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발그레 익어간다. 어제 밤에는 소낙비가 쏟아졌다. 여름내 잠을 설치게 한 매미들도 사라졌다. 몇 년 전 가을 산행을 했던 생각이 났다. 집에서 가까운 월드컵공원으로 가는 6호선을 탔다. 전철 안 승객들의 옷차림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 주었다. 하늘 공원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어린 시절 자주 들었던 까치 울음소리가 깍, 깍 들린다.
사립대문 앞에 심어 놓은 큰 감나무가 문지기였다. 봄볕이 창호지 문살을 타고 방안으로 황금빛으로 번졌다. 동생과 이불속에서 발 까락을 꼼지락거리며 비몽사몽 했다. 까치 두 마리가 감나무에 앉아 요란하게 단잠을 깨웠다.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던 엄마는 까치 울음소리를 듣고 군대 간 작은 오빠한테서 편지가 오려나 하며 기뻐했다 . 나도 덩달아 아침부터 설렘으로 어린 가슴이 출렁거렸다. 우편배달부 아저씨의 자전거 소리가 따르릉따르릉 들리면 맨발 뛰어나갔다. 내가 써놓은 위문편지를 국군 아저씨들에게 부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아저씨, 여기요. 엄마의 예감대로 까치 울음소리는 반가운 오빠의 편지가 전방에서 달려왔다.
엄마는 밭일하러 들로 나갔다. 봄볕이 따스한 초가집 처마 밑에는 암 닭 두 마리가 달걀 스물다섯 개씩 품고 있었다. 수탉과 암탉이 번갈아가며 알을 굴린 후에 20일이 지나면 어미닭과 병아리가 啐啄同時(줄탁동시)에 신호를 주고받았고, 이튼 날 노란 병아리 순차적으로 오십 마리가 부화를 했다. 닭 날개 밑에 손을 넣으면 따뜻한 병아리가 몽실몽실 느껴졌다. 아침햇살이 퍼지면 병아리를 마당에 풀어놓았다. 어디에 왔는지 순식간에 까마귀들이 몰려와 병아리를 낚아채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막대기를 들고 삐악삐악 병아리 소리가 들리는 뒷산으로 쫓아갔다. 그때였다. 나의 간절 함을 아는지 감나무에 앉아 놀던 까치들도 까마귀를 부리로 콕콕 쪼으며 합세를 했지만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병아리 숫자가 줄으면 엄마한테 눈물이 쏟아지도록 혼이 났다. 그런 날들을 잊은 채 각박한 도시에서 살아온 지도 수십 년이 되었다.
월드컵공원 주차장에 들어섰다. 분위기가 너무 조용해서 두리번거렸다. 농수산물센터가 코로나가 번져 폐쇄되었다고 했다. 예고도 없이 날벼락을 맞은 상인들은 과일과 채소들을 길바닥에 패대기를 쳐놓았다. 마포구청 앞에는 농민들이 땀 흘려 수확한 상품들과 상인들의 금쪽같은 돈을 주고 사들인 물건들이 짓물러 터졌다. 억장이 무너진 듯 상인들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나도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그분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나의 고통으로 손끝에 느껴졌다. 길가는 행인들도 졸속행정의 민낯을 보는 듯 씁쓸하게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울분이 터지는 사람 사는 세상과는 타르게 창공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며 깍깍거리는 까치 울음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이런 와중에도오래전부터 까치는 행운을 몰고 온다고 믿고 있던 터라 막연하지만 앞으로 좋은 일들이 생길 것만 같았다.
선조들은 까치를 영험한 새로 여겼다. 아버지가 가을에 감을 딸 때 면, 나무 꼭대기에 있는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 놓았다. 오랜 세월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왔기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전설 같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날 선비들은 까치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 많았고, 또한 유명한 치악산 까치가 은혜값은 전설을 누구나 한번 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과거 보러가던 선비가 어미까치 울음스리에 머리 위위를 올려다보니 큰 구렁이가 새끼들을 잡아먹으려는 순간에 활을 쏘아 구해 주었다. 선비는 걸음을 재촉하여 길을 가다가 날이 캄캄한 방중에 불빛을 발견 하였다. 하루 밤을 그 집에서 묵고 있는데 한 밤중에 종소리가 계속 들렸고...영믈도 모르는 선비는 길을 걷다가 종밑에 까치 두마리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릴 적에 어미까치의 비명을 듣고 둥지를 올려다보면 매들이 까치 새끼이 물고 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우리 집 감나무에서 살아가는 까치들은 벌레를 잡아먹거나 아님, 엄마가 설거지 한 밥풀을 마당에 뿌려주면 닭들과 함께 주워 먹고살았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지 까치들도 세월에 따라 먹이 사슬이 변했다. 천적에게 잡혀 먹지 않고 개체 수가 늘어나 골칫거리였다. 까치들의 습격을 받은 농촌 과수원은 한해 농사를 접을 수 밖억 없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도시로 몰려온 까치들은 전주대에 둥지를 틀고 배설하는 등 다양한 사고를 냈다. 영험한 새로 여겼던 까치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사람들과 오랜 세월 친하게 지냈던 까치에 대한 순수한 정서도 퇴색되었다.
공원길을 걸어가도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예전 같으면 억새축제로 밤낮으로 사람들이 북적거렸를텐데 유령도시처럼 썰렁했다. 그동안 까치들이 살던 터전을 사람들에게 내어주었다. 코로나19 거리 두기로 사람들이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까치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되찾은 듯 드넓은 잔디밭 놀이터에서 춤을 추었다. 가을 햇살에 노랗게 익은 모과와 감나무에 달린 감들도 빨갛게 알알이 익어간다. 혼자서 평화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을 차례로 돌았다. 울긋불긋 축복받은 아름다운 가을이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옆 벤치에 앉았다. 종일 하늘에 뒤덮여 있던 먹구름이 슬며시 걷히고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행운을 부르는 까치에게 나의 시크릿의 주문을 외웠다. 지구촌 사람들이 코로나 유배에서 풀려나 활발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내려앉은 어둠을 걷어 낼 수 있기를 빌었다. 일상을 잃어버린 이 년 동안 지긋했던 날들도 서서히 물러간다. 설날이 되면, 가족들과 때때옷을 입고 동료를 부르고 싶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란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하늘 아래, 땅을 딛고 서 있을 수 있고, 내가 우리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