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사람 두 명, 김영삼 대통령과 약사님
나의 국민학교 생활은 행복했지만, 이해되지 않는 상황도 생겼다. 3학년 때 담임이었던 P는 아동문학을 저술할 만큼 마음이 따듯하고 아이들에게 친절한 분이었다.
어느 날 본인이 책을 쓰셨다며 아이들에게 보여주셨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엄마에게 ‘담임 선생님이 책을 쓰셨다’ 고 전하라 하셨다. 다음 날 아이들 책상 위엔 선생님의 책이 놓여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대략 5명 정도가 그 책을 사지 않았는데, 앞으로 나오게 해 줄을 세우시고 물으셨다.
“뿌듯이는 선생님 책이 마음에 들지 않니?”
“아니요.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왜 선생님 책을 사주지 않는 거야?”
“음... 우리 할머니가 집이 좁으니까 지지한 것(쓸데없는 것) 사지 말라고 했어요. 선생님 책은 학급문고에 있는 걸로 볼래요.”
“그래......”
최종적으로 나를 포함한 두 세명 정도만 선생님의 책을 사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나만 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제와 진실을 말하자면, 할머니에게 책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항상 내가 뭘 사고 싶다 하면 순순히 사주지 않았다. 책과 먹는 것 빼고는... 그리고 사실 그 책을 그 정도로 가지고 싶지 않았다.
‘사고 싶은 사람만 사면 되지 왜 강요하는 거야. 짜증 나게. 지는 월급도 받으면서?’
조금 화가 났었다.
그래서인지 3학년 생활은 기억나는 것이 없다.
"뿌듯이 ~~~ 해라!" 하면,
"싫은데?" 반항기 가득한 10살 김 뿌듯이었다.
4학년. 국민학교의 이름이 초등학교로 변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신문과 뉴스에서 황국신민의 줄임말인 국민학교를 폐지하고 초등학교로 명칭을 변경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를 폭파하는 생중계 뉴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건물의 둥그런 뚜껑이 폭파되고 난 후, 먼지가 서울 하늘에 가득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목소리엔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함이 묻어났다.
'이런 먼지라면, 서울 사람들도 이해해 주겠지?‘
할아버지 말대로 김영삼 대통령이 잘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이후에 역사교육과에서 공부를 할 때 일본이 자신들의 근대 문화유산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고 제안했으나, 화끈하게 폭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김영삼 대통령 좀 멋있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의 공부인생의 위기가 찾아왔다. 수학이 갑자기 어려워진 것이다. 도대체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자괴감을 가질 즈음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대신 약국을 찾아갔다.
대신 약국은 서울대를 나온 약사님이 운영하시는 농협 옆 작은 약국이었다. 소아마비를 앓으셔서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작은 체구의 약사님은 결혼을 하지 않으시고 누나와 함께 약국을 운영하셨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는,
“소아마비만 아니었으면 대신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이야. 대신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거든. 뿌듯아. 약사님한테 어려운 수학 물어봐”
인싸기질의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무료로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약사님은 알알이 예쁜 색 약으로 수학을 설명해 주셨다. 내가 알록달록한 옷을 자주 입었는데, 그것을 눈치채시고 내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알려주신 것이다. 가끔 학교 끝나고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약국에 들러 약사님께 여쭤보곤 했다. 투명한 약 보관함 위로 하얀 얼굴에 검은 안경테를 반짝이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약사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쩜 그리 친절하셨을까.
나는 그 이후로 수학 시간이 두렵지 않았다. 약사님, 감사합니다.
* 금토를 너무 신나게 놀고, 집에서 실신하듯이 자버렸네요. 토요일 발행약속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학기 말 성적처리와 채점, 생활기록부 작성 때문에 주 2회에서 1회로 발행 횟수를 줄였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여전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촉촉한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