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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오나PYONA Apr 24. 2022

'탈 직장인' 고지를 눈앞에 두며

퇴사를 앞두고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용기를 내는 글


2021.10




퇴사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고 이미 두 번정도 경험치가 있는데도 이번엔 무난하지 않은 과정을 지나고 있다. 그만큼 결정의 무게가 가볍지 않았고 그 과정도 험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는 더 없을거라 장담하는 '내 인생 마지막 퇴사'이기에, 버리고 비워내야 할 마음이 많다. (음.. 아직도 미련이 많은건가?)


이번 퇴사 결심이 조금 더 남다른 것은 다른 곳으로 '탈주'도 아니고 당장 힘들어서 그만두는 '탈출'도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의 익숙함을 벗어나기로 작정한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회사 입사 당일에 걸어둔 나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이곳을 끝으로 더이상의 회사생활은 없을거라고.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곳에서 유독 과중하고도 난잡했던 업무들을 더 초인적으로 감내했다. 낯선 질투와 견제로 점철된 사내 인간관계에 잔뜩 상처받아도 참아냈다. 버팀목이던 절친한 동료들이 연달아 퇴사했을 때도 당장 그만 두고 싶은 마음 대신 더 혹독하게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최대한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를 쓰며 버텨냈다. 내게 이곳은 그저 전쟁터였다. 그 어떤 날도 쉽지가 않았으나 굳이 감당했던 이유는 환경이 아닌 나의 주관과 판단으로 직장인의 끝을 맺으려 했다. 의지만 있다면 안될게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게 작정한 덕분(?)인지 이 전쟁터에서도 얻는 것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업무적 기량과 잠재성을 입사 초반부터 과분히 인정받아 사내에서 다양하고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았다. 특히 내 이름과 얼굴, 목소리를 내걸고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유난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주제 넘는 주인의식을 느낄 때가 많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되돌아간다면 그 과정을 또 선택할 것 같다. 다만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순간에도 이면에는 까맣게 그림자가 지고 있다' 는 사실만큼은 더 일찍 깨달았다면 하고 바라는건 있다. 그랬다면 내가 조금은 다르게 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건강한 거 같은데..?" 싶은 외양이지만 억울하게도 허약한 구석이 꽤 많고 잔병치레도 잦았던 나는 직장인이라면 으레 달고 사는 만성스트레스 질환이라 여기던 복통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은 유독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병원에 갔더니 수술이 불가피한 위급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저찌 당장 수술일정이 잡혔고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휴직기간이네..? 좋다!' 였다.(이 정도면 도대체 어떻게 살았던거지 나는) 그러나 입원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 살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쉬기는 커녕, 앞만 보며 뛰어야 가능했던 일거리 한 바가지를 마치 훈장처럼 여기며 기꺼이 해내고 즐기는(?) 워커홀릭. 그 하나 뿐이었다. 강사라는 직무를 오래 맡아왔기에, 끝없이 탁월한 전문성을 요구하던 타인의 시선, 남다르길 바란 내 욕심에 더욱 치열했던 이유도 있었다.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생각한 '나약하면 절대 프로가 될 수 없다'라던 다짐이 잘 지켜진 탓에 정작 '나'는 없는 '직업인'으로만 살아온 삶만 남아 있었다왠지 모를 허무함이 느껴지던 순간 진짜 '나'를 만났다. 그를 자각하고 보니 나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고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동안 살던 인생과는 완전히 다르게 살아야만 했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은 것들도 하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는 이 자체로 의미있게 살 수 있을거라고. 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각성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탈 직장인'으로의 선택은 지금이 적기라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챙겨야할 타이밍이었다. 비로소 처음으로 '나'를 우선하는 선택을 했다.


그럼에도 직장인을 그만둔다는 선택은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너무 많은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 안전한 울타리 없이 '야생', 리얼한 '전쟁터'에 놓인다는 것도. 하지만 월급이 주는 안정감에 취해, 어쩌면 내가 훨씬 더 행복해질지도 모를 삶을 평생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주, 여전히 불안한 걱정이 불쑥 생기지만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내 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 선택에 '무작정' 걸어보고 있다. 사실 아직 확신은 없지만.. 내가 살아야 할 방향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아무튼 직장인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답은 스스로를 믿어주는 것 뿐이다. 내 불안을 덜어낼 유일한 방법.


어쩜 마지막까지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는지.. 어쩜 이곳은 퇴사 여정까지 쉽지 않지만.. 자잘한 파열음에 마음 쓰고 귀 기울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번 더 남긴다. 내가 원하던 더 넓은 세상으로 핸들을 돌리는 것에만 집중해도 모자라다. 겪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부딪쳐보겠다. 역경에 겁내기보다는 나다움에 믿음을 갖고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행복을 찾으러 떠나는 도전에 설레는 박동소리를 더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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