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최애는 황석어젓
1학년 학교 생활은 재밌었지만, 이상한 일도 종종 있었다. 남자아이들만 앞번호를 차지하고 여자 아이들과 나는 항상 20번대였던 것 같다.
‘나도 1번 하고 싶은데, 왜 남자애들이 먼저 하고 여자는 나중이지?’
선생님께 따져 묻고 싶었지만, 혼날까 봐 가만히 참았다.
나도 남자아이들 따라 태권도 도장에 다니겠다고 할머니에게 말했는데,
“기집애가 무슨 태권도여. 피아노 학원은 보내줄게. 피아노 가”
울며 겨자 먹기로 피아노 학원에 갔지만, 왜인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은 친절하지 않았다. 그 많고 많은 피아노 하얀색 건반에서 '도'를 가르쳐주지 않고 '도'를 찾으라고 했다. 여기저기 도가 아닌 음들을 짚어내자, 플라스틱 자의 좁은 면이 위로가게 세우고 내 손가락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아악!!!”
“다시 찾아봐 김뿌듯”
가르쳐 주지 않고 찾으라니, 내가 무슨 ‘피아노의 신’인가? 피아노 학원이 무척이나 싫었다. 당시 피아노 학원 원비는 갈색 봉투에 넣어갔는데, 내야 하는 기간을 여러번 어겼다. 할머니는 자신이 피아노 학원을 보내놓고서도 돈을 주지 못하는 달이 많았다.
‘학원 가기 싫은데....’
학교가 갑자기 일찍 끝나는 날 고은이랑 도시락을 들고 피아노 학원에 갔다. 하얀 레이스가 깔려 있는 식탁에서 밥을 먹는 그 순간, 나는 김치 국물을 흘렸다. 하얀 레이스에 빨간 김치 국물이 방울방울.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화난 표정이 약간 고소했던 건 비밀이다.
난 그 이후부터 자로 손가락을 맞지 않아도 됐다. 어린이 바이엘 상권을 마치지 못한 채, 피아노 학원에서 쫓겨났다. 쫓겨나는 게 이렇게도 신나는 일이라니!
나는 종종 경로당에서 할아버지 옆에 가방을 벗어두고 나만의 모험을 떠났다. 경로당 뒤 산속 길로 들어가면 제법 큰 절이 있는데 아이 걸음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숲의 흙을 밟으며 나무들과 친구 삼아 걷는 그 길은 힘들지 않았다. 고요한 절에 들어가면 항상 스님이 회색 옷을 입으시고 인자한 미소로 반겨주셨다.
한 시간 넘게 걸어와 땀을 흘리는 나를 위해 맛있는 간식도 챙겨주셨다.
“너는 이름이 뭐니?”
“김뿌듯이에요.”
“몇 살이야?”
“8살이에요.”
“어디 사는데 여기까지 혼자 걸어왔어?”
“사는 건 새마을(보통 3리)인데, 할아버지 경로당 따라왔다가 심심해서 놀러 왔어요.”
“친구들하고 놀지, 왜 여기까지 왔어?”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가 데리러 오는데, 저는 할머니가 바빠서 6시 넘어야 돼요. 이모할아버지는 경로당에서 바둑 두고 있어요.”
“그렇구나. 뿌듯이는 소원이 있어?”
“네, 공부 잘하고 싶어요.”
“그럼 저기에 있는 탑 있지? 저기에 소원을 빌면서 돌아볼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이루어지거든.”
“몇 바퀴나 돌아야 해요?”
“소원이 이루어지기 원하는 만큼.”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탑을 돌고 또 돌았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질 때까지. 할아버지와 해 지기 전까지 돌아오기로 한 약속이 떠올라 서둘러 돌아온 적이 많았다. 나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자전거를 뒤에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왠지 모르게 항상 뿌듯했다.
집에 도착해도 할머니는 없는 날이 많았다. 밭일이 6시에 끝나지만 뒷 정리하고 양촌리에서 보통리까지 와야 했기 때문이다. 성질 급한 나는 집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새마을 어귀에 나가 눈이 빠지도록 할머니를 기다렸다.
‘탈탈탈탈 덜거덕 덜거덕. 탈탈탈탈’
시끄러운 경운기 소리가 귀에 진동을 하면 할머니가 다 왔다는 알람이었다. 할머니는 항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에 젖어 힘든 표정이었지만, 기다리는 나를 보면 그렇게 좋아하셨다.
