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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Jun 09. 2024

13. 내 친구 지은이와 깻잎 떡볶이

내 친구 지은이와 깻잎 떡볶이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생이란 매일 슬픈 일만 생기는 건 아니다.


 이때 나의 운명의 친구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이지은. 지금도 지은이는 자신의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이 좋다. 내 주변에 지은이는 오직 한 명이다. 살면서 들어본 적이 딱 한 번 있긴 하지만, 정말 흔하지 않은 이름이다. (이후에 아이유의 데뷔로 익숙해지긴 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지은이들 중에는 가장 성실하고 온순하며, 부처님 탄신일에 태어나서 인지 부처님과 같은 인내심이 있다. ㅎㅎㅎ 그래서 나에게는 음력 4월 8일이 석가탄신일보다는 지은이탄신일이다.


 유치원 꽃님반 시절 지은이는 햇님반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사랑스러운 매개체가 있었는데 바로 지은이 동생 지수이다. 지수는 나이는 어리지만 빠른 년 생이라 나와 같은 꽃님반에 있었다. 어떻게 우리가 친해졌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유치원이 끝나고 시간이 맞을 때면 같이 집에 걸어가곤 했다.


 지은이는 보통 1리 나는 보통 3리. 이것저것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가다 보면 어느새 서로의 집으로 가는 갈림길 방향이 되었다. 갈림길에서 헤어지면 혼자 집까지 걸어가기가 너무 외로웠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생각했는데, 바로 궁금하게 하는 것이다. 이 자매는 너무 착하고 순해서 내가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면 열심히 들었다. 재미난 이야기를 딱 갈림길 근처까지 신나게 하고 헤어져야 할 때쯤 끝내면 더 듣고 싶다고 하면서 우리 집 근처까지 같이 걸어왔다. 어린 김 뿌듯이 친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우리 집 가까이 와서 산 하나를 넘으면 바로 지은이네 집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자아이들끼리 산을 넘는 건 위험한 건데, 나의 이야기 매력에 빠져서 두 자매는 힘든 산을 자주, 여러 번 넘어야 했다.


'너희들이 힘든 산을 기꺼이 넘어가 준 덕분에 나의 외로움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고맙다 친구야. 그리고 친구 동생아.'


 나는 지금도 지은이에게 제일 부러운 것은 여동생이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포기는 빠른 편이었는데, 이건 아직도 부럽다.

     

 이때부터는 할머니 바보에서 친구 바보로 전략이 수정됐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가 지은이네 집에 놀러 간다고 하면,      


 “아휴 이년아, 그년 집에 무슨 금덩이라도 넣어놨냐? 뭐시롱 때문에 자꾸 그 집에 간다고 저 지랄이냐. 네가 가지 말고 데리고 오랑께. 할머니가 맛난 거 해줄 건데 잉.”     


 “아니 왜 내 친구한테 욕을 해? 욕하지 마. 선생님이 욕은 나쁜 거라고 했어.”     


 “할마시가 키워서 욕을 좀 할 수도 있지. 아휴 쪼끄만 게 엄청 지랄하네. 어렸을 때는 고분고분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하더니 좀 컸다고 말대답을 드럽게 하고 지랄이네잉.”    

 

“할머니가 말을 하니까 그거에 대한 대답을 하는 거지. 쪼끄만 건 아직 커야 하니까 그런 거고. 그리고 욕하려고 키웠어? 그러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돼?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아이고 저것이 또 지랄한다잉~”


할머니는 이때부터 말로 나에게 진 것 같다. ㅎㅎㅎ    

 

“맛있는 거 뭐 해줄 건데?”     


“라맨 끓여주고 깻잎 넣은 떡볶이랑 해줄껴. 오라고 하랑께.”   

  

“나 두꺼운 떡은 싫으니까 가래떡 얇게 썰어서 해줄 거야?.”

    

“아이고 해주면 해주는 대로 처먹지 꼭 저렇게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고 지랄이여. 알았어. 해 줄게. 오라고 하랑께.”      


 우리 할머니는 꼭 저렇게 지랄한다고 하면서도 지랄 맞은 나를 위해 하고 싶다는 건 다 해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지금 생각해도 나는 지랄 맞은 금쪽이었다. 요구도, 필요도 다양하고 구체적인. 지랄 발광하는 금쪽이.


게다가 사고 치는 규모도 남달랐는데,


 아빠가 사준 표지가 단단한 동요 동화책을 빙빙 돌리면서 놀다가 할머니 눈 옆에 찍혀서 피가 철철 흐른 적도 있었고, 할머니처럼 담배에 불을 붙여보고 싶어서 라이터로 휴지에 불을 붙여 집을 태울뻔한 적도 있었다. 할머니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밭에서 호미로 장난치다가 할머니 발가락을 찔러서 피가 나기도 했다.


"저 벼락 맞아 뒤질 기집애. 어디서 저런 게 나와가지고, 내가 제 명에 못 산다 못살아."  


하지만 할머니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셨다.


'네가 지랄 맞아도 지랄에 지랄을 더해도 사랑하는 나의 금쪽같은 손녀딸'


 선생님을 만나고 유치원 가는 게 재밌었지만 할머니 따라 밭에 가는 걸 더 좋아했다. 밭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유치원 가라고 하면서 밭에 데려가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할머니랑 거래를 했는데, 주 6일 중 다섯 번은 유치원 가고 하루는 할머니 따라 밭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거래는 자주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유치원을 졸업하고 8살 국민학생이 되었다. 대신국민학교 1-2반 김뿌듯! 나의 이름이 적힌 흰 종이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학기 첫날 교실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모할아버지는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나만 교실로 올라갔다. 까마득한 계단이 눈앞에 있어서, 할아버지 무릎 아프니까 나 혼자 가겠다고 했다. 이제 내가 공부라는 걸 하는구나 신나고 재밌었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궁금했다.





* 하단의 하트 라이킷은 저에게 1뿌듯이 됩니다. 소중한 시간을 저에게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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