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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May 25. 2024

뺄례네 집 손녀딸 8

할머니 바보

 유치원 가기 전에는 할머니가 품팔이 노동을 하셨는데 거기에 날마다 따라갔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여주는 토질이 모레여서 땅콩이랑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지었다. 남한강의 선물인 여주! 봄 여름 가을에는 일손이 항상 부족했다.


  할머니를 따라갔다가 새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에게 숟가락 마이크가 배달되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연신 춤을 추며 트로트를 불렀다. 그때부터 흥이 넘쳤나 보다. 나는 보통리 대 스타였다.


 같이 새참 먹고 한바탕 공연이 끝난 후 낮잠을 즐겼다. 그늘막이 있었어도 뙤약 볕 눈부심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내가 찡그리면 할머니가 어느새 알고 땀 냄새 흠뻑 나는 수건을 내 눈 위에 올려주셨다. 나는 희한하게도 그 땀 냄새가 너무 좋았다. 할머니의 살 냄새를 맘껏 맡으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땀 냄새가 그립다.


 나는 할머니 바보라서 잘 놀다가도 어두워지면 할머니를 찾아 그렇게 울어댔다. 다른 할머니랑 친해져서 그 집에서 잘 잘 것처럼 해서 할머니가 맡기고 집에 가면, 몇 시간 잘 놀다가


"으아아 앙~"


 하고 울어서, 전화받은 할머니가 헐레벌떡 그 밤길을 걸어서 나를 업고 집으로 갔다.


'고집불통 김뿌듯. 진작 가자고 할 때 갔었어야지!!'


 할머니는 그런 나에게 짜증을 한번도 낸 적이 없다. 은근히 흐뭇하게, 기꺼이 데리러 온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평생 외로웠던 할머니에게 나는 첫 육아였다.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길러내지 못한 한을 손녀를 기르면서 푸셨던 것 같다.


‘이제 할머니의 큰 사랑을 깨달았는데.. 그 큰 사랑을 갚을 길이 없네...’


 여주의 바쁜 봄 여름 가을이 지나면 한참 동안 할머니의 땀 냄새를 맡지 못했다. 유일하게 농사꾼들이 쉴 수 있는 겨울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업고 밤길에 절집 할머니 집에서 하우스를 오픈했다. 10원짜리 민 화투인데 똥약, 사약, 풍약 등등등 하도 보다 보니 나중엔 내가


“할머니 이거 먹어! 그거 치면 안 돼!”


 수준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면 연신 다른 할머니들이 날 흘겨봤는데 모르는 척하면서 할머니의 승리를 빌었다.


'할머니 우린 환상의 한 팀이었어!'


 할머니가 돈을 따면 기분이 좋아 나에게 늘 후한 간식이 뒤따랐다. 화투가 길어지면 난 할머니 다리를 베고 하염없이 잠에 취하다가 어느새 집에서 눈을 뜬 날도 많았다. 내가 점점 무거워졌을 텐데..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절집 할머니는 무당이었다!!! 항상 그 집에 들어서면 독한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난히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셨던... 절집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의 베스트프랜드 중 한 명이었다. 어릴 땐 잘 몰랐는데 나의 타고난 운명이 보이셨던 걸까? 무당 하면 무섭고, 매서운 눈매가 연상되는데 절집 할머니는 나에게 늘 온화한 분이셨다. 맛있는 간식도 많이 챙겨 주시는...


 나에게


“뿌듯이는 나중에 결혼 늦게 해야 해”


 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네네 이미 많이 늦었습니다. 늦는 김에 더 늦어도 되겠죠 할머니? 우리 할머니랑 하늘나라에서 화투 많이 쳐주세요~ 우리 할머니 심심하지 않게요.'




하단의 하트 라이킷은 저에게 1뿌듯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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