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유교 충효사상이 지배적인 사회였다. 진산군의 윤지충(바오로)은 모친의 장례 때 제사를 지내지 않았고, 권상현(야고보)는 신주를 불태웠고 폐제 분주를 감행
하였습니다고전해 집니다.
윤지충은 김범우 집에서 서적을 접하고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지한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일이라고 했다.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라도 죽은 분들에게 음식을 드리는 것은 헛된 일이요 거짓 행동이라고하였다. 그런연후로 1791년12 얼 7일 날 참수 형을 당하였다. 이 사건은 진산 사건, 신해박해라고 합니다.
윤지충은 한국 천주교의 최초의 순교자들이 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6대손으로 정약용 외조부인 윤덕렬의 친손자입니다. 이 가문은 전통적으로 성리학에 치중하지 않고 의학이나 천문학, 그림 등의 실용 전인 학문에 뛰어났다. 외가인 안동 김 씨 가문도 실학을 가학으로 주장하였습니다.
천주교의 박해는 백 년 동안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진 이 땅에서 이백삼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 2021년 신앙의 꽃이 활짝 피었고 세계를 향해 빚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 이백 삼십 년 전 신해박해 때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의 유해가 발굴되었습니다. 동생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도 220년 만에 발견되었습니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았습니다. 전주교구 김선태 주교님은 유해 발견의 의미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를 밑거름 삼아 성장해 온 우리 교회가 그 순교 역사에서 첫자리를 차지하시는 분들의 유해를 비로소 찾았습니다. 유해 발견은 놀라운 사건이며,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신앙 선조들은 ‘참된 신앙’을 다시 한번 전하고 순교 신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230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이 세상이라는 여정에서는 참혹하게 죽었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영원한 생명이라는 희망을 찾아 하느님께로 가야 합니다.
참수 당한 자리에 세워진 전주전동성당
그 당시에 얼마나 참혹한 형벌을 당했으면 이분들의 뼈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초기에는 양반층이 학문연구를 하던 중에 중국을 통해 서학을 받아들였습니다. 조선인 스스로에 의해 세워져 착실히 발전해 갔다. 그러나 신생 교회의 터전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충격을 주었으니, 유교라는 토양 위에 복음의 씨를 받아들여 키워가던 신자들에게 부모와 천주, 조상 제사와 천주 공경 사이에 양자택일을 하는 길만 남게 되었다. 이때 이승훈, 권일신, 권철신, 정약전, 정약용 홍낙민, 이가환 등 조상 제사 금지령을 거부하고, 천주교에서 이탈하여 유교사 회로 복귀하었습니다. 다만 원 시장(베드로)은 형벌을 받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분들은 다시 교회로 돌아와 1801년 4월 8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대역죄로 참수를 당하였습니다.
코로나19 전파로 전 지구촌 사람들은 집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윤 윤지충(바오로)과 권상현(야고보)의 유골 발견은 물질 주위가 만연한 현대에 많은 의미를 시사한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순교를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킨 믿음을 본받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시라는 엄중한 메시지가 아닐까. 아울러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 방식을 내려놓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연대를 통해 다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실의 억 빠진 이웃들에게 우리 모두가 마음을 활짝 열고 손을 내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