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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Jun 15. 2024

뺄례네 집 손녀딸 14

대신국민학교 1-2반 김뿌듯은 참 똑똑해요

 1-2반 김뿌듯. 나의 담임은 소미우 선생님. 체구가 작으셨지만 당차셨다.


 이때 내 인생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한번 찾아온다. 대신국민학교 주변에 송촌리 분교가 있었고 거기에 유치원이 하나 더 있었다. 난 정글의 하이에나 마냥, 도장을 깨고 다니는 무사처럼 싸움을 해대기 시작했다.


 송촌리에 사는 그 아이와 쉬는 시간 종이 치면 바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싸우고 또 싸웠다. 결국 승패는 나지 않았다. 우리는 평화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서로를 건드리지 않기로.  

    

 이때 나는 매우 거만했었다. 한마디로 재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계속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놀아서 언어나 사고 수준이 또래와는 맞지 않았다. 뭣도 모르면서 나는 초1 때 동네 어르신들과 정치 얘기를 했었다.


 이모할아버지와 늘 조선일보를 보며 방구석 정치 토론을 시작했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데에는 이유가 있지 할아버지? 그런데 기득권이 뭐야?“

“기득권이라는 건,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권력이라는 거야. 뿌듯이는 김영삼 대통령이 좋아?”

“모르겠어, 대통령을 잘하는지 한 번 봐야지.”

“그렇지? 하하하”


무슨 당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지금 생각하면 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 댔던 것 같다.


 내 눈엔 친구들이 너무 어려 보였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 점을 소미우 선생님은 매우 염려하셨던 것 같다. 그 시절 생활통지표에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다.


“우리 뿌듯이는 항상 밝고 명랑한 어린이 입니다. 하지만 나보다 못한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훨씬 더 훌륭한 아이로 성장할 것입니다.” ㅎㅎㅎ 선생님들의 통찰력이란!    

 

 

 대신국민학교는 경필 쓰기를 한 달에 한 번씩 개최해 상을 주었다. 이름도 낯선 경필 쓰기는, 글씨를 잘 쓰는 학생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지금으로서는 기준이 다소 난해하지만,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학교의 따뜻한 배려랄까. 그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나는 아빠를 닮아 승부욕이 엄청 셌다. 지는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해서 경필 쓰기도 꼭 받으리라 다짐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 글씨를 썼다.


 그리고 드디어 상을 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애국 조회를 일주일에 한 번씩 섰는데, 그때 이름이 불리면 교장선생님 앞에 나가서 상을 받았다. 전교생이 보는 앞이라 정말 부끄러워 교장선생님의 네모난 안경만을 쳐다봤다. 자랑스럽고 뿌듯한 그 기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잔뜩 상기되어 조회대 계단을 내려오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떨렸던지...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담임 선생님이 화가 나셨다. 누군가 선생님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다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눈을 감지 않으면 혼난다고 하셨는데, 나는 누가 눈을 뜨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고, 그 아이를 찾아서 선생님께 이르고 싶었다. 내가 눈을 뜨고,     


“선생님, ㅇㅇ 이가 눈을 떴어요!”     

“그럼 너는 그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니?”     

“아~”     

“김뿌듯, 너 경필 쓰기에서 상 타니까 엄청 신나지? 그 신난 마음으로 친구를 이르고 싶은 거야?”     


 나는 엄청 머쓱해졌다. 돌이켜 보면 내가 경필 쓰기 상을 탄 것은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셨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기고만장한 김뿌듯을 사회화 시키기 위한 담임 선생님의 소중한 질책이셨다.      


선생님 덕분에 야만인에서 문명인으로 성장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 기억으로 당시에 3월 한 달 동안, 아니 그보다 더 긴 기간 ‘우리들은 1학년’을 배우는데 너무 지루했었다.      

'우리들은 1학년 맞는데, 좀 더 어려운거 배우면 안 되나?'

    

우리들은 1학년 교과과정이 끝나고 드디어 다양한 과목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할머니 따라 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1학년은 학교가 빨리 끝나서 지은이랑 놀거나, 이모할아버지를 만나러 경로당에 놀러 갔다. 경로당에는 뿌연 담배연기와 달달한 사탕, 오고 가는 화투 장이 나를 기다렸지만, 할아버지는 바둑을 두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건 이모할아버지한테 바둑을 좀 배워뒀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 진득하게 앉아서 바둑을 둘 능력이 없었다.


 경로당 1층에는 경로당에 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밥을 해주시는 모녀가 있었는데, 딸은 말을 잘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지나가면서,     


“언청이야, 언청이”

“에휴. 쯧쯧 안쓰러워라.”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렇게 태어났을까?”

“그래도 애는 참 착햐”

“시집은 갈 수 있으려나?”

     

 수군수군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는 잘 모르지만 이모가 말을 할 때 입을 가리고 하고, 그마저도 쉽게 보기는 어려웠다. 이모가 어른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모는 나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모의 말은 발음이 어눌해서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기도 했지만, 내가 집중해서 들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다 알 수 있었다.      


“뿌듯이 배 안 고파? 뭐 먹을래?”

“응 이모 나 국수 먹고 싶어.”

“학교에서 뭐 재밌는 일 없었어?”

“친구들이랑 그네 타고, 운동장에서 비석치기 했어. 근데 ㅇㅇ 이가 자꾸 반칙을 하는 거야. 너무 화가 났어. 분명히 반칙했는데 안 했다고 해.”

“화는 났지만, 재밌었겠다.”

“응 학교 재밌어. 이모”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재밌게 놀아야 해. 가끔 화나도 조금 참고”

“응. 애들이 좀 바보짓을 하고 거짓말할 때가 있는데, 이모가 그렇게 말하니까 한 번 참아볼게.”

“맞아 우리 뿌듯이는 참 똑똑하고 착해.”

 

이모가 해주는 똑똑하다는 칭찬에 기분이 참 좋았었다. 지금도 나는 '예쁘다' 보다 '똑똑하다'의 칭찬이 참 좋다.

    

 이모, 내가 많이 귀찮게 했을 텐데도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었어. 우리 참 친한 사이였다. 그치? 항상 내가 먹고 싶은 것을 해주고. 나랑 말벗해줘서 고마워.


이모에게 아픔이 있지만, 그건 이모가 잘못한 일이 아냐. 그러니 누군가 이모에게 그것 때문에 눈치를 준다면, 그냥 무시해 버려.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이 훨씬 더 아픈 사람이야. 보고 싶다 이모.






* 필명을 바꾸었습니다. 아이들이 지어준 소중한 저의 별명으로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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