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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Jul 14. 2024

20. 영웅호걸 자전거와 삼둥이

영웅호걸 자전거와 삼둥이

 초등학교의 마지막 해.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자전거를 참 좋아한다. 할머니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할머니는 번번이 거절했다. 우리 집 앞은 바로 큰길이 지나서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인, 자전거 타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빠에게 자전거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아빠에게 자주 뭘 사달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는 바로 호랑이가 그려진 영웅호걸 자전거를 사주었다. 자전거를 바로 타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집에 없었다. 자전거를 사주고 아빠는 다시 아빠의 집으로 가야 했다.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집 옆 논 둑으로 새 자전거를 끌고 갔다. 나 혼자 타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안장에 앉아 심호흡을 크게 하고 페달을 굴리는 순간, 바로 논으로 처박혔다.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한 면을 잘 타기가 어려웠다.


 내가 첫 라이딩 장소로 논을 선택한 것은 넘어져도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라이딩이 끝난 후 할머니 표정에서는 심한 쌍욕이 느껴졌다.


 세 번 정도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많이 논과 친밀하게 만나고 나서야 나는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었다. 처음에 강하게 배워서 인지 자전거만큼은 어디 가서 좀 탄다는 소리를 듣는다.


 손석희 앵커가 한 말 중에      


“대개, 노력하다 보면 되거든요.”


이 말을 참 좋아하는데, 나에겐 자전거가 노력하다 보니 되는 일이었다.

 

 우리 집에서 할머니 약 챙기는 것만큼의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개 밥 주는 일이다. 평소에는 사료를 주지만, 종종 내가 남긴 밥을 개들에게 주는 특식도 제공됐다. 특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윤순이네 아줌마가, 흰 바탕에 점이 많은 달마시안과 사촌 격인 개 한 마리를 선물해 주었다. 한눈에 봐도 다리가 길고 쭉 뻗은 잘생긴 개였다. 우리 집에 온 첫날을 기념해 주기 위해서 먹고 남은 치킨 뼈를 주었다. 잘 먹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켁켁 켁켁켁"


힘들어했다. 할머니에게 이실직고했는데, 할머니가 개의 입을 벌려 숟가락으로 쿨하게 닭 뼈를 빼냈다. 좋은 마음으로 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이 날 처음 생겼던 것 같다.  


 우리 집에 귀염둥이 삼둥이가 태어났다. 삼둥이가 태어난 사연이 있다. 삼둥이는 각자의 매력이 넘치는 강아지로, 내가 키우던 왕순이가 언젠가 목줄이 풀려 마을에 다녀온 이후로 태어난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가 오는 시간에 맞춰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삼둥이들이 태어나고는 학교 끝나자마자 돌보러 집으로 갔다. 밥이나 사료를 줄 때 노란색 얇은 양은 대접에 떠서 주곤 했는데, 작은 그릇 소리라도 들리면 어디선가 내 옆으로 뛰어와 눈을 반짝였다. 강아지들에게 밥을 주는 일은 참 행복했다. 나만을 바라보고 행복해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내가 태어난 이유를 날마다 증명받는 느낌이었다.

 

 할머니는 강아지를 방에 데리고 들어오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나의 캐릭터대로, 할머니 몰래 번갈아 가면서 한 마리씩 할머니가 자고 있는 이불속으로 넣어줬다. 겨울인 데다 개집이 변변치 않아 많이 추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강아지들이 할머니 이불에 똥과 오줌을 싸대서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쌍녀르 기지배! 천벌을 받아 뒤질 기지배!! 조상님은 뭐하시오! 저런 년 안잡아가고잉. 말을 왜 이렇게 안들어처먹냐 이년아. 개 똥 싸면 뒤치다꺼리는 내가 다 하는디, 인심은 지가 쓰고 뒷 감당은 내가 하고 앉아 있네. 시팔. 오메. 저 잡년. 아주 그냥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하고 댕기는 저년. 나쁜 년”    



 당시 우리 집은 세탁기가 없었다. 찬물에 마르디 마른 할머니의 손으로 이불 빨래를 해야 했기에 나는 할머니에게 말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마당으로 쫓겨나 싸리 빗자루로 여러 대 맞을 뻔했지만, 맞지는 않았다. 재빨리 뒷산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달리기로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 집 바로 옆에는 미숙이네 논이 있었는데, 내가 학교간사이 논에 농약을 뿌렸다. 삼둥이들이 아마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 물을 핥아 마신 것 같다. 세 마리가 나란히 논 두둑에 배를 보이고 누워있는 장면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왔는데, 왜 배를 까고 누워 있지? 안 달려오고 이것들이?'

 

그렇게 삼둥이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긴 여행을 떠났다.     


 “내가 주는 것 아니면 먹지 말라고 했는데, 너희에겐 참 어려운 일이었겠지? 너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함께 여행을 떠난 거니까. 올 때와 갈 때를 함께하는 여행은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아. 거기서도 사이좋게 잘 지내.”


 마음이 힘들었던 날, 자전거를 타고 대신 시내로 나가서 이곳저곳 페달을 밟으며 슬픔을 잊고자 노력했다. 노력하다 보면 슬픔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도 강아지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는 것 같다.





* 주변에 축하할 일이 참 많은 한 주였습니다. 더위와 장마 조심하세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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