로 엄마는 시집을 왔다. 3남 2녀를 낳았다. 가난한 집 맏아들인 아버지와 결혼을 하고 보니 쌀독에 거미줄이 칠 지경이었다. 천하장사 소리를 듣던 아버지가 일본에 징용을 끌려간 후 가장의 부제는 하루아침에 가난으로 내몰렸다. 엄마가 겪어야 했던 냉혹한 현실은 죽음보다 두려운 시대를 관통하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유년의 푸른 뜰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느새 세월이 수십 년 흘렀다. 엄마 나이가 되었다. 꿈속에서는 아직도 그날의 베틀 자장가가 찰칵찰칵, 물레질 소리가 왱왱거린다. 문익점이 원나라에 가져왔다는 목화씨를 산비 알 밭에 뿌렸다. 여름내 풀밭에 엎드려 땅을 물고 살았다. 가을이 되면 하얀 목화 솜꽃이 몽실몽실하게 피었다. 겨울밤을 하얗게 새우며 무명베를 짜서 장날마다 몇 필씩 칼로 뚝 잘라다가 팔았다. 그렇게 장만한 돈으로 오라비들에게 유학길이 열렸다. 해방이 되어 십 년 만에 아버지가 돌아오기까지 긴 세월을 억척으로 살아냈다.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동생과 자식들까지 모두 멍에처럼 엄마를 짓눌렀다.
마당에는 하얀 눈이 융단처럼 푹신하게 쌓였다. 사각사각 싸락눈 내리는 소리와 욍욍거리는 물레질 소리가 밤새워 들렸다. 아침이 되면 옥수수자루같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무명실 구리가 한 광주리씩 쌓였다. 이른 봄이 되면 마당에 숯불을 피워 베틀을 걸고 실에 풀을 먹여 솔질을 했다. 마당에 통나무로 만든 긴 다리를 뻗쳐놓고 베틀 사이사이에 쇠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구멍을 뚫었다. 뒷다리와 앞다리를 세워 가랫장으로 고정시켜 놓고 베틀을 걸었다. 동지섣달 긴긴밤을 지새우며 베틀에 앉아 명주·무명·모시·삼베를 몇 필씩 짰다. 오일 장날 서면 옷감을 팔았다. 그 돈으로 재봉틀 한 대를 사 왔다. 나를 양제 학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엄마의 바느질하는 솜씨는 비단 같다고 동네 사람들이 칭찬을 했다. 손에 가위를 잡히면 옷감을 펄럭이며 춤을 추듯이 쓱싹쓱싹 잘려나갔다. 내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멋진 세라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갔다. 나도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그런 마음을 몰라주었다 그럴 때마다 심통을 부렸다. 골목길을 서성거리다가 하교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러웠다. 하지만 엄마는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여자는 공부보다는 길쌈을 배워두면 먹고사는데 실용적이라고 하셨다. 안방에 바느질하는 도구가 한가득 쌓였다. 한복 바지저고리·도포· 두루마기 분을 방바닥에 펼쳐놓았다. 옷감 위에 마분지 본을 올려놓고 가위로 사각사각 재단을 하고 굵은 실로 손으로 듬성듬성 시침을 떴다.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재봉틀에 앉아 박음질을 하면 삐뚤빼뚤 지나갔다. 온몸에 땀인지 물인지 줄줄 흘렀다. 양손으로 옷감을 노루발 밑으로 밀어 넣어 겅중겅중 실밥이 툭툭 끊어졌다. 나는 방바닥에 옷감을 패대 기치고 벌떡 일어나 들로 내달렸다.
밭둑마다 퍼런 뽕잎들이 너풀너풀 춤을 추며 반겨주었다.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다가 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끈질기게 바느질 배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고집으로 일관하다가 많이 혼났던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지금도 내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때 엄마는 양잠을 치느라 밤낮으로 뽕잎을 누에들에게 주면, 한잠, 두잠, 석 잠을 자고 일어나면 통통하게 살이 찐다. 소나무 가지로 섶을 얼기설기 올려주면 고치를 지었다. 솥단지에 뜨거운 물을 펄펄 끓으면 고치실을 뽑아 명주를 짜고, 목화솜을 틀어 물레질로 실을 감아 무명 원단을 짰다. 그 돈으로 논밭 전지를 일구어 놓은 문전옥답은 큰 아들의 사업 자금으로 팔려 나갔다. 공부를 시킨 아들들이 가문을 빛낼 거라는 엄마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인생이란,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았다. 살아온 뒤안길에는 항상 엄마의 베틀 자장가가 찰칵찰칵, 물레 소리가 왱왱거렸다. 내가 살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 때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못 배운 것이 아쉬움이 남았다. 도회지에서 진흙 같은 젖은 삶을 살아내려니 바닥에 물구나무라도 설 수밖에 없었다. 바느질을 야무지게 배워놓았으면 지금쯤 동대문 한복집 사장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베틀 자장가는 내가 힘들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웠다. 오래 세월 엄마를 부정했던 어둠에서 깨어났다. 어려서 호된 시집살이 덕분에 시어머님과 가족들에게 겸손하고 순명하는 지혜를 터득하였다. 그 덕분에 철부지 남편도 품고 살아 낼 수 있었다,
오래전에 엄마의 베틀 자장가는 멈추었다. 아직도 눈만 감으면 한 손에 솜을 쥐고 또 한 손으로 물레를 돌리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가파른 인생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내가 불렀던 베틀 자장가를 자식들도 보고 듣고 자랄 수 있었다. 언제 들어도 정겨운 엄마의 베틀 자장가는 잊을 수 없는 내 마음의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