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 빨기 영재
겨울 하면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김장! 온 동네 아줌마 할머니 다 모여서 김치를 만들고 수육도 먹고 김장은 나에게 항상 신나는 일이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서로가 김장할 날짜를 선점하고 모두 함께 하루종일 김치를 담갔다.
어린 마음에,
'이렇게 모든 집이 김장을 함께 담그면, 모든 집의 김치맛이 똑같은 것 아닐까?'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집집마다 함께 담갔지만 김치 맛은 천차만별이었다. 각자가 준비한 마음의 정도로 맛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난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 김치를 너무 좋아했다. 난 요즘 흔히 말하는 맵찔이라 매운 건 입에도 대지 못하는데 내가 유일하게 먹는 매운 것은 김치이다. 왜냐하면 4살, 5살 때 김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깍두기를 담그시면 옆에 앉아서 간을 보고, 빨갛게 버무려진 무를 입에 넣고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그 맛이란! 무의 알싸한 맛과 약간의 단맛. 수분 가득하면서도 씹기 적당한 질감. 새우젓의 짭조름함과 액젓의 감칠맛 한 스푼. 고춧가루의 환상의 콜라보.
'할머니 김치 먹고 싶다..'
‘뺄례’
뺄례는 우리 할머니 별명이다. '봉례'가 본명이지만 뭐 하면 항상 안 한다고 빼서 뺄례가 됐다는 설, 키는 큰데 몸에 살이 없이 빼빼 말라서 뺄례가 됐다는 설이 있다.
이모할아버지의 이름은 함군평. 할아버지의 별명은 곰팡이였다. 군평이를 여러 번 발음하는 게 어려워 곰팡이로 불렸다.
"네가, 뺄례네 집 손녀딸이냐?"
"맨날 곰팡이가 자전거 뒤에 달고 다니잖아."
그 시절 어른들의 유희는 지금 들어도 재밌다. 이 두 설의 출처는 이웃 마을 아줌마시다.
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식혜를 잘 담그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작은 방에서는 항상 감주(=식혜)를 담그는 약간 쉰듯한 냄새가 났다. 정체불명의 음식!!
뺄례네 손녀딸로서는 유감인 것이 할머니가 그렇게 잘 담그는 식혜를 나는 먹지 못한다. 사실 맛을 모른다.
'왜 설탕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는 거지?'
난 아직도 식혜를 먹지 않는다. 항상 건너 방에는 식혜를 안치는 밥솥과 메주, 말린 고추들이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서로 이기려고 하는 듯 전투태세로 냄새를 뿜어냈다. 난 그래서 그 방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냄새들의 전쟁통에 내 후각을 전사시키지 않기 위해!!
할머니가,
"뿌듯아, 저 방가서잉 마늘 스느게만 뽑아와 야."
"응. 알겠어."
숨을 있는 대로 크게 참고, 말린 마늘을 뽑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할머니 말을 참 잘 들었다고 한다. 심부름도 잘하고, 걸레 빨라고 주면 우물에 가서 두 시간 넘게 있었단다. 걱정돼서 가보면 걸레를 빠는 건지 나를 빠는 건지 모르게 온몸이 다 젖도록 빨았는데 5살 아이가 빠는 거라고는 볼 수 없게 야무지게 빨았단다. 걸레 빨기는 영재였던 것 같다.
나중에는,
"누굴 닮아서. 왜 이렇게 말대답을 지랄 맞게 하고, 징그럽게 말을 안 듣냐. 오메. 저년이 내 속을 후딱 디집는다. "
며 혼났었다. 5살 때는 그렇게 말 잘 듣더니!
할머니 평생 할 효도 그때 다한 거래요. 하하.
*하단의 하트 라이킷은 저에게 1뿌듯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