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나의 2023년 기록
1월부터 본격적으로 데이터를 뽑기 시작했었습니다. 저의 연구 특성상, 사람 대신 로봇팔이 직접 실험을 해야하기 때문에 로봇팔이 에러를 내면 모든 실험이 멈추게 됩니다. 이 로봇팔 때문에 참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죠... 데이터를 빨리 뽑고 싶었는데 에러나면 자꾸 미뤄지니까, 밤 사이에 일시켜두고 가면 집에서 항상 "제발 나 없는 동안 무사히 실험 잘 끝내줘" 하고 기도했었죠 ㅎㅎ
이렇게 로봇이 합성한 나노입자가 잘 합성되었는지 판단하기 위해 먼저 SEM으로 분석하려 했었습니다. 잘 다룰 줄 모르던 SEM을 하기 위해서 washing 용액도 바꿔보고, washing 방법도 바꿔보고... 삽질을 정말 많이 해봤었던 기억이 있네요. 잠도 수면실에서 잠깐 자고 SEM 찍으러 가고... 공대생의 힘듦을 몸소 다시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좋은 일 들도 있었네요. 연 초에 준비했었던 안전관리 우수연구실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도 연구소에서 시키니까 한 것이긴 하지만, 과정 속에서 안전관리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해야하는지 짧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나라 공대생들이 안전에 얼만큼 취약한지 다시 한 번 간접체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네요. 항상 실험할 때는 안전 유의하시면서 조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대학교 동기들 중 한 명이 청첩장을 주었습니다. 이제 주변 사람들이 슬슬 결혼을 하는 것을 보니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computer vision 관련 논문의 major revision에 대한 response letter와 manuscript 수정하여 재투고 하였습니다. Revision 과정 속에서 저희가 작성한 논문의 퀄리티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보니 저 스스로 만족스러웠습니다. Major 받았다고 억울해하거나 기분 상해하지말고, 현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떠한 점을 보완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면서 나의 연구의 퀄리티를 올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라고 다짐했었습니다.
예전부터 microfluidic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마침 4월에 화공학회에서 관련 tutorial을 진행하길래 냅다 들으러 갔었습니다. 저는 매번 화공 출신으로서 내가 화공적인 연구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제가 생각한 이상적인 합성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졸업하고 도전해볼만한 연구 주제를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았었습니다. 그래서 이 튜토리얼을 들고 저희 박사님께 "앞으로 microfluidic은 꼭 해야한다!" 라고 엄청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 튜토리얼을 듣고 금속재료학회에서 제가 연구했던 부분을 구두 발표했었습니다. 박사님들이나 교수님들께서 저보고 교수처럼 한다고 해서, 속으로 엄청 신나했었습니다 (그래도 겉으로는 겸손 겸손 했었죠...ㅎㅎ). 사실 박사님한테 예전부터 발표가 중요하다고 세뇌교육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proposal 볼 때도 발표 때문에 저 스스로 자괴감이 엄청 들었고, 다른 사람에 비해 발표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연습하면 안되는게 없나 봅니다. 이 날 저 스스로도 발표가 만족스러워, 마침 하늘이 정말 맑길래, 나의 미래도 맑기를 바라며 마지막 사진을 찍었습니다.
5월달에는 청첩장 준 동기 결혼식, 그리고 오랜만에 TGI에서 알바했던 친구들 만났었습니다. 현생에 치여살다보니 잠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행복했었네요. 빨리 자리를 잡아서 친구들을 1년에 한 번 정도는 꼭 봤으면 싶네요.
5월 마지막은 computer vision 관련 Revision이 또 왔습니다. 여기서 reviewer 1을 잘 못 걸렸다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revision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더라죠. 그래도 이 때는 이제 진짜 마지막이겠지 하고 또 열심히 준비했었습니다.
