뺄례네 집 손녀딸 3

보살핌과 배고픔 사이

  이모할아버지는 유식하고 학자적 기질이 엿보이는 사람이었으나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 장사 수완이 좋고 손맛 좋은 이모할머니가 그 집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외 아들 한유수. 아빠와는 운명의 숙적, 라이벌과 같은 인물이다.

  할머니는 평생 밤낮없이 일을 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의 재회는 사치라 느껴질 정도로 일을 했다. 다른 집 식모살이를 하느라 오랜만에 찾아온 막내아들에게 마음을 내줄 겨를이 없었다. 마음보다는 밥이 더 급했다.

  아빠는 늘 외로웠을 것이다. 군산에서는 마냥 사랑을 줬던 할머니가 보고 싶어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았겠지? 거기다 더해 이모할머니 부부가 아빠에게 슈퍼 배달을 시키기도 하고 일을 많이 시켰던 거 같다. 묵묵히 시키는 대로 했던 아빠는 한참 사춘기 시절 배달하는 모습을 친구들이 보는 것에 너무 창피했었다고 얘기했었다.

 자신의 아들은 한 번도 배달을 시키지 않았으면서 조카에게는 험한 일을 시킨 것이다. 자존심 강한 아빠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으리라...

 세상은 왜 이리 아빠에게 가혹한 것인가. 아빠가 또 한 번 견디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 바로 할머니가 다른 남자와 살림을 합치게 된 것이다! 군산에 버젓이 아빠가 살아 있는데, 그것도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할아버지를 집에 들이게 된다.

  아빠는 이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한참 사춘기에 감수성이 풍부한 아빠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을 거고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 아니 증오하고 싶었지만 엄마이기에 쓴 울음을 토하며 울분을 삭였을 것이다. 그렇게 아빠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때는 학교에 월사금 같은 것을 내던 시절이었는데, 늘 공부도 1등 운동도 1등인 자신이 돈을 못내 친구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선생님도 그렇게 구박을 하고 면박을 주셨다고 한다.

 그 시절 아빠는 좋은 어른을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본인의 말로 스스로는 운동도 잘해서 축구 경기할 때마다 최전방 공격수를 했다고 했는데 실업팀에 가려고 했으나 경제적 상황이 또 발목을 잡은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어릴 때, 항상 수준차이가 있어서 조기축구회랑 같이 공을 찰 수 없다며 어린 나를 골키퍼 세워 놓고 강슛을 날리기도 했다. 그때 아빠의 축구 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소스라치는 공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