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 Sep 18. 2022

새벽, 나에게 집중하는 지금.

어젯밤, 저녁 10시 30분을 넘기면서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어찌어찌 들어 올리며 밀려오는 졸음과 씨름을 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의 늦은 귀가 전에 먼저 잠드는 건 내가 너무 미안하기 때문이었다. 11시가 넘어가니 짧은 문자가 온다.

"국밥 한 그릇 먹고 들어가겠습니다."

배가 고팠나 보다. 아들의 문자를 확인하고, 식탁 의자에 앉아 또다시 책을 펼쳐들 긴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책을 펼쳐 놓고 졸다가 책을 떨어뜨린 것 같고, 아들이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고, 하지만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고, 지금 눈떠 보니 나는 안방에 누워 있고. 분명 졸고 있는 나를 남편이 채근하며 방에 가서 편히 누워 자라고 했을 텐데 내 두 발로 걸어 들어갔는지, 남편이 부축해줬는지...... 체력, 소화력, 시력, 기억 등이 점점 무뎌진다. 가끔 불편하긴 하지만 지금의 이대로가 나는 좋다.


졸음과 한 판 붙으면 난 늘 진다. 져도, 이겨도 '좀 푹 자겠거니'하고 생각이 들지만 어김없이 다음날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진다. 

[5시 19분]

어젯밤의 가물거리는 기억도, 힘겨운 졸음과의 씨름도 무색한 오늘 새벽 눈 떠진 시각이다. 주방으로 나와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노트북 켜서 음악을 재생시키고, 내 놀이터 브런치에서 읽기도 쓰기도 한다. 이 새벽의 고요함과 평온이 마치 나를 향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 마음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0, 30대의 나는 그 각이 반듯하고, 계획이 면밀했으며 성과를 위한 노력으로 늘 분주했다면 40대 후반 지금의 나는 흘러가는 현상에 대해 "잠시만요!"하고 브레이크를 걸기보다는 흐르는 대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감정에 대해 나를 엮어두지 않기로 한다. 

시력이 약해진다. 업무 중에 연세 지긋하신 고객님들께서 "이게 뭔 글자요?"하고 보이지 않음을 호소하시면 나는 내 안경을 이마로 올리고 눈 가까이 대고 읽어 드린다. 둘 다 똑같다.

소화력이 약해진다. 한참 승진 시험을 준비할 때는 하루에 네, 다섯 끼를 먹어야 학습에 집중이 될 정도로 먹는 것을 좋아하고, 배가 부른 상태를 즐겼다면 지금은 두 끼가 적당하고 그마저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배를 가볍게 하고 싶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그래서 기록해 둔다.

체력이 빨리 소진된다. 아직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K를 뒷바라지해 줘야 하기에 비타민도 열심히 챙겨 먹고 걷기 운동도 가급적이면 매일 하면서 체력의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가 좋다. 어느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늙어가는 게 아니라 "잘 익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은 잘 익어가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아버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