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불안을 구체적인 숫자로 바꾸는 시간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았는데, 이제 와서 뭘 시작하려니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남들은 재테크다 뭐다 난리인데, 나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숱하게 마주하는 고백들이다.
하지만 숫자를 다루는 회계사로서, 그리고 그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 늦게 차린 엄마로서 말할 수 있다.
'아니야, 정말로 늦지 않았어'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대부분은 ‘늦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노후에 얼마가 필요한지 모른다는 막연함에서 온다.
안개가 자욱한 길은 무섭지만, 가로등이 켜진 길은 걸어갈 만한 법이다.
오늘 우리는 그 막연함을 '숫자'라는 가로등으로 바꿔보려 한다.
단 10분, 우리 집 경제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글부터 벌써 재미 없어지려고 한다.
그래도 이 부분을 뛰어 넘어서는 노후의 돈이나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없으니 할 수 없다.
고백을 하자면, 실은 나도 얼마 전에 미래 현금흐름 예상표를 처음 작성 해 보았다. 물론 정리해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남편과 나, 둘 다 벌고 있었고, 사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노후준비가 당연히 되어 있으려니 했었다.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진로와 대학이라는 눈앞의 당면 과제에 모든 화력을 쏟아붓느라, 정작 '나의 앞으로의 50년'은 텅 빈 설계도로 남아 있었다.
이제는 큰아이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더는 서포트 하지 않아도 되지만, 둘째는 아직 대학교 2년을 더 다녀야 해서 학비가 계속 들어간다. 그런 시점에 우리 집 현금흐름을 점검했다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액수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우리는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을 소비 하는 스타일에 따라 부자일 수도, 가난할 수도 있는 것이다.
100만 원을 벌어도 그중 10만 원 저축하는 사람이,
1,000만 원을 벌고 1,100만 원을 쓰는 사람보다 부자다.
자,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략의 숫자라도 한 번 넣어보자.
1단계. 내 삶의 '관성' 읽어내기 (지출 점검)
노후 생활비의 기준은 지금 우리가 쓰는 돈이다.
소비에도 '관성'이 있다. 은퇴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생활비가 절반으로 줄어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1. 고정지출에는 단순히 대출이자나 월세, 통신비, 보험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께 매월 드리는 용돈, 아이들 용돈이나 학비/생활비까지 모두 들어간다.
2. 변동 지출은 식비와 생필품, 의류비, 외식 등이 포함된다.
3. 어떻게 보면 가장 큰 구멍이 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비정기 지출이다. 여기는 휴가비용, 설날의 세뱃돈이나 추석의 명절설물, 가족의 생일선물 등 1년에 1-2번 나가는 돈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렇게 비정기 지출의 경우는 1년 치 예산을 점검하고 총액을 12개월로 나누어 계산하면 된다.
Check Point:
은퇴 후 아이들의 교육비나 직업관련 유지비는 줄어들겠지만, 의료비와 여행비, 취미생활비는 대부분 증가한다.
우선은 이해하기 쉽게 3가지로 비용을 대분류 해 놓았지만 나중에 내가 사용 중인 비용별 통장 관리 꿀팁에 대해서도 나누도록 하겠다.
2단계. 나를 지켜줄 월급 리스트업(수입 점검)
이제 국가와 회사가 나에게 지급할 '노후 월급' 리스트를 작성해 볼 차례다.
이 부분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긁어모아 적어보기 바란다.
Check Point:
국민연금공단 사이트에서 본인과 배우자의 예상 수령액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생각보다 국민연금은 꽤 든든한 기초 자산이다.
여기에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더해 매달 꼬박꼬박 들어올 현금의 총합을 계산해 본다.
표를 보면 알겠지만 들어오는 돈들의 시차가 있다. 이 부분을 잘 정리해 두어야 한다.
3단계. '노후 갭(Gap)'이라는 진실 마주하기
자, 이제 간단한 뺄셈을 할 시간이다.
[노후 갭] = (은퇴 후 예상 지출) - (총 예상 수입)
1. 결과가 플러스(+)라면: 이 차액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채워야 할 '현실적인 목표'가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던 불안이 비로소 '공략 가능한 숫자'로 변하는 지점이다.
2. 결과가 마이너스(-)라면: 축하한다. 이미 노후의 기본 골조가 튼튼하게 세워진 상태다. 이제는 '어떻게 모을까'보다 '어떻게 품격 있게 쓸 것인가'에 집중해도 좋다.
숫자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현금흐름표를 적어 내려가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나는 그랬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고 이 숫자를 마주한 것 자체가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준비되지 않은 100번째 생일을 걱정하며 잠 못 이루던 밤은 이제 끝내기로 한다.
우리는 이제 막연한 걱정의 늪에서 나와, 구체적인 계획의 땅 위로 올라섰다.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는 이제 막, 나를 위한 매뉴얼의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