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면

by 최점순


햇볕이 황금빛을 흩뿌린다. 모자 쓰고 소매 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솜이불처럼 끝도 없이 펼쳐졌다. 공원 옆에 있는 다세대 담을 끼고 걸었다.

머리위에서 똑, 떨어지는 소리가나서 내려다

보았다. 농익은 빨간홍시가 발등에 떨어진 적은 난생 처음 경험했다. 잔디밭에 떨어졌으면 냉큼 주워 먹었을 텐데, 길바닥에 떨어졌다. , 천고 마비의 계절 말이 살찐다는 풍성한 추석이 가까위 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옛날부터 추석은 제일 큰 명절이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송편 빛을 햅쌀을 불려 떡방아 간에서 쌀가루를 빻아왔다. 햇밤이나 콩을 삶아 속거리도 장만했다. 제사상 차리는 준비에도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형판이었지만, 밤을 꼬박세워가며 자식들에게 추석빔으로 색동 한복을 만들어 입혔다. 추석날은 차례를 지내고 동네 친구들과 때때옷을 입고 널뛰기와 윷놀이를 했다. 사람들 숫자를 나누어 편을 갈랐다. 또 야, 개야, 걸이다, 모야모야. 윷이다, 신바람이 났다. 저녁에는 사람들이 보름달 뜨는 것을 보고 소원을 빌기 위해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캄캄한 야 산과 들에서 아이들은 달뜨기를 기다리며 깡통에 소나무 관솔을 넣고 끈을 길게 묶어 빙빙돌리며 쥐불놀이를 했다. 그랬던 시절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몇 년 전만 귀성행렬로 밤늦도록 불을 밝혔다. 동서남북 뿔뿔이 흩여져 살던 형제자매들이 명절이 되어야 부모님 얼굴도 뵙고 차례를 지내기 위해 고향방문을 했다. 추석날 상차림에 오르는 오곡백과를 정성껏 차려 놓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술을 한 잔씩 따르고 숟가락, 젓가락을 옮기고 조상님들께 절을 했다. 종갓집 제사는 자식들이 수 십 명 되어서 절절하고 음복주 마시는데 한나절씩 걸렸다. 돌아보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었다. 코로나 19로 2년째 거리두기한다. 작년부터 가족들이 모이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보낸다. 올해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이 내려오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보니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 추석 무렵이었다. 시퍼런 땡감을 따서 옹기 항아리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이불을 덮어두었다. 며칠 두었다가 뚜껑을 열면 떫은맛은 곰삭고 달달한 감 항기가 진동을 했다. 아버지는 추석에 쓸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삭힌 감을 한마다리를 바소지게에 지고 시장에 갔다. 다 팔아 봐야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꼭 필요한 것을 얼추 살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감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여름 내 파랗던 감이 가을 볕에 누르스름하게 익어간다. 땅에 떨어진 홍시를 보고 있었다. 내 옆으로 다섯 정도 꼬마가 아빠 손을 잡고 지나가다가“아빠, 홍시다.” 신기한 듯 나무를 한번 올려다보고 땅에 떨어진 홍시를 쳐다본다. “아빠, 감나무가 이렇게 생겼어” “음. 넌, 처음 보는군아?” 책에서는 많이 봤지만 나무에 달린 감을 처음 보았어요. 그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듣고 나 혼자만 아는 비밀을 간직한 사람처럼 요즘아이들은 감나무도 모른는다는 생각에 픽 웃었다. 여름내 짙푸르던 감잎도 익어가는 감을 닮아가는지 고운 빛깔로 변해간다.

시절을 변함이 없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사과는 빨갛게, 배는 황금색, 대추와 감도 달콤하게 익었다. 농부들이 봄부터 씨 뿌려 파종하고 키워서 모심기를 했다. 곡식들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무럭무럭 자란다고 한다. 여름 내 뜨거운 태양을 업고 비지땀을 흘린 수고 덕분에 들판의 나락들이 알알이 영그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른들 말씀에 사람이 너무 뻣뻣하고 으스대면 벼를 빗대어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비유를 하셨다. 속담에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불청객인 참새들도 공중에서 빙빙 군무를 펼치다가 허수아비가 없는 논으로 한꺼번에 내려 꽂혔다. 새들이 휩쓸고 지나간 논바닥에는 왕겨가 수분하게 쌓였다. 사람들이 지어 놓은 나락들을 나누어 먹는 일은 농부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토요일 오후 2시다. 오늘따라 파란 하늘 동산에는 솜이불이 수 십 채를 펼쳐 놓은 듯했다. 내 머리 위에 뭉게구름이 그늘을 드리우고 흘러간다. 사람의 습관은 신기했다. 이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길거리에서 감나무를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기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긋힐긋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땡 양지에 멋하는 사람이야 수근거리는 눈치였다. 동심으로 돌아가 가을풍경에 한껏 취해버렸다. 까치가 잔디밭에서 놀다가 푸드덕날아오르고, 코스모스가 실바람에 하늘하늘 춤을 춘다. 억새풀이 손에 붓을 들고 부지런히 자연의 넓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물감으로 채색되고 있다.


뿡뿡. 배달 오토바이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길 건너 할아버지의 제치기 소리도 정겹게 들리고, 주인 손에 목줄이 잡힌 강아지가 풀 섶에 뒷다리를 살짝 들어 올려 영역표시하며 지나갔다. 혼자 중얼거리며 하루 빨 이 코로나가 물러가고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를 소망해 본다.

대보름날 달님에게 소원을 빕니다. 올해는 자영업자들과 모든 직장인들 소상인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장사도 잘 되고 청년들은 좋은 직장을 얻어 시집 장가를 가서 자식을 많이 낳아 나라를 번성하게 해 주십시오. 독거어르신들과 한부모 자녀들, 외국근로자들, 탈레반을 탈출한 분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분단국 가인 남북이 평화로운 왕 내를 할 수 있도록 빕니다. 내가 소원을 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듯, 아빠 손을 잡은 꼬마도 잠자리채를 들고 멀리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홍시 한 봉지를 5000원 주고 샀다. 눈으로 볼 때는 달달해 보였는데 막상 한 개를 먹어보니 떫떨했다. 어린시절 땡감을 소금에 찍어 먹던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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