“오메, 저 기집애. 차 무서워서 기다리지 말라니까는. 꼭 저렇게 기다리고 있어. 말은 드럽게도 안 들어 처먹어”
“할머니가 보고 싶은 게 저러지.”
땀에 젖은 할머니 옷가지랑 챙이 넓은 모자를 내가 들고, 할머니와 함께 집에 가는 그 길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나는 하루동안 할머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쉬지 않고 말했다.
“뿌듯아, 말 그렇게 많이 하는 게 힘들지도 않냐?”
“말하는 게 왜 힘들어? 말을 못 하는 게 더 힘든데?”
“아이고, 너는 한평생 심심하지 않겠다.”
“할머니, 오늘도 윤순이 아줌마가 돈 더 줬어?”
“응. 내가 다른 할마시들보다 밭 두 고랑은 더 많이 하니께.”
“아싸. 신난다. 나 가는 길에 하드(아이스크림) 사줘.”
“그래, 가겟집 가서 너 먹고 싶은 거 사와. 밥 먹어야 되니께 하나만 사와야혀.”
“응 여기서 기다려. 내가 금방 뛰어갔다 올게.”
밭일에서 속도전을 펼치는 할머니와 그 손녀를 위해, 윤순이 아줌마는 남들 몰래 일당을 더 쳐주는 날이 많았다. 종종 다른 할머니들의 시기는 덤이었다. 걸어서 집에 돌아오는 길은 20분 남짓 걸렸는데, 하루동안의 이야기를 다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손 맛 좋은 전라도 여성이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와서는 항상 뚝딱뚝딱 맛있는 반찬을 만들었다. 갓 지은 여주 쌀 밥에, 방금 무친 나물 무침. 생선이나 고기 중 하나, 국이나 찌개가 빠지지 않는 밥상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항상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며 고봉밥을 주었다.
“배불러, 그만 줘!!!!!”
“먹고 남겨, 남기면 개 주면 되지. ”
“그럼 다 먹으라고 하지 마.”
“그려, 먹고 체해서 병원 가는 것보다 남기는 것이 나서. 먹을 만큼 먹고 남기랑께. 개 밥 주게”
이모할아버지와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한상 가득 상을 차리지만 정작 본인은 잘 먹지 않았다. 할머니는 항상 맹물에 흰밥을 말고, 정체 모를 생선 젓갈만을 먹었다. 투명한 유리병에 죽어있는 생선이 가득한 알 수 없는 그 젓갈. 그건 바로 황석어젓이다. 나는 보기만 해도 질색팔색을 했는데 할머니는 그 황석어젓을 가장 좋아했다.
나는 또래 치고 비린 음식을 참 좋아하는데, 아마도 할머니 때문인 것 같다.
밥을 먹고 할머니는 항상 틀니를 투명한 유리잔에 물을 채워 넣어뒀다. 조금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왠지 틀니가 살아나서 나에게 잔소리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항상 먹어야 하는 할머니의 혈압약이 있는데, 본인 약인데도 할머니는 항상 깜빡깜빡 잊는 일이 많았다.
“할머니 약 먹어.”
“응”
“이놈의 약 징글징글하다. 안 먹었으면 싶어”
“의사 선생님이 밥 먹고 꼭 먹으라고 했잖아. 오래 살고 싶으면 먹어”
“오래 살아서 뭣 하게? 나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하등 없는 사람이여.”
“오래 살면 내가 나중에 돈 벌어서 할머니 줄 건데? 할머니 좋아하는 젓갈이랑 홍시도 많이 사줄게.”
“그려. 그러면 먹어야지. 우리 뿌듯이 잘되는 거는 보고 죽어야겠다”
나의 중요한 일과였다.
‘할머니 하늘나라에서도 황석어젓 많이 먹고 있어? 할머니가 왜 그렇게 비린내 나는 걸 좋아하나 했더니. 나도 좋아지더라. 친구들은 잘 못 먹는 고등어회도 나는 잘 먹어.
거기는 틀니도, 혈압약도 필요 없을 테니 다른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 내가 번 돈은 할머니 주고 싶어도 못주니까, 할머니 용돈 준다 생각하고 어려운 아이들이나 내가 담임하는 아이들 도와줄게. 이해해 줄 거지?’
* 주말이 사라지는 속도는 마치 제 월급이 사라지는 속도와 맞먹는 것 같아요. 다시 찾아오는 월요일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편안한 쉼과 여유를 즐겨보아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