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강을 넘어

by 최점순

인터넷으로 친구 찾기를 했다. 며칠 후 카톡에 단체 흑백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아무리 보아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돋보기를 쓰고 한참 들여다보니 흐릿한 낯익은 모습을 어른거렸다. 아, 세상에 졸업한 후 이름도 얼굴도 다 잊어버렸는데 동창회 한다는 연락이었다. 어린 시절 옆 집사는 친구 눈앞에 어른거렸다. 고향에는 동생이 과수원을 하고 있어 일 년 에 한 번씩은 친정에 가지만 친구들 소식은 감감했다. 시골도 귀농 바람이 불어 토박이 사람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물갈이가 되었다. 그동안 단절되었던 유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에 서울역에서 기차표를 예매해놓았다. 아침에 일찍 여행용 가방의 옷가지를 챙기고 해외여행 가는 사람처럼 손에 땀을 쥐고 서성거렸다. KTX 기차표가 물먹은 창호지처럼 되었다. 승객들이 몰려나가는 통로를 따라 개찰구로 나가 좌석에 앉았다. 달리는 차창을 스치는 산과 들판을 내다봤다. 그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기억의 강은 카메라로 찍은 듯이 스치며 흘러간다. 도시생활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어린 자식들이 그 대열에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한 시간들, 누구의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유년에 꿈꾸던 기억의 강은 세월 속으로 멀리멀리 떠밀려 가버렸다.

눈 깜짝 사이에 기억의 강을 넘어왔다. 사방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불통이 되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전화로 야, 너 어디야? 모처럼 만에 들어보는 반말에도 기분은 좋았다. 목소리와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정서적인으로 친근감이 느껴져 마음의 빗장을 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어릴 적 봄에는 등교하는 길에 어린 코스모스 모종을 심었고, 가을 소풍 가던 길은 눈앞에 하늘하늘 일렁거렸다. 화상 통화로 서로의 빛바랜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무심한 세월의 강은 볼이 발그레하든 친구들을 백발 낯선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상상 속에 들판은 뜨거운 햇볕에 곡식들이 알알이 영글어 가고, 8월의 넓은 들판은 진 록 색 물결이 출렁거렸다. 파란 하늘가에는 양떼구름이 두둥실 떠간다. 동네에서 제일 큰 비 봉산이 평풍처럼 겹겹이 나를 반겨주듯이 눈앞에 밀려왔다. 옛날에는 친정 한번 갈라치면 기차 타고, 시외버스 환승하고, 다시 완행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어린 시절 밤늦도록 친구와 놀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는 달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날처럼 기차가 종착지를 향해 달리는 동안 둥근달이 호위하듯 친구들이 모인 장소로 향해갔다.

어릴 적에 헤어진 친구들이 반세기 만에 만났다. 사람이 죽지 않으면 언젠가 꼭 한 번은 만난 다는 말이 맞았다. 모교의 졸업생들이 사회로 흩어져 국회의원, 장관 판검사와 교육자, 사업자 농업 경영인을 배출을 했다. 올망졸망 꽁 나물 교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졸업을 했다. 나는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다가 대구에 사는 오빠 집으로 갔다. 천성적으로 내성적이라 도시에서 공부하는 동안 공허함은 매울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는 독서였다. 하지만 고향 친구의 보고 싶은 마음은 가슴속에 갈증을 느꼈다. 나는 일찍 남편과 결혼하는 바람에 시집살이 10년은 유년의 기억을 묻혀버렸다. 딸, 아들이 태어나자,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처럼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도시에서 살아내느라 무리 속을 달리 듯 직장 생활과 결혼생활은 친구들의 얼굴도 깡그리 잊혀갔다.

모교는 몇 년 전에 폐교가 되었다. 그 자리에 의성 정보마을이라는 간판이 적혀 있었다. 운동장을 한 바퀴 휙 돌면서 교단 위에 올라가 교장선생님이 아침 조회 때 하셨던 말씀도 더듬어보았다. 그 당시에는 학교 건물이 동네에서 제일 컸다. 넓은 운동장에서 신나게 놀던 곳이 지금은 협소해 보였다. 걸상에 앉았더니 엉덩이가 커서 앉을 수가 없다. 웅성거리는 교실 문을 열었다. 와, 멀리서 잘 왔다. 나는 뒷걸음을 쳤다. 멈칫, 노인정 같은 분위기에 황당했다. 동창회를 한다고 친구 부인의 솜씨 발휘로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다.

야, 반갑다. 너도, 나도, 단체 박수가 터졌다. 나를 보자마자 어디서 꼭꼭 숨어 살았기에 얼굴이 늙지도 않고 30대로 보인다며 놀렸다. 주름을 덮어쓴 얼굴이지만 남자 친구의 예쁘다는 한 마디에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옆에 앉은 여자 친구의 얼굴이 낯익었다. 내가 무심코 한 농담 한마디가 친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 친구에게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다. 말, 말이란 칼처럼 잘 다루어야 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들뜬 마음의 실수를 했다. 살아오면서 내가 뿌린 말의 씨앗이 어디선가 부정적, 혹은 긍정적으로 자라고 있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밤이 늦도록 쿵작쿵작 신바람이 났다. 우리가 살아있고 만났다는 것만이 중요한 화제였다.

영험한 비 봉산 젖줄을 먹고 자랐다. 기억의 강을 넘어 아련하게 떠오르던 친구들이 살아 주어서 고마웠다. 모두들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큰 농장을 경영하고, 목회자, 교직 정년퇴직자도 몇 명이 있었다. 성적 순위가 사회에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공부를 좀 못해도 인간성 좋고 수완이 탁월한 친구는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님이나, 유명 인사가 되어 나타났다. 50년 만의 해후는 가슴속에 뭉쳐 있던 응어리들이 한꺼번에 풀렸다.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옆에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이 지금처럼, 친구들은 모두 나름대로 인간승리를 했다는 뿌듯함이 묻어있었다. 아름다은 기억의 강을 넘고 넘어 가을 단풍처럼 곱게 익어가며 새로운 백세시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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