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역 지하 일층에 ‘To the garden’ 도서관이 있다. 다양한 서적들을 배치해 놓았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승객들이 잠시 피로를 풀고 가는 곳이다. 그 옆에는 Hollys 커피집이 오픈했다. 차와 음료수와 빵도 팔고 있어 책을 보다가 출출하면 언제든 요기를 할 수 있어 편리하다. 환승역이라 직장인들이 출퇴근을 하면서 책을 보며 여유를 즐기다가 흩어지곤 한다.
지인분의 병문안 갔다 오는 길에 들렀다. 조용하고 아담한 도서관 분위기에 정감이 갔다. 진열해 놓은 책들을 뽑아 읽으면 지적으로도 윤택해지는 것 같았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더위도 식힐 겸 자주 책을 보러 간다. 인천공항에서 들어온 외국 관광객들도 분위기 좋고 넓은 공간이라 쉬어 가곤 한다. 한낮인데 직장에 있어야 할 청년들이 벽 쪽에 붙어 나란히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30대 여성이 유모차를 밀고 도서관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 중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가 앉은 옆자리를 서성거리며 진열해 놓은 책들을 올려다보았다. 아기와 눈을 맞추고 혀로 ‘까꿍’ 하니 양 볼에 보조개가 쏙 들어가면서 방긋 웃었다.
“어머, 아기가 너무 귀여워요. 몇 개월 되었나요?”
초면에 아기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백일 되었어요.” 아기만 보면 호들갑을 떠니 나는 영락없는 할머니였다. 친정엄마처럼 친근감을 느꼈는지 말을 걸어왔다. 아기를 키우며 소설을 쓰는 새내기 작가라 했다. 뜨거운 열정이 나에게 전해졌다. 원고 마감일이 오늘인데 감기에 걸려 자꾸만 보챈다고 걱정을 했다.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친정, 시어머님에게도 맡길 수 없는 사정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구청에 아기 돌봄이 서비스 이용해보세요.”라며 권했다. 원고료 받아서 베이비시터 시급 8,350원을 주고 나면 기저귓값도 안 떨어진다며 호호호 웃는다. 아기가 잠자다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기를 달래 줄까요?”
“예, 감사합니다.”
그녀를 오늘 처음 만났다. 진심이 닮긴 눈빛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딸자식 같아 마음이 아려왔다. 나는 아기 유모차를 끌고 도서관 밖으로 향하다가 아차, 얼른 내 핸드폰과 소지품을 그녀 책상 옆에 갖다 놓았다. 그녀는 노트북을 탁탁 두드리다가 고운 미소를 지었다. 한 시간 동안 역을 몇 바퀴를 돌면서 아이쇼핑을 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쪼록쪼록 배꼽시계가 울렸다.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흘깃 돌아보았다. 벌써 두 시간이 넘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노트북 화면만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아기는 새근새근 꿀잠이 들었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다 보니 친할머니같이 느껴졌다. 전철 승객들이 스치다가 내가 손자를 보는 줄 알고 관심을 보내왔다. “아기가 몇 개월이에요?” 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은 잘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눈대중으로 3개월이라고 대답했다.
도심의 오아시스 같은 ‘To the garden’ 덕분에 생면부지 그녀와 의미 있는 날이 되었다. 여섯 살 된 남자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책을 고르는 엄마 옆에서 만화를 보았다. 이 도서관에서 승객들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 간다. 책꽂이 옆에는 노랑, 진분홍 서양란도 화사하게 웃고 있다. 사철나무 잎들이 조명등에 반사되어 윤기가 반지르르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들락거린다. 소음과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방탄 유리 벽으로 둘러쳐 놓았다. 카페에서는 음료수, 커피, 빵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
단골손님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벽 TV를 설치해 놓았다. 5, 60년대 유행했던 <로마의 휴일> 영화를 흑백 화면으로 볼 수 있다. 명화까지 종일 틀어주니 책도 보고, 휴식도 취하고, 영화도 볼 수 있어 일석삼조다. 젊은 시절 명화에 빠져 감동했던 그 설렘이 되살아났다. 음악 소리, TV 소리, 어린이 쫑알쫑알거리는 소리, 엄마들 수다까지 오케스트라 연주회 같았다. 산모들을 배려해서 푹신한 소파도 다섯 개 정도 배치해 놓았다. 임신한 외국인 부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외국어를 몰라서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마음에 든다는 뜻인지 안 든다는 뜻인지 둘이서 계속 쫑알거렸다. 어깨를 위로 으쓱, 표정과 손짓이 위, 아래로 바쁘게 움직였다.
나의 오후 일정을 다 접었다. 손자녀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할머니가 되었다. 자장가를 흥얼흥얼 불러주니 아기는 세상모르고 곤하게 잠을 잤다. 2시간 동안 생면부지의 아기와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분유를 타서 먹여주고, 눈빛으로 교감하며, 트림을 시켜주니 시원해서 더 잘 자는 게 아닐까.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갔다. 마음이 바빠 그녀 옆으로 와도 노트북만 타타타 두드렸다. 아기 엄마라서 마음이 콩밭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잠에 빠진 아기는 얼굴을 찡그리고, 옹알이와 배냇짓을 했다. 2시간 30분 동안 쓴 원고를 마무리하는지 엔터키를 ‘탁’ 쳤다. 그녀는 그제야 나를 바라보면서 청년실업을 다룬 글을 썼다고 말을 했다. 소설가로서 자부심도 대단하고 뛰어난 커리어우먼 같았다.
도심의 오아시스는 아늑했다. 그녀가 시계를 보고 “어머, 죄송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군요.” 총알같이 분식집으로 달려가 김밥과 떡볶이를 사 왔다. 둘이서 모녀지간처럼 마주앉아 맛있게 먹었다. 시원한 오아시스 같은 만남을 나중에 펼쳐 보기 위해 마음의 책갈피에 끼워 두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유모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