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베란다로 향했다. 투두둑 투두둑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마구 해댄다. 화단에 소나무들이 바람에 몸을 싣고 휘청거린다. 그날의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며 허공을 손짓하던 순간이 빗줄기가 몰고 왔다. 천황에게 충성할 기회가 왔다며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징용을 해갔다. 10년 동안 5개국을 끌려 다니며 등뼈가 휘도록 누역한 대가로 노동력을 착취당한 임금은 도장 찍은 붉은 종이였다. 아버지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배에 찬 전대는 아궁이 속에서 활활 태웠던 그날의 불길을 잊을 수가 없었다.
태평양 전쟁 발발 몇 년 전이었다. 1930년대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진출하고 전쟁에 이기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조선인들을 모집하기 위해 감언이설로 돈도 많이 벌고 배부르게 먹고살 수 있다고 했다. 일본에 빌붙어 사는 앞잡이들이 농촌 청년들과 처녀들을 미운털이 박힌 사람들부터 잡아갔다.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는 벌초를 마치고 너무한 짐을 짊어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부릉부릉. 트럭 한 대가 길을 막고 순식간에 끌려 올라갔다. 가족들에게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다. 그때 터럭에 함께 타고 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천하장사 아버지였다. 낯선 항구에 몇 명씩 떨구어 놓고 배는 출항을 했다. 아버지가 배치된 곳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군함도’ 지옥의 섬이었다. 바닷물이 스며들어 탄광이 수시로 무너져 사람들이 매물 되는 현장에 조선인들을 들여보냈다. 낯선 항구에 몇 명씩 떨구어 놓고 배는 출항을 했다. 칠 흙같이 굴속에서 광부들이 삽과 괭이로 석탄을 캐냈다. 고된 노동과 영양실조로 쓰려진 사람들을 괴롭히는 쥐와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광부들이 아사 직전에 일을 못하면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 밤마다 화장터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똑똑 들리면 굴뚝에서 고향집 밥을 짓는 연기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해방 76주년, 2021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림 73년 이 되었다. 일본 강제 징용자들의 한은 풀어 줄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후손들에게 점점 잊히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 자식 된 도리로 달빛에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한다.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아시아 5개국을 끌려 다녔던 흔적이 장편소설 몇 권이 머리에 꽂혀 있었다. 어린 시절 동네 또래 친구들을 불러 모으면 머릿속에 책장을 넘기듯 재미있는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왔다. 배가 출항한다는 뱃고동 소리가 뿡 뿡 들렸다. 귀에 들리는 말은 ‘조센징’ 새끼라는 공통 이름뿐이었다. 일본 말을 알아듣지 못해 불러도 대답을 못하면 채찍질이 갈겨지면 온몸에 멍 자국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한편 엄마는 남편이 일본에 징용당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노모와 어린 자식들은 먹고살 길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가난으로 내몰렸다. 바느질삯 품팔이로 연로하신 시어머니와 시동생들과 자식들의 겨우 입에 풀칠하셨다. 가장을 빼앗긴 10년 세월은 엄마가 겪어 내기는 너무 가혹한 세월이었다. 아버지의 임금으로 받은 전포 (돈대요)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도 꿈속에는 고향의 청 보리밭이 일렁거리고 산천이 짙푸르게 펼쳐졌다. 볕에 눈이 부시는 상상을 하며 쌀밥에 우거지 된장국을 끓인 냄새가 솔솔 났다. 달콤한 꿈속에서 깨어나면 아침이었다. 허약한 조선인들은 견디다 못해 벽에다 “엄마 보고 싶어, 배고파” 낙서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지옥의 섬 군함도
어느 날 섬이 통째로 쩍 갈라져 솟아올랐다. 바다가 뒤집히는 진동에 사람들이 혼비백산을 했다. 탄광 굴이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흙더미에 매몰되었다. 일주일 후에 사망자 명단이 종이에 써 붙였다. 중국인 수 십 명, 일본인 몇 명 두 명, 나머지 수 십 명은 모두 조선인들이었다. 그날 밤은 새벽까지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똑똑 들렸다. 그나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밀기울이나 콩 깨 묵 한 덩이 배급받았다. 다른 지역 광산에도 한국인의 한이 서린 곳이 수두룩하고 했다.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희망으로 그림을 그렸다. 고향에 돌아가서 임금으로 받은 화폐를 바꾸어 논밭 전지를 사들이고 소도 몇 마리를 키우기로 했다. 이마에 전등을 달고 밤마다 검은 벽에 가족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그려놓았다. 작업복을 한 달에 한 번 받아서 걸레가 되었다. 조선인들은 알몸에 걸친 것은 삭아버린 팬티 (훈도시만) 엉덩이에 걸렸다.
허리춤에는 아버지의 배가 만삭이 된 아낙처럼 불렀다. 십 년 동안 모은 종이도 황국의 화폐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 지옥 같은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체형 덕분이었다. 신장이 팔 척이요, 힘은 황소도 떼려 잡을 수 있는 장사였다. 1945년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일본군과 미국과 연합군이 밀고 당기다가 전세가 불리해졌다.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쏟아부었다. “천황이 항복”하니 1945년 전쟁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배에 태웠다. 일본 본토에 원폭이 투하된 곳에 잔해를 정리하는 노역을 시켰다. 아버지는 해방이 되었지만 2년 후에 구사일생으로 희망의 전대를 배에 차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족들과 뜨거운 상봉을 하셨다. 그때 아버지의 배는 만삭이 되어 보였다.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띠며 배에 찬 전대를 방바닥에 주르르 쏟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임금으로 받은 붉은 도장을 찍힌 종이가루였다. 아버지는 넋이 빠진 사람처럼 종이가루를 얼굴을 파묻고 오열을 하셨다. 엄마는 영문도 모르고 빗자루로 쓸어 담아 활활 타는 아궁이 속으로 던졌다. 아버지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배에 찬 전대는 불길에 활활 타올라 연기로 사라졌다. 그 순간에 아버지는 실성을 한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