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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Jun 08. 2024

12.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

 이모할아버지는 나와 한집에 살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집에 살고 계셨다. 우리 집이 있고 바로 옆에 이모할아버지 집이 있었다. 두 집은 산속에서 사이좋게 의지하며 살았다. 이모할머니는 수원 쪽에서 식당을 하시느라 이따금 한 번씩 다녀가셨다.  


 우리 집 식구는 나, 할머니, 이모할아버지. 이렇게 지구상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가족구조로 살았다. 그래서 나중에 가족 구성원을 학교에서 발표할 때 할머니 이모할아버지 나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과 모든 친구들이 갸우뚱하던 표정이 생각난다.


'뭐가 이상한 거지? 내가 사랑하는 가족인데 왜?????'


난 알지 못했다.

     

 아빠가 주로 나를 보러 왔었지만, 내가 조금 크자 할머니랑 아빠를 만나러 버스 타고 마산 간일이 기억난다. 보통리에서 버스를 타 대신 시내로 가고 대신에서 버스를 타면 서울 상봉동 버스터미널에 갈 수 있다. 걸음이 느린 할머니를 내가 연신 붙잡아 당겼던 것 같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이때부터 나는 할머니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다리가 아픈 할머니를 의자에 앉혀놓고, 모르는 어른들께 버스표를 어디서 끊는지 물었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받은 돈으로 버스표를 구매했다. 몇 번 숫자가 적힌 데서 타야 하는 지도 어른들께 물어보면 항상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어린아이가 묻는 것이 귀여우셨나 보다.


 이봉례 여사는 멀미가 참 심했다. 차만 타면 연신 메스꺼워해서 내 양쪽주머니엔 항상 검은 비닐봉지가 대기하고 있었다.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비닐봉지 안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항상 둘둘 말려있었는데, 할머니 토를 받은 후 입을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왔고 몇 시 차를 타야 하는지 아빠에게 도착시간을 알려줘야 해서 역에 내릴 때마다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 시절 터미널 앞에 하늘색 공중전화박스들끼리 친구 삼아 주욱 서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 마음에,


‘너희들은 친구가 많아 외롭지 않겠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렴’

 

생각했었다.


 이때 시골 소녀 김 뿌듯은 처음 에스컬레이터라는 걸 타본다. 할머니가 조심히 잡고 서 있으라고 했는데, 계단이 움직이는 게 너무 신기해서 한눈팔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지려 한 순간!!!! 이름 모를 아저씨의 팔이 나를 구해주셔서 간신히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착하신 분들이 참 많다.


 할머니는 항상,


“아이고, 저것이 선 머슴애처럼 왜 저러냐~ 잉 덤벙 대지 좀 마라.”


라고 혼내셨다. 물론 나는 할머니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유치원 종업식날 예쁘게 포장된 상품이 눈앞에 진열되어 있었다. 다 똑같았는데 유독 보라색 포장지의 선물이 내 시선을 끌었다. 나는 꼭 그 보라색 포장지 속 선물을 갖고 싶었다.

 

선생님이,     


“앞에 선생님을 집중해서 보는 착한 어린이부터 선물을 줄 거예요.”라고 하셨다.      


나는 일부러 딴짓을 하다가 그 보라색 포장지의 선물 순번이 되는 순간 집중을 하고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김뿌듯.”      


'오예!'


 이때까지 나에게 인생은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이렇게 몸도 마음도 자라고 있는 와중에 내 인생을 뒤흔들 하나의 사건이 생긴다. 바로 아빠의 두 번째 결혼이다.


 아빠의 결혼식 날이 생생하다. 아마 어른들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셨겠지만 마산에 갔고, 할머니 이모할머니 이모할아버지 다들 고운 한복과 양복을 입으셨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우리 집에 뭔가 기쁜 일이 생겼다는 걸.


 하지만 나는 그 결혼식에 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에 있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숨겨야만 하는. 존재함으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되는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다.

     

 새엄마는 남부럽지 않은 경북 영주 종갓집의 장녀였다. 애 있는 남자와 처녀의 결혼이 용납될 리 없는 집안이었다. 아빠는 장인어른 장모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총각 행세를 하며 결혼했다. 나의 새엄마도 평생 이 사실을 가장 가까운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본인을 가둔 것이다.


 나는 이모할머니와 아빠의 집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나는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의 기분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환영받지 못하는 그 기분이란, 장대비 속에서 모두 우산을 쓰고 있지만 나 홀로 우산을 쓰지 않은 그런 기분이랄까.


 인생의 쓴맛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하단의 하트 라이킷은 저에게 큰 뿌듯함이 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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