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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정, 끊어낸 그리움

#02

by 새나
버거운 정, 끊어낸 그리움

쾌청했던 나날은 잿빛으로 물들고
떠나보낸 이가 가슴에 사무치는 그 감정들이
욱하고 올라와 순간 세상을 멈추는 느낌이다.

애썼던 모습과 무너져 내렸던 모습, 상처받고선 우두커니 서있던 멍청한 내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안쓰러우면서도 그때의 나를 보긴커녕 그때의 그 사람들을 바라본다. 스스로를 되짚어볼 땐 언제나 내 모든 것은 뒷전이지.

눈을 꾹 감고 무시해 본다.
노래를 들으며 흘려본다.
일기장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는다.
그냥 울어버린다.
원망하며 허공에다 손가락질도 해본다.

이도 저도 안된다면 그냥 눈을 감고 느껴본다. 가장 하기 싫은 대면하기. 뭘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느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파질 인연이었다면 왜 끊어냈는가. 왜 그리도 모질게 돌아서야 했는가. 정말 나를 위해서 그랬던 게 맞는가.

감정은 휘발되고 기억은 미화되어 추억만 남는다. 적의와 분노는 씁쓸함으로 바뀌고, 평범했던 기억은 추억이 된다. 늘 그랬듯 특별했던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놈의 착각과 정이 나를 망치고 다치게 한다.

그 질긴 정을 끊어내야 했던 만큼, 그렇게 뒤돌아 목놓아 울어야 할 만큼 당신이 버거웠고 당신 또한 내 삶을 천천히 비틀어 가고 있었기에, 나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기꺼이 당신을 끊어낸다.

나도 사람인데 그리움 한 줌 없을까. 그립고 아쉽고 미련한 내 모습이다. 그럼에도 다시는 닿고 싶지 않다 느끼는 겁먹은 나 또한 그러한 사람이다. 미화된 추억을 닦아내고 당신과의 관계를 끊어낼 수밖에 없던 이유들을 생각하며 나를 달랜다.

합리화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무섭다. 그립지만 두렵고, 다시 닿으면 무너질 것만 같은 이 모순적이고 여린 감정은, 끝없는 나날들 속에 가끔 튀어나와 나를 뚫고 지나간다. 그렇게 뚫린 마음을 열심히 메꿔가며 또 하루를 채워나간다. 나는 당신을 끊어냈다. 그래야만 했기에,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되새기며 그리움을 눌러 담고 애써 덤덤하게 살아간다.

난 아마 평생 미워하고 사랑하며 그리워하겠지. 떠나간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눈물 흘릴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 그놈의 정 때문에. 나를 산산조각 내어도 사랑해 마지않을 당신들 때문에.

늘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그리움과 미처 다 건네지 못한 마음을 담고서. 아직까지도 마음 한편을 내어주곤, 당신들을 품고 그렇게 한발 한발 내디뎌간다.

다가올 그리움을 환영하며. 또다시 떠나갈 이들을 사랑하며. 힘껏 사랑하고 힘껏 아파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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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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