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의 벗

by 최점순



추운 겨울 전철역 바닥 젊은이가 신문지를 덮고 잠들어 있다. 신발 밖으로 삐죽이 나온 발가락이 떨고 있다. 나는 측은한 생각에 그에서 다가서자, 새댁 시절 노숙자의 옷에서 풍기던 악취가 바람결에 훅 밀려오며 시숙이 생각난다.


시숙은 노숙인의 벗이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시골 기차역에는 조기 퇴직한 사람들이 가족을 등지고 떠돌이로 방황했다. 시숙이 어려운 사람을 돌봐 준다는 소문을 퍼졌는지 떼를 지어 물려왔다. 밤이 늦도록 그들의 아픈 사연을 들어주고 힘내라는 용기로 다독여 주었다. 그날 밤은 따뜻한 아랫목에 하룻밤 재운 뒤 아침에 가족들에게 돌려보냈다.


시숙은 칠남매의 맏형이었다. 우체국 공무원의 봉급으로 겨우 살림을 꾸렸다. 월남 전 중이라 시부모님은 장남만은 군대를 보내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는 사이 동생 셋은 차례로 입대해 군 복무 중이었다. 그분은 나중에 입영 영장을 받아 파월 장병으로 비둘기부대에 참전했다. 살벌한 전쟁터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곳이었다. 적을 발견하는 즉시 총을 쏘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적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고 했다. 고향에 두고 온 동생들 또래였기 때문이란다. 스무 살 정도 된 적군 병사를 붙잡았지만 죽일 수 없어 돌려보내면 아군부대의 위치가 발각되어 기습공격을 받았다고. 정글에는 베트콩뿐만 아니라 파충류들이 속출했고, 심약하던 그분은 후방으로 전출되어 해병의장대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고엽제로 인한 오랜 투병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


그분은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탄광에 취업했다. 하지만 철부지 동생들은 형님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밖에 나가면 동네 친구들과 싸움을 일삼았다. 그때마다 맏형의 책임감을 느꼈는지 조용히 불러서 타이르곤 했다. 몇 년 동안 탄광에서 근무하다가 퇴직 후 사비를 털어 거리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형제로 섬겼다. 선행을 실천하는 그분의 인품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본받아야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숙은 천주교 신자였다. 어쩌면 그의 헌신적인 사랑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는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흩어져 살던 동생들이 명절에 모이면 경로당으로 데리고 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막걸리 한 잔씩 권해드렸다. 논둑길을 걸으며 형제간에 밀린 이야기도 나누었다. 한동안 그분의 선행은 계속되었고, 거리를 떠도는 사람을 데려오면 밥상 차리는 일이 내 몫이라 나는 불만이 쌓이기도 했다.


겨울밤, 그분은 길을 잃은 양을 찾는 예수님처럼 기차역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러곤 손발이 고드름처럼 뻣뻣한 행인을 또 데리고 왔다. 낯익은 풍경이지만 그날은 가족들이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분은 손수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물을 데운 다음 노숙인의 누더기를 벗기고 태연하게 얼굴과 손발을 씻어주었다. 하룻밤 재운 뒤 아침밥을 먹여서 처자식에게 돌아가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동생들은 형님에게 용돈을 챙겨드렸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그 돈으로 걸인들의 옷을 사 입히거나 신발을 사 주었다. 동생들의 살림도 넉넉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전쟁터에서 겪었을 사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연민의 정이 남달라 돈이 떨어지면 양복을 벗어주기도 했다. 그런 시숙도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다.


추석에 고향을 방문했다. 황금빛 들판에 벼 이삭이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그분이 떠난 집은 허전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던 따뜻한 모습이 새롭게 떠올랐다. 논둑에 세워둔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가 그분의 모습처럼 언뜻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때는 존경하던 시숙이 동네 유지들과 어울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품고 살았다. 서울에서 신앙생활을 통해 그분의 참사랑 실천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분의 인품을 닮고 싶었다. 삶은 늘 그렇듯 녹록하지 않았다. 남편의 월급만으로 가족의 세 끼를 해결하기도 빠듯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가내수공업 일감을 받아 반찬값을 벌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도움을 주는 일은 돈이 전부는 아니지 않나.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나눌 것은 많았는데, 나는 보고 듣고 배운 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시숙의 삶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저 노숙인은 어쩌다 추운 겨울 신문지를 덮고 새우잠을 자게 되었을까. 나는 언제쯤이면 시숙의 뜻을 닮아 갈까. 아침햇살이 사랑에 빚진 내 얼굴을 붉게 물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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