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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Jul 06. 2024

뺄례네 집 손녀딸 19

우리 선생님은 여왕님


내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제일 큰 영향을 받은 선생님을 꼽으라면 단연코 염현아 선생님이시다.


 5학년 개학 첫날 담임선생님을 발표하기 직전 학교에서 우연히 낯선 선생님과 스쳤는데,

 

‘저분이 우리 반 담임 선생님 이셨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다.


 동그란 얼굴에 반짝이는 눈동자와 씩씩한 발걸음이 참 멋있다고 느꼈다. 동화책에 나오는 여왕님 포스가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나의 바람대로 나는 그분의 담임 반 학생이 되었다.

 

 선생님은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있었지만, 나의 종알종알 떠드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는 분이셨다. 노란 프리지어가 잘 어울리실 것 같아 주말에 아빠집에 갔을 때 새엄마에게 용기 내어 담임 선생님께 프리지어(프리지아) 꽃을 사드리고 싶다고 부탁했다. 내 예상대로 선생님은 프리지어(프리지아)를 좋아해 주셨다.


 선생님은 교육대학교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다고 말해주셨는데, 나처럼 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모아 배드민턴을 알려주셨다. 선생님의 강 스매시에 남자 선생님들이 쩔쩔매는 모습이 우스웠다.


'여자도 운동으로 남자를 이길 수 있구나! 우리 선생님 진짜 멋있다.'


 선생님의 퇴근시간이 되면 나를 하얀 티코에 태우시고 선생님의 사부님과 함께 데려다주셨다. 집에 가기 위해 혼자 걷는 것도 행복했지만, 선생님 차 뒷자리에 타는 일은 내가 뭔가 특별한 학생이 되는 듯한 행복감에 도취되었다.


 “선생님,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릴 때마다 내 목청껏 선생님에 대한 나의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선생님과 함께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다. 5학년 때 여주군에서 해마다 열리는 합창제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지휘를 맡으신다고 하셨다. 매일 같이 강당에 아침 8시쯤 모여 파트별로 연습을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들었지만,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부르던 노래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새봄.

 사뿐 봄나비, 사뿐 진달래 방긋 반기는 한나절. 봄노래를 노래하며 봄맞이 가자! (둘셋) 산에 들에는 향기 넘치네 라라라라라라라라~’

 

 ‘새야 새야.

(부드러우면서 약간 슬프게 시작!)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후~ 울고 간다’

 

선생님은 어느 날 까만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오셨다. 그날 우리에게 하루 종일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에 대해 말씀하셨다.

     

“얘들아 잘 들어봐. 우리나라는 아직 비리라는 것이 있어.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만,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어설프게 해서는 안돼. 나쁜 사람들을 이기기 위한 월등한 실력을 가져야 해. 뒤에 있으면 따라 잡히지만 아주 앞에 있으면 잡히지 않아.”


초등학교 5학년에게 따끔한 사회의 생리를 알려주신 느낌이었다. 나는 그날 최선을 다해 공부하리라 다짐했다. 다짐만큼은 항상 우주 1등이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을.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5학년 때 외운 이 시조를 나는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힘들 때마다 되뇌이고 있다.


1학기가 지난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시내에 있는 문구점에 가셨다. 거기서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양치 세트와 반짇고리, 예쁜 필통과 학용품을 사주셨다.      


“뿌듯이에게만 주는 선물이야. 급식 먹고 이를 잘 닦아야 하고, 뜯어진 옷이 있으면 실과(가정) 시간에 배운 방법으로 꿰맬 수 있지?”


“네. 선생님.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공부 더 열심히 할게요.”


“우리 뿌듯이는 인사를 참 잘해. 너무 예쁘다. 별 것 아닌데 네 인사를 들으면 선생님도 기분이 좋아져.”


“^.^”     

엄마의 손길이 부족한 학생을, 선생님은 엄마처럼 품어주셨다.      


 이모할아버지는 이때 처음 선생님을 만나서 나에 대해 의논하신 것 같다. 학기 말에는 선생님 집에 놀러 가서 1박 2일을 재밌게 놀았다. 선생님의 사부님, 예쁜 따님과 사람 만한 토끼인형과 함께. 잠들기 전 베개에 수건을 올려주시면서,     


“뿌듯이 잘 자.”     


해주셨던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라는 사람이 있다면 매일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걸까?'     


상상에 빠지면서 깊은 잠에 들었다.


이후 나도 강원도에 있는 대학교에 가게 되면서, 연수 때문에 오신 선생님과 맥주 한잔을 기울였는데 선생님은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다.   

   

‘선생님 저 하나도 잊지 않고 있어요.’     


 이때 선생님 집에 놀러 갔던 기억이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아서, 나도 담임 맡은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이벤트를 열곤 했다.

      

제1회 뿌듯 캠프 개최!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내가 마치 무엇이라도 된 사람 같다. 그리고 그 시절 나에게 엄마셨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 오늘도 비가 오는 하루로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1학기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어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왜이리 빨리가는 지요. 남은 2학기도 하루하루 행복하고 뿌듯하게 지낼 수 있도록, 아이들과 최선을 다해서 놀며 배우고 싶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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