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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머물렀고, 나는 떠나갑니다

#. 04

by 새나
사랑은 머물렀고, 나는 떠나갑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만큼은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러주었으면

내가 아끼는 이들만큼은
어디서든 오랫동안 행복했으면

나를 웃게 하는 이들은
언제나 늘 행복했으면

나를 위해 감정을 나눠주는 이들은
더욱 풍부한 세상에서 살아갔으면

나를 안정시켜 주는 이들은
한없이 따듯한 삶을 살아가기를

내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들 모두
진심으로 행복하길

나와 알게 되어 어떠했는지
나와 함께 보낸 시간에 희미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는지
나를 떠올릴 때 당신의 마음은 썩 괜찮았는지
짓궂은 나의 장난이 그렇게 밉지만은 않았는지
당신의 삶에 내가 존재함으로써
미미하게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

아파하는 내 모습을 보며 가슴 졸였던 당신에게 참 미안하고
무너져있는 내 손을 잡고 다시 일으켜 세워줘서 고마웠고
주저앉아있는 내 옆에 말없이 함께 앉아있어 주어서
그것만으로도 나는 참 고마웠다고

나를 보며 미소 지어줘서
나를 위해 꼭 안아줘서
나를 위해 대신 울어줘서
만신창이가 되어 울고 있는 나를
소중하다는 듯 꼭 끌어안아줘서

정말 너무나도 고마웠다고
보잘것없는 나를 귀하게 여겨줘서
혐오스러운 나를 사랑해 줘서

그 모든 애정이 고마워서
그 조각조각 나눠준 감정을 소중하게 담아 보관하고 있다고
가장 깊숙한 곳에 담아 매일 밤 깊은 마음속을 꼭 끌어안고 있다고
서툴게 이어 붙인 울퉁불퉁한 감정을
어설프게 포장한 상자에 담아 당신에게 주더라도
서툰 그 감정 속에 깊은 사랑과 고마움이 들어있다고
알아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

당신의 인생에 있어 나를 떠올릴 때
조금이나마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존재였다면
나는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겠지요

하잘것없는 삶이었을지라도
미소 지으며 나를 꼭 안아주는 당신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잘 살았다 생각하고선
아릿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갈 수 있겠지요

박복하고 기구한 삶이었지만
당신들을 만나
순간순간이 행복했다고
늘 행복하길 바란다고
꼭 한번 말하고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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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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