6월에는 팀 회식과 센터 워크샵을 다녀왔었습니다. 원래 직장 워크샵이 준비부터 모든 것을 학생들이 준비하니, 애초에 시작하지 말자 였는데, 막상 가니 모두들 만족하고 잘 놀았던 것 같네요. (준비해준 동생들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사진은 올리지 못하지만, 박사님과 함께한 노래방 시간에서 저는 아름다운 밤이야 를 불렀습니다. 노래도 못하는데... 일단 지르고 봤었어요 ㅎㅎ.. 그리고 워크샵 마지막 날, 조식 먹고 바다가 너무 이뻐서 한 컷 찍었습니다. 밤에 박사님하고 동생 한명하고 같이 바다 거닐면서 양자역학 얘기했던 바다가 이렇게 예뻤다니..
6월 마지막에는 출장으로 경희대를 다녀왔습니다. 저의 모교지만, 졸업한지 4년째 한 번도 가지 않았던 학교인데 막상 가니까 오랜만에 추억도 뜨문뜨문 생각나서 좋았습니다. 우리 학교 정문 건너편에는 CU가 있습니다. 돈 없을 때 친구들과 여기서 과자 두 봉지에 4캔에 만원 사서 먹었던 시간이 참 소중하고 애틋하네요. 주변 상권들도 많이 바뀌었지만, 저의 소중한 기억은 그 장소에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저의 아버지가 승진을 하셨습니다. 참 IMF 외한위기 때 저희 아버지가 건축 쪽에 계셔서 참 고생이 많으셨는데, 자영업 정리하시고 다시 건축회사 들어가셔서 감리 지금까지 잘 하시는 것 보면 참 우리 아버지 대단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도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여전히 저에게 질문을 항상 던져보게됩니다.
마지막으로 6월은 코로나로 마무리 짓습니다. 정말 코로나가 징하게 따라 붙었네요. 이 때 저희 팀에 막내로 들어온 동생이 힘들다고 나간다해서 코로나 아픈 것을 이겨내고 출근을 했었는데, 결국 못 막았죠. 그래서 더 생각나는 코로나인 것 같습니다. 이 이후에 제가 만약 교육자가 된다면, 이런 일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참 생각이 많이 들었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이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저희 박사님처럼 쳐낼지, 품어줄지 잘 모르겠습니다.
7월은 정말 "뜻 밖에"의 달 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정말 가기 싫었던 Nanokorea. 우리 박사님이 organizer여서 갔지, 원래였으면 절대 안갔을 학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재미로 best poster award 신청했는데 덜컥 상까지 받아버리니까, 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말 하기 싫은 행동들이 생각 외로 나한테 도움을 줄 수 있고, 나에 커리어나 일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시기는 나를 외부로 자주 꺼내서, 나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어필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8월은 정리의 달이였습니다. 박사님들께 autonomous lab 논문 보내고 새로운 연구를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에게는 AI model 개발, 그리고 autonomous lab을 관리, 관장하는 소프트웨어 논문 2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박사님은 AI model 개발이 우선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제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분명 후에는 나에게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Autonomous lab의 구성 요소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AI 개발, 그리고 소재 개발까지 4가지를 모두 해본 사람이 가지는 가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돋보일 수 있으니깐요. 그래서 저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AI model 개발 대신, 이미 어느정도 구성 되어있고 살만 붙이면 되는 소프트웨어 논문을 하나 쓰자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논문을 어떻게 알차게 구성해서 논문화할지 참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우리 팀 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가졌으며, 퇴근하면서 예쁜 달을 보면서 "언젠간 나도 저렇게 빛나겠지..." 하며 내 자신을 위로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논문의 제목을 Octopus라고 정하고, 논문의 살을 붙이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들을 했었습니다. 현재 소프트웨어들 중에서 어떤 부분들을 사람들이 놓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고, 저의 논문에 잘 녹여내고자 노력했었습니다. 그리고 autonomous lab 관련 첫 논문이 최종본이 나와 어떤 저널에 투고할지 참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박사님의 희망사항으로 nature machine intelligence에 투고하였고, 첫 투고였어서 정말 간절한 마음을 담아 보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과학자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흔들리지 않고 해내려면, 먼저 이 험난한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ISA 계좌를 서민형으로 전환하면서 저의 경제적인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9월에 저의 논문 첫 reject이 날라왔네요. 전 솔직히 당연히 reject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우리 논문은 AI model 개발이 아니여서 해당 저널이랑 scope이 잘 안 맞을텐데, 이 때까지는 박사님이 왜 내보자고 하는지 이해가 안됬었어요. 그래서 nature commuinications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현재 포스코 연구소에 계신 선배 형님이 toronto의 guzik 교수를 만나고 와서 사진 찍은 걸 보내줘서 참 신기하게 봤습니다. 이 사진이 저의 미래에 post-doc 을 가기로 마음 먹는데 한 건 한 사진이죠.
