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기억을 살펴보기로 했다. 고요할수록 떠오르는 무의식중의 생각을 노트에 기록하고 큰 소리로 읽어 보았다. 먼저 마음에 파동을 느끼는 것은 어릴 적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는 동안 폭언이나 심한 꾸중을 들었던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수치심과 두려움에 떨며 성장을 멈춘 내면의 아이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 왜곡되게 받아들였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여린 마음에 용기가 나지 않아 말을 못 했다.
내 영혼 기억의 창고에는 상처받은 아픔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참으로 많았다. 글쓰기를 통해 한 올씩 풀어내다 보니 마음의 치유도 일어났다.
세상이라는 허허벌판에 홀로 던져진 존재다. 나는 나를 잘 안
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남들보다 못나고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고 이해하고 받아 줄 사람은 본인뿐이지 않은가. 경험을 통해 왜곡되게 받아들인 무의식 속에 침잠된 부정적인 느낌과 감정들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럴 때 채널을 바꾸든지 아니면 기분 나빴던 순간을 기록해 놓은 노트를 펼쳐보며 나를 달랜다. 내면에 상처받은 아이를 다독여주며 영혼의 성장을 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 펼쳐진 글들이 다른 사람에겐 하잘것없는 내용일지 몰라도 나에겐 소중한 나 자신이기도 하다. 어쩌면 엄살이기도 한 투정이 누군가에겐 영혼의 치유가 될 수 있기를 갈망한다.순례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도 나에게는 모두 하느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인연 있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글을 쓰는 시간을 많이 할애해준 남편과 가족, 막 써 내려간 초고부터 큰 도움을 준 글방 회원들께 더욱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2023년 4월15일
최점순
나의 수필 쓰기
소재를 발굴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즐거움을 생산하는 여행
과 같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너무 지난해서일까. 수필 쓰기는 가랑잎처럼 바스락거리던 감정에 촉촉하게 단비를 뿌려 주는 것 같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 삶에서 발효되지 못한 일상, 외로움도 몰아내 준다. 평소에 돌봐주지 못해 토라진 자아를 깨우는 시간이다.
‘새는 자유롭게 날아오를 때 행복하고, 작가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글을 쓸 때 행복하다.’
수필 쓰기는 내 생각을 키워주고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
게 한다. 이웃에게 닫혔던 마음의 문도 열리고, 섬세한 관심이 아니면 보이지 않던 들꽃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어린아이처럼 꽃잎을 한 장 두 장 세어보고, 향긋한 꽃향기를 맡으며 전신을 황홀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순간은 내가 온전히 살아 있음이다.
글감을 찾기 위해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마음이 가는 대로 전철을 타고 어느 간이역에 내려 오솔길을 걷기도 한다. 꽃도 보고 새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발밑에 기어가는 개미도 신기해하며 본다. 그러다가 번쩍 신선한 영감이 떠오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수필 쓰기 초년생이지만 열정만큼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오늘은 어떤 소재를 발굴해서 수필을 써 볼까, 길을 나서면 먹이를 찾는 매의 눈처럼 주위를 살피게 된다. 볼을 스치는 바람결에도 알 수 없는 행복 바이러스가 비눗방울처럼 몽글몽글 날아오른다. 오랜 세월 묵힌 밭처럼 잡풀이 우거진 내 마음속을 헤집다 보면 또 다른 나와 허물없는 대화를 통해 과거의 아픔이나 슬픔도 어루만질 수 있다. 진솔하고 좋은 글을 쓰려고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문장을 음미하다 보면 마음의 치유도 된다. 젊은 시절 현실의 벽을 넘으려고 남편과 각을 세우던 앙금들도 글 소재로 당겨본다. 창작의 길은 고된 작업이지만 보물을 발굴하는 심정으로 접근한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생각이 모인다. 팍팍한 시간들과 마주하면 사금파리처럼 깨어지고 흩어진 파편들이 사방에서 끌려온다. 하지만 여린 몸짓으로 나를 둘러싼 인식의 벽을 넘기가 쉽지는 않았던 순간들이 시퍼렇게 멍울져 있다. 조나단 갈매기는 부러진 날개로 꿈을 향해 비장한 결기로 도전을 반복하며 넓은 창공으로 솟아올랐다. 나의 수필 쓰기도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더높이 멀리 날아오르기 위한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시간을 나의 것으로 잡지 않으면 손안에 든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버린다. 감탄사를 잃은 지가 오래되었지만, 녹이 슨 머리와 근육의 퇴화를 늦추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노력한다.
초고를 읽다 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다른 사람이 글쓰기에 매
진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서글퍼지기도 한다. 축축하게 젖은 나의 삶의 행간들이 나열되어 있다. 수준 미달인 나의 글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기가 민망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투박하게 쓴 글이지만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평범한 일상을 그림처럼 그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은 예전에 느끼지 못한 희열이 솟아난다. 그것을 나만의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곡진한 삶을 돌아보면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으로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이런 마음의 변화를 가족들에게조차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학습된 부모님의 훈육 때문이었을까. ‘여자는 참아야 한다. 여자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입만 살아서 못 쓴다.’ 이런 편견이 마음속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유교 사상이 지배적인 부모님 밑에서 나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
아직도 사람들 앞에 서면 두려움에 떨린다. 그런데도 부족한 나를 인정해 주고, 다독여야 한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풍요롭게해주는 글쓰기는 또 다른 기쁨으로 연결이 된다.
수필 쓰기는 신비한 마력이 숨어 있는 것일까. 나의 마음에 노화를 지연시켜주고 성장할 기회를 주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를 생산하게 해준다. 수필을 쓰는 과정에서 내 생각을 간결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나의 수필 쓰기는 살아온 인생에 대한 선물이다. 세상이란 풀
밭에 잡초처럼 우거진 글 소재들을 발굴하고 그러모으면 된다. 잊고 살았던 내 안의 나를 발견해서 사는 게 즐거움이요 행복이 아닐까. 밤늦도록 고독과 싸우는 나의 수필 쓰기는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내면의 희열을 맛볼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