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었다. 국민 지원금 카드를 동사무소에서 발급받았다. 코로나 거리 두기 4단계지만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2년째 적자에 허덕인 간절함인 듯 진열장에는 온갖 재수용품들이 층층 쌓아 올려놓았다. 여름내 볕을 듬뿍 받은 빨간 사과, 배, 감, 대추와 탱글탱글한 알밤까지 입안에 군침을 돌게 했다. 때마침 내 옆구리를 밀치고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돌아보다가 잊고 살았던 시절이 손끝으로 확 당겨왔다.
농촌 오일장은 사람들이 소통하는 장소였다. 아버지는 하던 일손을 놓고 무, 배추를 지게에 지고 시장으로 향했다. 재수 좋은 날에는 단돈 몇 푼이라도 벌면 아이들 학용품 연필 한 다스와, 줄 공책 열 권을 살 수 있는 수입원이었다.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10년 만에 돌아온 후, 대대로 장손이었던 존재감도 가장으로서 권위도 상실되었다. 한 나라의 명훈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깜빡거리다가 그 한복판으로 휩쓸려 다국적으로 떠돌다 가 돌아왔다. 굴곡진 인생처럼 잃어버린 시간은 가족들과 불통의 벽은 시간이 갈 수록 깊어지고 낯설었다. 아버지의 봇짐이 차곡하게 쌓이는 동안 더 큰 태풍이 헤일을 일으키며달려들었다.
잔인한 현실은 온 집안을 풍비박산을 냈다. 아버지가 해방이 되어 돌아온 3년 만에 6.25 전쟁이 터졌다. 영천군으로 인민군이 물밀듯 쳐내려 왔다. 큰 오빠는 국군에 입대하고, 작은 오빠는 인민군에 붙잡혀 갔다. 형제간에 아군과 적군으로 서로의 가슴의 총부리를 대고 밀고 당기며 죽기 살기로 싸웠다. 국군에 입대한 큰오빠 때문에 아버지는 인민군 보국대로 끌려가 문초를 당했고, 육 개월 후에는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서 취재를 받았다. 그 와중에도 밤낮으로 산꼭대기에서 따발총 소리가 콩을 볶는 듯 타닥거렸다. 그랬던 모진 날들이 흘러가면 잊히나 했는데, 눈만 감으면 아버지를 짓눌렀던 봇짐이 고스란히 나의 인생의 행로로 연결된 듯 송곳처럼 후벼 파고들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구촌 세계 방방곡곡 각 나라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르고, 자신이 경험해온 세계관이 달라 다양한 기억의 봇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가 다르고,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 어른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까지 서로 다른 경험을 한다. 한 탯줄을 메고 태어난 형제자매 간에도 서로 입장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한다. 도시 사람과 농촌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바다를 벗 삼아 살아가는 어부들도 서로 다르다. 하물며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살아온 경험의 봇짐이 다르기에 부딪히고 부서지고 까칠한 모가 조금씩 갂여지는 동안 조약돌처럼 서로 닮아간다.
사춘기 상상의 꿈결에는 백마 탄 기사가 환하게 웃었다. 그때마다 현실처럼 아련한 설렘으로 기다렸는데, 예행연습도 없이 남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결정하였다. 그의 달콤하게 꼬드기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운명을 갈라놓듯 하늘과 땅이 지각변동으로 쫙 갈라졌다. 대학시절 운동선수이던 남편이 입대 후 일 년 만에 군 작전 중에 큰 사고를 당했고, 다친 다리가 재발할 때마다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주말에는 부산병원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오고 가는 동안 내 등에는 무거운 봇짐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남편에게 반했다. 80년대 젊은이들이 즐겨 입던 옷이었다. 운동선수였는데 넝마주이 행색을 하고 나와도 좋게 보였다. 순수하고 소탈한 성격은 내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따뜻한 인품 뒤에 숨겨진 (감언이설) 세련된 매너가 마음에 들었다. 내 마음을 끌려고 작전을 세웠는지 자신을 소개하면서 고아라고 했다. 나의 모성은 측은지심으로 급 발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칠 남매 형제들이 있었다. 어쨌거나 사고 이후에 끌어안고 갈 봇짐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의사가 가망 없다고 했다. 다만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잘하면 혹시 좋아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이병 제대를 한 후 집에서 재활 치료 중에 남편은 삶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렸다. 그럴 때마다 모질게 마음먹고 봇짐을 벗어던져버리고 훨훨 날고 싶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태어난 딸과 아들은 어둠이 내려앉은 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을 들여다보며 용기와 희망이 솟았다. 절망의 무게로 축 늘어진 봇짐을 고쳐 메고, 앞서 걸어갔던 아버지의 큰 봇짐을 바라보며 가파른 벼랑을 맨손으로 오르다가 굴러 떨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요즘은 민속촌에 가야 구경할 수 있는 봇짐이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장 골목에서 할아버지가 사과 박스에 강아지 봇짐을 지고 걸어갔다. 순간 아버지의 등에 짊어진 봇짐과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 반가웠지만 보는 눈이 많아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큭큭 웃었다. 멈춰 있던 유년의 어두운 마음에 밝은 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행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아지와 눈으로 교감을 나누었다. 동물과 말은 통하지 않아도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세월의 무게를 더덕더덕 쌓아놓았던 나의 봇짐도 이제 벗어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노을이 붉게 물들인다. 모처럼 만에 재수용품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시끌벅적거렸다. 상인들의 호객하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누나야, 아저씨, 몽땅 떨이요. 골라, 골라 은발이 빛나는 할아버지의 봇짐에서 아버지의 환한 모습이 언뜻 보였다. 그동안 짓눌러왔던 무게를 내려놓고, 남은 인생은 남편과 나란히 커플 봇짐을 지고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