오랜만에 집에 가니 예전 라오스 갔을 때 사쿠라바에서 받았던 팔찌가 있어서 추억에 담아두고 싶어 사진 찍어뒀습니다. 참 예전에 여행갈 때 참 행복했었는데 예전 추억이 많이 생각나더라구요. 그리고 오랜만에 과동기들 3명이서 서해 쪽으로 콧바람 쐬러 갔었습니다. 섬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사람도 없고 아주 좋더라구요. 캐치볼도 하고 고기도 먹고 양주도 먹고, 이 때 아사히 맥주 처음 먹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어서 주변 지인들한테 많이 선물하고 그랬었습니다. 그리고 TGI 홀매니저 처럼 일하던 알바 친구가 결혼식을 했지만, 논문 때문에 바빠서 가지는 못해서 사진으로 대신 봤었습니다. 잘 살아라 친구야.
여기 사진에는 없지만, 9월달부터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숨이 너무 차고 아침에 너무 힘들었는데, 확실히 꾸준히하니까 20바퀴 정도는 거뜬히 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소음에 둘러쌓여있는 저로써는 수영하면서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고, 현재 힘든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데 수영처럼 꾸준히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된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도 유산소 운동을 하다보니 아이디어 낼 때도 좋고, 일적으로도 잘 풀리는 것 같아 시작한 것 중 제일 만족스러운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10월에는 박사님들 없을 때 동생 파주집에 놀러가서 바베큐 파티했었습니다. 역시 박사님들 없을 때 노는건 아주 짜릿하더라구요. 가서 동생들이랑 맛있는 고기랑 소세지, 비빔면, 그리고 파김치까지 완벽했었습니다. 이 때 동생 집에 있던 문고리가 소리 나는거였는데 소리가 참 맑고 아름다워서 기억에 참 오래 남아있네요. 나중에 집들이 선물하면 좋을 정도로...!
그리고 저랑 동생을 위해서 일만 하시던 아버지가 회사를 가더니 회사분들이랑 태국 패키지 여행을 가셨습니다. 참 뭔가 뭉클했었던 기억이 있네요. 나이들면 아버지가 어려지고 아들이 잔소리하고 걱정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러더라구요. 짐은 잘 챙기는지, 유심은 어디꺼 샀는지 막 물어보고 그랬었습니다. 매번 본인들 보다는 저와 동생이 항상 먼저였던 부모님이여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저도 과연 우리 부모님처럼 헌신적인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매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또래 친구들 부모님보다 훨씬 젊어서 앞으로 아버지랑 여행을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연구하면서 롤드컵을 끝까지 다 챙겨봤었습니다. 이번 롤드컵은 참 여러모로 저에게 교훈을 주는 롤드컵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롤드컵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였다면, 올해 롤드컵은 "방심하지 말자" 와 "끝까지, 침착하게" 였던 것 같습니다. 누가 보면 그냥 게임 경기에 불과하지만, 아무래도 학위 과정을 하고 있는 불안한 상태에서 보다보니, 저의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11월은 축하할 일도 많았고, 걱정도 많은 달이였네요. 제 지도박사님은 한 분이지만, 마음 속 지도박사님은 두 분 입니다. 그 중 제가 쓴 논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많이 봐준 박사님이 이달의 KIST인 상을 받으셔서 마음이 참 따뜻했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는데, 내부의 작은 상일지라도 박사님이 작은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보는 내내 기분이 참 묘했네요. 그리고 팀원 중 대학교 후배가 인턴으로 잠깐 들어왔는데, 취준을 동시에 하면서 마음 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강 나들이 가서 다 같이 콧바람 좀 쐬러 떠났었습니다. 사진은 동생들이 마시던 맥주를 장난스레 신발에 넣은게 귀여워서 찍어뒀습니다. 또 오랜만에 초등학교 베프들 만나서 저녁먹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확실히 나이 먹고 만나니까 사는 얘기하고, 돈 얘기를 하게 되더라구요. 나중에 나이 더 들고 돈 때문에 친구를 멀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일하던 박사가 2023년 11월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AI 팀으로 이직했습니다. 