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칠 남매 넷째 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증조 할머님, 시아버지 내외분, 시숙들과 동서들과 칠 남매 자식들과 어린 조카들까지 한 집에서 북적거렸다. 엄마가 결혼을 앞두고 나에게 훈육을 하셨다. 여자는 결혼하면 친정부모는 가슴에 묻어 두고, 시부모님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공경하여라. 예, 대답을 했지만 시집살이하는 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항상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때 엄마처럼 나도 딸이 시집가는 날 당부를 놓았다
딸이 시집가는 날, “얘야,” 혼수로 필요한 물건을 모두 준비하였다. “너희 부부가 맞벌이하니 일 년 동안은 월급을 타서 시부모님께 갖다 드려라.”했다. 딸은 황당한 반응을 하고 “엄마, 월급을 몽땅 드리면 뭘 먹고살지요?” “얘, 시부모님이 아들 며느리를 굶기겠니?” “너도 한번 생각해 봐라.” “사돈 내외분이 아들 결혼시키느라 살림살이가 주름이 생기지 않았겠니?” “엄마, 시부모님은 경제적인 여력은 있으셔” 그렇더라도 “신혼 때부터 시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면 아기가 태어나서 보고 듣고 산교육이 되어 훗날 머리 위에 복을 쌓는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사위와 딸의 월급날이 되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딸의 목소리 “엄마, 시어머님이 무척 좋아하셔”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하게 울렸다. 그 엄마의 그 딸이 맞아. 내가 새댁 소리를 듣던 시절이 아스라이 스쳤다.
아침이면 사랑 방문이 활짝 열렸다. 시아버지는 자식들과 손자들의 출근, 등교하는 인사를 받으며 하루를 열었다. 첫째 아들부터 다섯째 아들, 손주 손녀들까지 줄을 섰다. 허리를 숙이고 아버지, 어머니, 회사에 다녀오겠습니다. 조카들도 배꼽에 양손을 모으고 할아버지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얘들아, 늘 길 조심해라.” 손자들에게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예, 예,” 싸리 문밖까지 목소리가 따라 나왔다. 가족들이 저녁에 다 모이면 시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하느님 앞에 사람은 모두 귀하다고 하셨다.” 가을 수확을 하면 이웃집에게 곡식이나, 야채를 나누어주셨다. 그런 모습을 떠올릴 적마다 삶의 스승이었다.
그런 세월을 뒤로하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중장비 회사 다니던 남편의 월급날이 되면 양복 주머니에서 누런 월급봉투를 꺼내 주었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밥상 위에서 가계부를 적었다. 성당에 낼 교무금과 시어머님께 부쳐드릴 용돈을 미리 챙겼다. 저축은 꿈도 못 꾸었지만 도시에서 검소하게 사는 비법을 터득하였다. 70년대를 도시에 팍팍한 살림살이를 사는 일은 버거웠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자녀들에게 훈육을 하였다. 결혼한 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및 반찬 몇 가지를 가방에 챙겨 넣고 버스를 탔다. 그런데 골목에서 딱 마주쳤다.
엄마를 본 딸은 화들짝 놀랐다. 양손에 포장한 봉지 두 개를 들고 고개만 까딱하고 줄행랑을 쳤다. 한참 후에 숨을 헉헉 거리며 돌아왔다. “얘, 무슨 일이야 “히히, 시어머님이 감기몸살로 앓아누우셔서 뜨끈한 국물을 사다 드렸다고.” 속으로는 그래 너, 참 잘한다 싶었지만 속물이 되었는지 가슴에서 찬바람이 휑하니 불었다. 그래도 비빌 언덕이 엄마뿐이었다. 맞벌이하는 딸을 위해 외손자 삼 남매를 키웠다. 인(人) 꽃이라는 말처럼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사람 사는 낙이 생겼다. 한 명은 등에 업고 양손에 아이들 한 명씩 손잡고 유치원에 갈 때마다 나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기들은 모방하는 선수들이라 양손을 배꼽 위에 올리고 앙증맞게 인사를 했다.
“우리 손자들 참 잘한다.” 스스로 뿌듯한지 엉덩이를 실룩실룩 으쓱했다. 딸과 아들이 명절에 오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다 의견 충돌을 한다. “조기교육으로 어릴 적부터 예의범절을 잘 가르쳐라.”라고 말하면 한 마디씩 한 마디씩 했다. “엄마, 꼰대 소리 들어요.” 너희들은 지식은 많이 배웠지만, 어른들의 평생 쌓아온 풍부한 경험과 지혜의 보고라는 것을 잘 모른다.
세월은 물레방아처럼 돌았다. 딸이 시집가던 날, 시댁 어른들에게 효도하라고 말해 준 지가 어제 같은데, 내 딸의 딸이과 아들들이 벌써 대학교를 졸업을 하고 사회 일원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딸에게 잊어 버릴만하면 한번씩 말을 한다. “애,” “아이들에게 엄마가 했던 말 교육 잘 시키고 있지?” 떨이 입을 삣죽거리며 “엄마는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애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겠지.” 내 말을 뚝 잘랐다. “얘, 동물의 왕국을 보아라. 짐승들의 모성애도 신비롭고 눈물겹더라.”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새끼들에게 전수해주는 일은 대단하더라
만물의 엉장인 인간이 후손들에게 좋은 문화를 물려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냐? 엄마는 이 세상에서 시어머님과 시아버지를 제일 존경을 드린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이치는 똑같다. 동서양의 종교와 성현들의 공통된 가르침을 보면, 공자는 '효는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했고, 불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보은을 가장 근본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는 에페 6,2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성경에 기록해 놓았다.
룻기 1, 16 나 오미와 룩의 이야기 중에서 루이 말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딸에게 성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백세 시대가 왔다. 요즘 6,70대 부모들은 평생 등골이 휘도록 직장생활을 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월급을 자녀들의 교육비와 결혼자금까지 대 주느라 노후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이제 늙고 병든 몸으로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였다.
자식들 세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가. 부모 세대나 자식들 세대나 모두 측은 해진다. 세대 간에 벌어진 소통부제의 간격을 좁혀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 핸드폰 하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편리하게 해결 된다.앞으로는 로봇이 어르신들에게 대화 상대가 되어 줄 날이 멀지 않았다. 이 거대한 흐름을 누가 돌릴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위대한 모성을 선물로 받은 엄마들이 자식들에게 부모님을 섬기는 효도 문화를 본을 보이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딸과 우리 시대가 처한 효도 문화를 전수 하는 지혜를 모아 보았다. 부모가 자녀들에 게대 윤리 도덕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하다가 세대 차이를 느꼈지만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라 엄마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