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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과학자 Dec 26. 2023

"선명해지는" 자본주의, "흐릿해져가는" 과학자의 미래

대학원생 진학 비율이 줄어드는 현상에 대한 대학원생의 현실적인 고찰

자본주의는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고 이를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사회, 또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여 재화의 흐름이 경제 전체를 이끌어가는 경제체제이다.


제목에서 "선명해지는" 자본주의라고 언급했다. 과연 "선명해지는" 자본주의가 무엇일까? 그리고 "선명해지는" 자본주의가 줄어드는 과학자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단어들의 과학을 연구하는 한 명의 청년 과학자로서 생각했던 고찰들을 조용히 적어 내려가볼까 한다.




"선명해지는" 자본주의


자본주의 정의만 보더라도 재화, 즉 돈이 중심이다. 인류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연구된 경제체제의 중심의 인류 대신 돈이 있다는 것은, 저로써 매우 역설적인 상황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관습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제도를 통해 인류가 큰 흐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갖은 노력들을 많이 했다. 이로써 시대를 거듭하며, 자본주의는 돈과 인류애의 균형을 통해 번영과 발전을 지속해 왔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들은 다른 국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가지는 것 같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고도성장시기와 더불어 맞이한 IMF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단점만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회사의 부도, 가정의 불화, 심지어 일찍 생명을 마감할 때의 원인에는 대다수 이 중심이었다. 점점 돈이 중심이 되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보고 자라난 아이들이 지금의 20~30대다. (저도 IMF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이 종종 기억납니다.)


인간은 본래 생존 욕구가 만족되면 번식 욕구가 생긴다고 한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돈이 있어야 가족을 지킬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무한 경쟁 시대를 지나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오니, 상황은 더 안 좋아지기만 했다. 경쟁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학생들은 대학교에서 정말로 배워야 하는 가치와 공부를 배우지 않고 학점 따기, 스펙 쌓기에 열중하게 된다. 학점이 낮거나 스펙이 부족하다고 판단한다면, 휴학을 반복하였다. 그 사이, 계속되는 인플레이션과 급격히 벌어진 자산격차는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소득의 양극화가 극에 달아가고 있었다. 늦어지는 사회 진입 시기, 그리고 양극단으로 치달은 사회의 분위기는 "가족이 있기 전에, 돈이 있어야 나부터 지키겠다."라는 생존 욕구를 더욱 자극하게 만들었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열심히 찬양한 자본주의는 도리어 인류애를 망각하도록, 그리고 생존을 갈망하도록 만들었다. 그 사이 우리의 자본주의는 더욱더 "선명해졌다"는 것이다. 그 선명함은 예리함으로 바뀌어갔고, 우리가 스스로 아픈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지금도 날카롭게 베이고 있다.




"흐릿해져 가는" 과학자의 미래


이렇게 "선명해지고 있던" 자본주의 위에서 자라난 과학자들의 미래는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바로 취업하는 학생들 대비, 과학자가 되어 직접 연구하기 위해서는 석사나 박사과정을 거쳐야 한다. 학점 관리와 스펙 쌓기로 취업을 통해 사회로 진출하는 시기는 점점 늦어지는데, 여기에 석사나 박사과정을 추가로 한다면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는 더더욱 늦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석사를 졸업한다 하더라도 연구직을 가지 않는다면, 학사와 같은 기준에서 면접을 똑같이 본다. 석사의 2년 기회비용을 100% 환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사는 기회비용이 곱절로 늘어난다. 박사과정은 대체적으로 국소적인 분야만 다루기 때문에, 갈 수 있는 직장 자체가 현격히 줄어든다. 주로 학교, 정출연 (정부 출연 연구소), 회사 연구소인데, 현실적으로 학교나 정출연은 해외 출신 포닥 아니면 박사들이 기본이고, 그 시기에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를 해당 기관에서 공고를 내야 한다. 여기서 유능한 과학자들과 경쟁을 하다 보니, 박사 취업은 다들 바늘구멍이라고 얘기들 한다. 그에 비해 기업 연구소는 덜하지만, 기초과학 같은 연구를 했던 연구자들은 수익성 때문에 뽑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즉, 고학력의 끝판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박사를 받는다 하더라도, 본인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다. 이쯤에서 예비 과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학계열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과연 현재 사회 분위기에서 어떠한 길이 나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것일까?


현재 "선명해지고 있는" 자본주의를 직면한 젊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주저 없이 취업을 먼저 선택하고 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이미 "가족이 있기 전에, 돈이 있어야 나부터 지키겠다"라는 생존에 대한 생각에 의해, 당장 돈을 벌어서 생존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 후,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차례로 이룰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관점으로만 살펴보면, 요새 반도체나 2차 전지 회사의 연봉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2년 더 사회에 늦게 진출한 일반 석사 연구원이 기회비용적으로 오히려 손해라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생각은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가속화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생각은 아마 참된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꺾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고질병이라고 지적받아온 과학자 처우 인식과 정치 개입 때문에, 열정이 있던 과학자들도 실제로 연구계를 많이 떠나 회사로 입사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 이런 사례들을 바라보며 연구를 하던 예비 과학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럼에도 우리는 정답을 찾을 것이다.


그래서 제목에서도 “선명해진”, “흐릿해진”처럼 과거형이 아닌, “선명해지는”, “흐릿해져 가는”처럼 진행형으로 표현했다. 한 명의 예비 과학자로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문제라고 예단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서로가 외면하고 있었을 뿐. 과학자 개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고,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서로의 마음을 맞댄다면, 그 시기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정답을 찾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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