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불편했던 잠시의 동거가 끝나면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할머니와 이모할아버지는 종종 그 행위를 ‘징역’에 비유하곤 했다.
“우리 뿌듯이 또 징역 살다 왔네”
“할아버지, 왜 아빠네 집에만 가면 소화가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해?”
“글쎄..”
"할머니한텐 말하지 마 할아버지"
아빠집으로 가야 하는 건,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하는 숙제 같았다.
나는 어느새 할머니와 함께 밭에 가는 일상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2학년 운동회 날! 점심시간에 친구 영하랑 군것질을 하고 시간에 맞춰 운동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몇 주 전부터 기침이 나고 이상한 침이 목에서 넘어왔다. 콧물 같기도 한 이상한 침. 시간에 맞추기 위해 학교 앞 횡단보도로 내달리는 와중에 기침이 심하게 났다. 땅에 뱉었는데 피가 나왔다. 입 주변에도 손바닥에도 피가 흥건했다. 놀라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운동회가 더 중요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길에 뱉고, 남은 운동회에 청군이 이기도록 최선을 다했다.
집에 가자마자 할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할아버지는 화들짝 놀라시며 할머니에게 오늘의 일을 전했다.
다음날 할머니는 밭에 나가지 못하고 나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 보통리에서 대신. 대신에서 여주 시내까지. 택시를 더 타고 나서야 고려병원에 도착했다. 나의 진단 결과는 결핵이었다. 결핵은 흔히 개발도상국에서 걸리는 질병으로 알고 있으나 생각보다 그 원인은 다양하다.
“오메, 의사 선상님. 뿌듯이가 결핵이라고요. 뭐 때문에 그런 병에 걸렸나요잉”
“원인은 다양하지만, 피곤하거나 먹는 것 때문에 걸리기도 합니다. 누구한테 전염됐을 수도 있어요.”
“못 먹어서 걸린 것이요?”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원인이 있을 수도 있어요.”
“오메, 내가 그렇게 밥을 해다 받쳤는디. 이거시 무슨 일이다냐. 이놈의 기집애, 밥 잘 처먹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드럽게도 안 듣더니. 이런 사단을 만드네. 만들어. 오메~ 어쨌쓰까잉.”
그 이후로 나에게는 나만의 수건과 숟가락. 단독 밥상이 제공되었다. 전염이 심한 병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힘들었겠지만, 은근히 대접을 받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약 먹는 것은 고역이었다. 여러 알약을 갈아 미숫가루 색이 된 약을 매일, 매 끼니에 먹어야 했다.
아마도 ‘할머니 말 안 듣기’ 대회가 있다면 내가 세계에서 1등 할 자신이 있다. 병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기에 세 번 중 두 번은 제대로 먹고 한 번은 안 먹었다. 약봉투가 줄어들지 않는걸 할머니가 눈치챌 수도 있어서 나만의 은밀한 작업을 시작했다.
‘쓰레기 통에 버리면 분명 할머니에게 걸리는데...집 뒷 산에 삽 들고 올라가서 묻어버리자.’
나는 그렇게 산이 아프기라도 한 듯, 산에게 약을 먹이는 사람처럼 열심히 내 약을 묻고 또 묻었다. 여느 날처럼 산에서 삽질을 하다가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보고 놀라서 울다가 할머니에게 들키기 전까지는.
하지만 더 문제는 이립이었다. 돌이 막 지난 막내 남동생 이립이 까지 결핵에 걸렸다. 몇 주전 아빠집에 가서 동생이 예쁘다며 뽀뽀를 했었기 때문이다.
새엄마는,
“너가 이립이한테 뽀뽀해서 이립이도 결핵에 걸렸잖아!!!!”
작은 눈이 나를 찌르기라도 할 듯 잔뜩 매서웠다.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나도 옮기고 싶어서 옮긴 것은 아니었다. 나 때문에 내 동생까지 아프다니! 나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아팠다. 가능하다면 이립이의 병을 가져와 내가 더 아프고 싶었다.
‘결핵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사람은 없어요. 옮길 생각은 더군다나 하지도 못했어요. 나도 아팠어요. 가슴속 폐도. 마음도.’
만약에 할머니가 저승에서 하루의 방학이 생긴다면, 억울했던 이 이야기를 지금이라도 이르고 싶다.
지금은 폐가 아주 건강합니다. 달리기도 잘할 만큼요! 하지만 저를 따라하시면 안 돼요! 일요일의 끝에 안온함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