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기쁨

by 최점순

어젯밤 늦가을 소낙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언제 비가 온 듯 아침 햇살이 눈 부신다. 책장에 먼지를 덮어쓴 책들을 물티슈로 닦았다. 맑은 물로 세수를 한 듯 낯익은 책들이 웃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책하고 씨름하며 밤을 홀딱 새웠다. 그런 좋은 친구들이 영혼이 지쳐 잠자고 있는 나를 다시 흔들어 깨운다.

이 년 전, 문화센터 수필 교실에 등록하였다. 하지만 어린 사람들 틈에 끼어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일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고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기가 일수였다. 그렇다고 한번 시작한 글쓰기를 끝까지 싸 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매일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는 절실한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이 하였다.


강의 내용을 공책에 필사하고, 책 몇 권씩 필 타하는 동안 녹물이 흐르던 머리가 조금씩 씻겨나갔다. 여태까지 글쓰기를 해 본 적은 없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동경은 오늘이라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앗는 아쉬 마음이 누구 못지않게 간절했다. 주부로 가난한 삶 림이를 꾸려가며 남편 내조와 아이들 키우며 뒤바라지로 항상 무엇에 쫓기듯 살아왔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행히 농촌에서 자란 덕분에 늦늦게라도 전원의 청순한 상상들이 밀려왔다.. 글쓰기로 매진하는 동안 사춘기 소녀처럼 눈만 감으면 푸른 들판이 글감으로 펼쳐졌다. 책을 쓰는 몰입의 기쁨은 내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일 년 후에 내, 책을 꼭, 낼 거야. 누가 물어보지도 않는 말을 지인들에게 자랑삼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네가, 작가 되면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 작가 안 될 사람 없을 걸 하며 비웃는 어투였다. 그날부터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머리에 쥐가 나도록 컴퓨터 워드를 두드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투리 시간을 재단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써보니 이상하게도 내게는 글쟁이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고민을 거듭 한끝에 공연히 내뱉은 말 때문에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나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어 씨를 뿌린 것은 반디시 거두어들이려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강력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핸드폰 메모지에 ‘꽃이 아름답다.’ 한 문장을 써놓고 꽃잎을 한 잎 두 잎 , 줄거리 일상에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다. 다음 메일 쓰기로 보냈고, 저녁마다 A4용지에 반장 정도 써 놓고 실성한 사람처럼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하루하루 습관이 되기까지 엉덩이와 씨름하며 의자에 앉히는 날들로 이어졌다. 글을 쓸수록 강박박감에 짓눌렸다. 높은 장벽처럼 다른 사람이 다 글을 써도 너는, 절대로 글을 못 쓴다고 속삭이는 또 다른 적은 내 머릿속에 있었다. 온갖 분심 거리가 고여 있는 머리를 비우느라 사투를 벌였다.

코로나19 리 두기는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이 집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늘 길, 바닷길, 가족 키리 밥 한 끼 먹을 수도 없는 모든 사람들과 소통의 길은 다 막혔다.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책 보고 글 쓰는 유일한 숙제를 끌어안고 답답할 마음을 풀어가는 길 밖에 없었다. 인터넷 엽서 시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밤늦도록 퇴고하는 지루한 작업에 매달렸다. 이럴 때는 무식이 용감하다고 몰입의 기쁨으로 거듭거듭 응모한 결과 줄줄이 상이란 상을 휩쓸었다. 그 여파를 몰아 첫 수필을 출간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무녀리 수필집, ‘거미 열차’였다. 글을 써 놓은 파일을 열고 원고를 책으로 묶는 일은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 과정도 글 쓰는 것보다 순조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책이 배달 되었때의 그 뿌듯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몰입의 기쁨이 벅차올랐다. 다음 수필집을 내기 위해 글을 잘 써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소에 집안일을 한꺼번에 해치우듯, 책을 읽은 습관도 몰입 형이었다. 가끔 날 잡아 무박하면서 두꺼운 책을 다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매일 잠자기 전에 이제부터 글쓰기 공부를 시작할 것이라고 되풀이 말하고 친구들에게도 광고했다. 머리는 좋지 않아도 강한 추진력과 목적의식은 남달랐기에 살아오면서 다양한 자격증을 땄다. 4,50대에 운전면허는 기본이고, 한글 워드 자격증, 파워포인트, 액셀, 기타 다양한 자격증들은 장롱면허로 잠자고 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해서 한번 하겠다고 결심하면 목적의식을 가지고 성취감을 느낄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런 삶의 자세가 몰입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좁은 시아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소홀하게 되어서 소중한 가치를 망각하고 살았다. 살아가면서 나보다 뒤처지는 사람들과 보폭을 맞추며 손을 잡아 주는 일도 나답게 산다는 값진 일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남은 인생은 앞뒤를 살펴보며 힘들어하는 누군가 에게 손도 잡아주고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

인생살이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길 위에 있다. 내 경험으로 보면 책들도 인연에 따라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 같다.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들도 입고되었다가 일 년에 한 번씩 오래된 책을 속아내서 분리수거 통억 던져 버리는 안타까움도 감수해야 했다. 뒤돌아보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뛰었고, 몰입의 즐거움을 한층 더 키워주었다.


지구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 남들도 겪고 살아가는 희, 노, 애, 락 여정을 혼자만 피해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오래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아니다. 진솔하게 쓴 작 작가님들의 소중한 삶의 진국으로 느껴지는 가파른 벼랑을 오르내리던 경험들이 간접적이지만 가슴이 떨리는 공감을 주었다. 그 많은 책들은 지친 내 삶에도 힘찬 원동력이 될 용기와 교훈을 주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거실에 꽂힌 책들은 언제나 친구처럼 잔잔하게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다.

글을 쓰는 일은 풋풋한 젊은 날을 소환하는 산책이 길이 되어주었다. 스토리 흐름이 막혀 실태래처럼 풀리지 않으면 사색하는 즐거움도 필요했다. 어제나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몰입의 기쁨으로 팍팍한 인생살이에 깨어 있는 시간이 되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에 몰입하고 달려가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렇게 바라보고 살고 있을 때가 많았지만 실천에 옮기는 일은 끈질긴 인내가 필요했다.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에 치우치지 말고 무엇엔가 몰입해 간다는 과정 자체로도 즐거움을 준다.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수필집을 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만 책 쓰는 작업은 힘든 노동이라 또, 다른 나와 사투를 벌이는 일은 쉽지 않지만 소녀시절 오솔길을 산책하는 마음의 자세로 글쓰기 세계를 개척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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