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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과학자 Jan 01. 2023

[일상] 나의 해방일지, 소설 같은 2022년

1년을 정리하며...

올해는 소설 같은 한 해 였습니다.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5단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올 해가 저에게는 그러하였던 것 같아요.


발단 (1~3월)

1월달에는 안전 점검 때문에 엄청 시달렸던 기억이 있네요. 제가 실험실 도면부터 짰었을 정도로 저희 센터는 아예 실험하던 사람들이 없어서, 실험실 시스템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팀 동생들과 함께 1월, 1달은 거의 안전 점검 관련 행정서류 처리했었습니다. (참...안전 점검하는 것은 연구자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매우 중요하지만, 안전 관련된 행정 서류를 모두 연구자에게 넘기는 상황이라 대한민국 R&D 환경에서는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고는 들었는데, 선진국 답게 안전 관련되어 인력 보충도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안전 관련된 행정서류 준비하면서 기획보고서, 연구계획서를 썼네요. 저는 지금까지 제 연구분야와 관련된 연구과제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과제에 빌붙어서 연구비 조금씩 모아서 장비 사고, 세팅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 연구분야를 위한 과제를 저의 담당 박사님과 기획을 하였고 기획보고서, 연구계획서를 써서 한국연구재단 과제에 지원했습니다. 앞으로 6년동안 연구비 걱정없이 연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메일로 보자마자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이거 준비하면서 흰 머리가 진짜 엄청나게 자랐어서 같이 연구하는 동생이 가위로 직접 잘라주었더라죠.


이 때, 졸업 요건을 위한 전공 시험 2개도 같이 병행하면서 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내가 일을 바쁘게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성실하게 하다보니 2가지 다 잡을 수 있었네요. 아쉬웠던 부분은 3월까지 너무 행정처리만 하다보니 연구가 잠시 끊겼다는 거? 남들이 보면 왜 연구를 못 해? 라고 하지만, 저는 이 연구 과제를 따는 것 자체가, 저의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었거든요.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전개 (4~6월)

이 때부터 연구와 수업에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로봇으로 나노입자 엄청 만들고 데이터 확인하고, 최적화 시키는데 엄청 시간을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완전한 최적화하기까지 좀 남았었습니다. 그리고 수업도 세미나 수업이 있어서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지만, 세미나 들으면서 여러 가지 들었던 부분을 놓치지 않고 정리하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당장 내가 해당 분야를 잘 몰라서 이해를 못하지만, 나중에 내 연구분야를 깊게 이해한 상태에서 넓게 다양한 분야를 받아들일 때, 저의 자산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더욱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담당 박사님 학회 따라다니면서 박사님이 청중들을 어떻게 매료(?)하는지를 관찰했었어요. 저는 처음 KIST 들어갈 때 발표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제 발표는 지금까지 저만 이해할 수 있었더라구요. 청중을 고려하지 않은 발표였었습니다. 그에 비해 담당 박사님은 청중의 이해도를 완벽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발표자료를 준비하여 청중을 매료시켰고, 많은 부분들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KIST에서 연구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하는지를 배우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인 것 같아요. 이건 어떤 분야에서 종사하는지 상관없이 모두 필요한 스킬이니깐요.


위기 (7~9월)

7월달에는 제가 구상하고 있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새로운 실험대가 왔었어요. 막상 오니까 이 넓은 실험대를 어떻게 채울까? 내가 과연 다 채울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함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시기였습니다. 이를 채우기 위해 지금도 저희 팀 동생들이 무한한 노력을 하는 중 입니다. (빨리 논문으로 나와서 제가 소개하는 시기가 왔으면 하네요.)

8월달에는 과제 kick-off meeting이 있었습니다. 담당 박사님을 대신해서 KIST 대표로 제가 이 자리에서 발표를 대신하게 되었는데요. 준 학회 느낌이었습니다. 각 분야별로 유명한 교수님들, 박사님들 앞에서 발표하다보니 처음에는 엄청 떨렸지만, 준비를 많이 하고 가서 거의 누르는 대로 말이 나왔던 것 같아요. 준비 과정도, 발표 기다리는 시간, 발표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제 담당박사님이 저에게 큰 기회를 주신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이 발표 이후에, 어떤 학회에서 발표를 하더라도 덜 떨리고 수월하게 가능하게 됬다고 생각합니다.


미팅 발표 준비 하면서, 로봇으로 실험을 돌리는데 이렇게 에러가 나있으면 정말 그날 하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 최대였습니다. 정말 이 시기가 집 가서도 "로봇은 잘 하고 있을까?, 왜 실험 끝났다고 알람이 안오지?, 연결이 끊겼나?"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2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깨서 확인했던 것 같아요. 사람이 편하자고 한 연구인데, 그 결과를 얻기 전까지는 사람이 고달픈...역설적인 상황에 눈물도 날 뻔 했습니다 ㅎㅎ


번외로, 저에게는 이 시기가 생활적으로 참 힘든 시기였어요. 연구만 해도 모자란데 나의 소득과 자산을 걱정을 많이 했던 시기였습니다. 나의 소득은 이제 등록금 포함 월 200이고, 뭐 떼고 뭐 내고 하면 월 40으로 생활하는데, 또래 친구들은 벌써 회사가서 성과급 받고...남들과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것 같고... 그래서 소득 격차를 줄이기에는 내 월급은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자산 격차를 미래에라도 줄이고자 주식, 부동산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불안함이 없어졌지만, 이 시기가 연구적으로 뿐만 아니라 생활적으로 불안했던 시기지여서 힘들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절정 (10~12월 초)

