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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Jun 01. 2024

10. 대신국민학교 병설유치원 꽃님반

대신국민학교 병설유치원 꽃님반

 내가 이제 좀 더 컸다. 7살! 나는 생전 처음 유치원이라는 곳에 갔다.


 대신국민학교 병설유치원 꽃님반! 나의 담임 첫 선생님은 유혜선 선생님.


'와 사람이 저리도 예쁠 수 있단 말인가! 하얀 피부 선한 웃음과 나에게는 없는 쏙 들어간 보조개... '


선생님의 선한 미소가 아직도 떠오른다.


 그 당시 유치원은 급식이 없어서 할머니가 도시락을 싸줬다. 나는 도시락 가방 하나도 모두 내 마음대로 골라야 했다. 대신에는 5일장이 열렸는데, 달력에서 4,9일로 끝나는 날이다. 나는 그날이 오길 내내 기다렸다. 할머니랑 도시락과 도시락 가방을 사러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율촌리 너른 공터에 장사꾼이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하면 커다란 장막이 쳐지고 물건들이 가득가득 채워졌다. 생선의 비릿한 냄새, 과일의 달달한 냄새, 흥정하는 말소리와 흥이 나는 음악, 짭조름한 젓갈의 향기까지. 대신 5일장은 물건을 사지 않아도 내 마음을 부자로 만드는 신기한 곳이었다.


 장에 가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도시락과 가방을 샀다. 흰 바탕에 노란색 튤립이 그려진 천 가방이었다.


 인생 첫 도시락을 여는 순간 할머니의 맛있는 반찬이 펼쳐져 있었다. 무 장아찌, 깍두기, 하얀 콩나물 무침. 옆에 앉은 남자아이에게 자랑을 하려고 보는 순간, 그 아이의 도시락에는 노란 계란말이와 분홍 소시지 반찬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왠지 모르게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가 싸준 반찬인데, 너도 먹어볼래?”


(하나를 먼저 건네고 나도 하나를 받아먹으려고 해 볼 심산이었다.)     


“아니, 나 그런 거 못 먹어.”     


 우리 할머니가 싸준 반찬을 ‘그런 거’라고 하다니. 선생님 몰래 그 아이의 반찬통을 팔꿈치로 툭 쳐서 엎어버렸다. 그 남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보았다. 속으로는 엄청 고소해하며 모르는 척, 내 도시락을 열심히 먹었다.    

  

  자랑스러웠던 할머니 반찬이 순간적으로 창피해졌다. 역시 남과 비교하는 것은 행복한 기분을 망친다.

     

“나도 햄 사줘. 도시락에 햄 넣어줘. 다른 친구들은 계란 물 묻힌 분홍색 소시지 싸왔단 말이야. 줄줄이 햄(비엔나소시지)도 사줘.”     


“늙은 할마시는 그런 거 못해줘. 주면 주는 대로 처먹어. 이년아!”     


“후라이판에다가 기름 넣고 구우면 되는데 왜 안 해줘?! 해주기가 싫은 거지? 솔직하게 말해봐.”     


“아이고, 저놈의 기집애 지랄병이 또 도졌네.”     


“그럼 나 밥 안 먹어.”     


“먹지 마라 이년아. 니 배 고프지! 내 배 고프냐? 이년이 배때기가 처 불렀구만?”     

 

 할머니는 보란 듯이 물에 흰밥을 말아, 오징어 젓갈을 올려서 먹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나는 절대 할머니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는다. 아침을 굶고, 점심을 굶었다.      


“독한 기집애, 일어나! 가게 갈 것이여.”


 결국 할머니와 걸어서 갔다. 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가서 햄을 사 왔다. 그것도 종류별로. 분홍 소시지는 한입 먹고 안 먹었다. 씹는 맛의 탱탱함이 부족했다. 나의 취향은 씹는 식감이 살아있는 비엔나소시지였다. 할머니는 왕복 2시간여 되는 거리를 걸어서 손녀가 먹고 싶은 햄을 사주었다.


 그 이후로 항상 내 도시락엔 비엔나소시지가 기름에 묻어 반짝이고 있었다.


 유치원 생일 파티날 다른 친구들은 다 엄마가 왔는데 나는 할머니가 왔다. 다른 엄마들은 예쁘고 얼굴이 통통한데, 우리 할머니는 주름살이 많고 삐쩍 말라 쭈굴쭈굴 했다. 괜스레 창피했다.


 그 당시 생일파티날은 모두가 한복을 입었는데, 대신에는 한복을 파는 가게가 하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항상 번 돈을 장판밑에 숨겼다. 언제나처럼 장판을 열고 만 원짜리를 전대에 챙겨 나를 데리고 시내로 나갔다.


 한복의 종류가 다양하게 있지는 않았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한복은 팔 부분에 색동으로 되어 있고 색감이 아주 진하고 예쁜, 하필이면 그중에 제일 비싼 한복이었다. 노란색 치마에 알록달록한 저고리의 한복. 게다가 저고리 위에 입는 분홍색 두루마기까지. 할머니는 다른 걸 권해봤자 내가 울고불고 난리 칠걸 알았기 때문에 없는 살림에도 내가 고른 한복을 순순히 사줬다.


 이제는 손녀딸이 할머니가 가지고 싶어 하는 걸 사줄 수 있게 되었는데, 정작 할머니는 내 옆에 없다.


나에게 항상 너그러웠던 나의 할머니.

오늘따라 신여성 이봉례여사가 너무 보고 싶다.





* 하단의 하트 라이킷은 저에게 1 뿌듯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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