솔직히 박사를 어떻게 땄나 싶을 정도로 같이 연구하는게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나름 4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내니 미운 정이 쌓이더라구요. 거기서는 하기 싫은 일 한다고 땡깡 부리지 말고 어른스럽게 잘 했으면 하네요. 동생들이 깜짝 생일파티도 해주었습니다. 로봇팔로 선물 전달해준 그 순간은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이 날 논문 리뷰도 온 날이여서 참 특별한 생일파티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또 연말회식으로 성신여대에 와인바를 갔습니다. 저희는 항상 회식 이후에 인생네컷을 찍는데, 앞으로 자주 찍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면 좋겠습니다.
Nature commuinications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Materials today에 투고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물론 review가 압도적으로 많은 저널이긴 했지만 매번 reject을 받는다는 것은 저한테는 아직 익숙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Materials today 에디터가 Chemical Engineering Journal에 transfer 옵션을 줘서 한 편으로는 마음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한 단계 밑인 Advanced Science를 보내보려했는데, 집에서 생각해보는데 유난히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저널이 눈에 밟혔습니다. 해당 저널에 제가 하고 있는 연구가 한 번 나온 적이 있어서, 주제의 신규성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에디터들이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연구가 조금 더 진전됬다고 생각해서 박사님께 재고해달라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결국, 이 날의 선택이 지금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 본인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박사님들이나 교수님들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야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좋은 결과물을 마음에 간직하고, 이번 12월 연말은 따뜻하게 보냈습니다. 과동기들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인생네컷에 제 못생긴 사진을 들고 찍어줘서 참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거의 5년만에 학생회 동생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아마 제 결혼식 때나 볼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ㅎㅎ 그리고 마지막은 해방촌에서 좋은 사람과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했던 해방촌이기도 했고, 그 날 먹었던 피자, 야경 보면서 먹은 커피, 크리스마스 트리와 야경,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날이였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연말에 저 스스로에게 "올해는 나에게 어떤 해였는가?"라는 질문하곤 합니다. 해당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올해의 행적을 정리하고, 느낀 점을 적어내려가며 제가 잊고 있었던 부분들을 복기하는 과정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주머니 속 만원을 우연히 찾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넣어두면 언젠가 쓰겠지?" 라는 생각에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그냥 잊어버리는 것은 그 물건이 지니는 가치의 효용성을 떨어뜨리는 행위이죠. 저에게 있어서는 "지금까지 제가 했던 모든 경험들"이 그러했습니다. 연구, 가족, 친구, 연인, 주식, 운동... 모든 부분에 있어 그저 묵묵히 했을 뿐인데, 돌이켜보니 정말 다양하게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있어서 2023년은 단순히 값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아름다움을 가지는 보석들이 모여있는 한 해였습니다. 다양한 크기, 각자 가지고 있는 개성있는 색, 다양한 직선과 곡선을 포함하는 모양을 가진 보석들이 모인 보석들이 모여있는 함 말입니다. 이렇게 한 해를 정리하면서 저만의 보석함에 보석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