10월과 11월은 학회 준비 및 학회 활동의 연속이었네요. 진짜 엄청난 강행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학회활동은 1년에 2번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것 같아요. 자주 가니까 refresh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고, 연구도 아니고... 좀 애매한 느낌이었어요. 근데 또 학회활동 끝나고 몸도 안좋아지니... 이 시기가 정말 2022년이라는 소설의 절정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ENGE에서는 처음 저의 연구분야에 대해서 발표하면서, 내 연구분야에 대한 확신과 동시에 내 연구분야에 대한 연구자들의 두려움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로봇이 일자리 뺏는거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학위 과정을 하면서 해당 물음에 대하여 연구자들에게 어떻게 해답을 줘야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MRS 학회에서는 computer vision 연구 결과를 발표했었어요. 제가 vision 논문에 애착을 가지게 된 계기가 MRS였던 것 같아요. 저는 중요한 연구는 AI로봇실험실이고, vision 논문은 부수적인 연구라고 생각했는데 연구자들에게는 해당 논문이 엄청 직관적이고 실용적이여서, 연구자들을 설득하기 매우 쉬웠던 것 같아요. AI로봇실험실을 하는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필요한 기술이라고 다들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감을 얻었다고 해야할까요.


하지만, 그에 비해 MRS에서는 한편으로 두려움을 얻었습니다. 재화적으로 두터운 지원, 성공한 케이스만 보여주는 한국 학회에 비해 실패했던 연구도 학회에서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와 실패한 연구에 대해서 교수부터 학생까지 동등한 위치에서 discussion 할 수 있는 학회 분위기.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행정 시스템... 한국에 비해 시스템적으로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한국도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하루 빨리 만들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렇다할정도로 추계금속재료학회, ENGE, MRS 를 1주 간격으로 연달아 다니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그만큼 체력이 못 받쳐줬던 것 같아요. 


바로 몸살에 걸려서 한 1달 정도는 계속 고생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이렇게 몸이 아플 수가 있구나를 체감했습니다.


아직도 잔기침을 달고 있으니, 제 몸이 확실히 무리했나봅니다. 대학원생은 건강해야 연구도 잘한다던데... 이제부터라도 아프지 않도록 운동 열심히해야할 것 같아요.





결말 (12월 말)

그래도 진짜 끝나지 않을 것 만 같았던 2022년을 보내고, 연말에 휴가를 보내며 (사실 연말에도 계속 행정서류 때문에 제대로 쉬지는 못했어요...ㅎㅅㅎ...)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니, 나름 바쁜시기에 중간 중간 숨을 쉬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힘들었지만, 여러 경험들, 교훈들도 얻고 뜻 깊은 2022년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실 사람들과 옥상에서 삼겹살 파티, 한강 나들이, 그리고 테니스. (테니스는 진짜 잘 시작한 듯. 매번 배워도 어렵지만, 연구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느정도 해소시켜주는 것 같아요. 대학원생들 강추합니다...)


MRS 다녀오면서 메사추세츠 거리와 캠브릿지 거리를 거닐면서 MIT와 Havard를 방문했었어요. MIT는 진짜 가슴이 웅장해졌어요. 매번 MIT에서 좋은 논문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떤 환경이길래, 어떤 시스템이길래, 교수들이 어떻게 지도하길래 저렇게 좋은 논문들이 쏟아질까? 에 대해서 항상 의문이었어요. 그래서 궁금해지더라구요. 제가 졸업하고 기회가된다면 post-doc을 가서 꼭 경험해보겠다고... 


고려대학교는 학점 4.0을 넘겨야지 조기 수료가 됩니다. 그래서 수업 학점을 나름 잘 챙겨야해요. 그리고 화공생명공학과는 교수님들이 수업에 열정이 있으셔서 그런지 수업 그리고 시험을 빡세게 하십니다. 물론 얻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연구할 시간을 할애해서 수업 공부를 해야하긴해요. 대학원생들은 아무리 수업이 세미나 수업이더라도, 매번 신경쓰고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여서 수업이 있는 달은 연구와 병행하기 매우 힘들어요. 그래서 저도 연구와 학업을 2가지를 다 챙기려다보니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서 한 편으로는 뿌듯합니다.


사실, 위에 있는 경우보다 저는 연구로 보상을 받는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대학원생은 결국 논문이기 때문에 연구로써 보상 받는 것이 진정한 보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vision 논문은 현재 npj computational materials에 투고했고, reviewer comment 정리해서 response letter 작성해서 보낼 준비 중 입니다. 잘 준비해서 마무리가 됬으면 하네요.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제가 연구했던 AI로봇실험실 관련 포스터가 우수 포스터상을 받았어요. 이 상이 누구에게는 작은 상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 라는 메세지를 주는 것 같아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앞으로 해당 연구를 조금 더 보완해서 좋은 저널에 투고할 예정입니다. 논문 마무리되면 vision 논문과 함께 소개해보는 시간을 가질게요 :)



정말 올해는 저에게 있어 소설같은 한 해 였습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그리고 마지막 행복한 결말, 제 나름대로 느끼는 해피 엔딩까지... 정말 힘들었지만, 정말 값진 한 해 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치기도 했고, 가끔은 사람이 미워지다가도, 가끔은 그런 내가 미워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굳건히 제 갈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갔고, 이제서야 그 결과라는 열매들이 하나 둘씩 나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서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면서 열심히 제 갈길을 가보겠습니다.


2022년이 저라는 인생의 한 줌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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