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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Jun 02. 2024

뺄례네 집 손녀딸 11

학교가 키운 아이

 내가 만난 첫 선생님 유혜선 선생님. 추억이 많아 어릴 때지만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셨는지 학예회에서 사회자를 맡겨주셨다. 하지만 그 사회자라는 것이 사실은 엄마들의 일이다. 왜냐하면 표정과 말을 정확하게 하도록 연습시키고 외우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왜 굳이 나를 선택해 주셨을까? 할머니는 바빠서 연습시킬 사람도 없는데.. 할 수 있는 애들이 많았을 텐데..'


그런데 선생님은 본인의 일요일을 포기하시고 나를 유치원으로 부르셨다. 선생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뿌듯이는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해?”


“김치만두예요 선생님.”     


 선생님은 손수 만드신 김치만두를 쪄서 예쁜 도시락 통에 담아 오셨다. 근데 할머니가 해준 만두와는 다르게 만두가 많이 터져 있었다.


‘오잉’


 하는 내 눈빛을 선생님이 읽으시고 예쁜 보조개로 화답해 주셨다. 나는 선생님과 그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대본을 외우고 대사를 연습했다. 그 이후에 잘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잘했을 거야 김뿌듯!


 또 양호(보건) 선생님이랑 유혜선 선생님이 친하셨나 보다. 유치원이 끝나면 다른 애들은 엄마가 다 데리러 오는데 나는 집에 혼자 가야 했다. 할머니 없는 집에 혼자 가서 할머니를 기다려야 했다. 많이 심심해하던 나를 서무실(현 행정실)에 데려다 타자기도 쳐보게 해 주셨고, 양호실(현 보건실)에 가서 병원놀이도 하게 해 주셨다. 또한 학교 이곳저곳에서 독사진을 많이 찍어주시고 인화까지 해서 선물로 주셨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 바쁜 할머니랑 살아 어린 시절 사진이 없을 것 같으셨나 보다.

 내가 선생님이 되고 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주 6일을 근무하던 시절에 황금 같은 하루를 저에게 쓰시다니요. 나의 첫 선생님. 외로웠던 나에게 친한 언니이자 선생님이자 부모셨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정말로 온 학교가 힘을 모아 키운 아이였다.


 우리 집에서 유치원까지는 아이 걸음으로 1시간이 걸렸다. 당시 버스 편도 버스표는 150원. 근데 아이러니한 게 버스를 타려면 우리 집에서 15분 걸어서 정류장까지 가야 하고 내가 갔던 길을 고스란히 버스가 다시 돌아온다. 이 무슨 비효율적인 방법인가.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왕복 버스비 300원을 주면 버스 탔다고 거짓말하고 군것질하면서 꼬박 한 시간을 걸어왔다. 그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땀범벅에 꼬질꼬질했으니까. 근데 할머니는 그걸 혼내지 않으시고 마냥 자랑스럽게만 봐주셨다. 할머니들 사이에서 나의 이야기는 항상 즐거운 주제였던 것 같다.     


“우리 뿌듯이는 말이여 버스비 주면 버스 안 타고 과자 사 먹으면서 걸어와.”


 “오메, 저 쪼매난 것이 말이냐. 깔깔깔”


 “야무져 아주 가시나가.”


나는 할머니에게 늘 자랑거리였다.


 나는 혼자 걷는 것이 너무 좋았다. 사계절 대신의 아름다운 풍경이 나의 친구였다. 봄에는 길가에 흐드러진 개나리, 진달래, 철쭉, 이름 모를 풀들과 가을에는 길가를 수놓은 코스모스가 참 아름다운 길이었다. 흙냄새, 풀냄새, 꽃향기를 맡으며 오가는 그 길이 나는 참 좋았다. 너무 추운 겨울에는 손이 시렸지만 하얗게 핀 눈꽃은 그 어떤 절경보다 나를 감동시켰다.    


 아침잠이 많아 지각할 뻔한 나를 번번이 구원해 준건 이모할아버지의 자전거였다. 나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유치원까지 데려다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고급 승용차보다 훨씬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이모할아버지 자전거 타고 유치원 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낄낄”


나는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중학생까지 무료로 이용했다.




* 하단의 하트 라이킷은 저에게 1뿌듯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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