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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Sep 27. 2022

사귀는 사람 있나? 남자 친구.

학창 시절, 나는 여러 방면에서 자존감이 낮았다. 대표적인 것은 학교 성적과 외모였다. 위아래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열등했던 성적은 그 당시 부모님의 골칫덩어리였다. 게다가 식탐이 많아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항시 갈망했고, 입 짧은 언니와 남동생의 몫을 호시탐탐 노리며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어 줄게." 하면서 도와주는 척, 나의 식욕을 충족시키곤 했다. 그런 나를 나 자신도 때로는 한심하게 여기며 거울 속에 보이는 뚱뚱한 한 사람을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20대가 되니 친구들 하나둘씩 이성 친구가 생기면서 만남이 점점 줄어듦을 느끼게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빨리 취직한 편이었고, 어찌 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호감을 가질만한 이성을 만날 기회는 내가 더 많을 법도 한데 용하게도 친구들이 그쪽 능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한 번은 일요일 오전에 절친에게 삐삐(무선호출기, 지금은 추억의 유물이다.)를 쳤더니 한참 뒤 전화가 왔었다.


"너 오늘 선약 없으면 우리 만나서 점심 먹을까?"

"오늘은 걔(남자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며칠 전에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또 만나는 거야?"

"일주일에 세, 네 번? 그 정도 만나거든."

"아...... 알았어. 재밌게 보내."


그때 알았다. 남자 친구가 생기고 각별한 연인이 되면 일주일에 세, 네 번은 만나는 게 당연한 거라는 걸. 그러면서도 '그렇게 자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하면서 그 만남의 내용에 대해 궁금하기도, 신기해하기도 했다.


첫 직장에 입사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났을까. 수습기간이 끝나고 조금은 여유 있어 보이는 나에게 타 부서 선배가 물었다.


"사귀는 사람 있나? 남자 친구."


난 이 질문이 25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 선명하다.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오는구나.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없는데요."하고 답했더니 선배는 조심스레 소개팅 자리를 주선하는 게 아닌가. 상대는 부산이 아닌 타 지역에서 거주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선배의 대학 동기라고, 성실하고 착하다고...... 상대의 상황과 장점을 이야기해주는 선배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그저 이성을 만날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나 혼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일주일에 세, 네 번 만날 바쁜 나날과 또 그로 인해 친구들과의 만남을 완곡하게 거절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약속한 그날이 왔고,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약속 장소로 나갔다. 대화를 해보니 제법 말도 잘 통했고 헤어질 무렵 상대는 또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 나에게 물었다. 나는 흔쾌히 답해줬고, 서로 삐삐 번호를 주고받으며 다음을 약속했다. 거리가 멀다 보니 일주일에 세, 네 번 만나기는 사실상 어려웠고, 덕분에 나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거절할 기회도 없었다. 여섯 번 정도 만났을까, 어느 날 삐삐를 쳐도 이틀째 응답이 없었다. 소개해 준 선배에게 넌지시 돌려가며 물었더니 이틀 전에 모임이 있어서 얼굴 봤는데 별 말 없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나는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 상황을 설명했다.


"삐삐 쳐도 연락이 없길래 난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지. 근데 별일 없으니까 다행이지 뭐."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너 차인 것 같은데."

"나한테 그만 만나자는 말도 없었는데? 바빠서 연락 못 준 것 아닌가?"

"J야, 너 차인 거야. 더 이상 삐삐 치지 마라."


그 당시에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무례한 방식으로 연락을 무시하는 그 사람의 행태에 대해서. 이만저만해서 더는 만나기가 어렵다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치사한 방법으로 소위 "잠수 타기"를 하다니.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 상대가 꽤나 고맙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 상대와의 만남은 나의 낮은 자존감을 떨치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리 잡는데 지대한 공을 세워줬다는데 대해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고 4년의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중에 이직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집안 형편을 봐서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기에 일을 하면서 공채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독한 결심을 하고 10개월을 집, 회사, 도서관의 일정한 동선으로만 움직이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 기간 동안 친구들과의 만남도 중단했고, 나의 학력으로 지원할 수 있는 몇몇 기관을 추려서 오로지 공채 시험에만 공들이는 시간으로 나의 체력과 인내를 쏟아부었다. 그리하여 합격한 곳이 지금의 회사이고 나는 첫 직장에서 5년의 근무 기간을 채우고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이직 소식을 알렸고, 회사에서는 후임 직원에게 인수인계로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J, 우리 오빠 한 번 만나볼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에게 처음 소개를 주선했던 선배의 제의를 받았을 때는 내 귀에 은은한 종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이번엔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나는 살짝 망설이다가 만나보겠다고 답을 주었다. 서울 모 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고, 이듬해 연고지 부산으로 발령 신청을 해 놓은 상태라는 것, 나 보다 한 살 위라는 것. 그것만 알고 만난 친구의 오빠는 인상이 꽤 괜찮았었다. 하지만 서울과 부산은 일주일에 세, 네 번이 아니라 한 달에 세, 네 번도 만나기 힘든 거리가 아닌가. 물론 사랑의 힘이 아주 폭발해서 매주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열정이 있었다면 한 달에 세, 네 번도 가능했겠다마는 친구 오빠도 나도 그렇게까지는 아니었고 매일, 아니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 통화를 주고받았다. 전화 통화만으로도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었고, '아, 이게 연애라고 하는구나.' 하며 그 느낌을 알 수도 있었다. 처음 만나고서 한 달쯤 지났을까. 친구 오빠는 다가오는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삼일절)의 샌드위치 데이 월요일에 휴가를 내고 토요일 저녁 기차로 부산으로 오겠다며 "데이트 신청해도 되니?"하고 서울 억양과 부산 억양이 섞인 섹시한 억양으로 출근길 내 마음을 흔들어 버리는 게 아닌가.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이게 연애라고 하는구나.' 나는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그 어떤 약속도 잡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기이한 현상도 겪었다.


일요일.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전날 부산에 밤늦게 도착했으니 피곤해서 자고 있겠지.'

"오늘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엄마의 물음에는 대충 얼버무렸다.

월요일.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업무 점심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안 되었다.

저녁에 퇴근하고 다시 걸었다. 연결이 안 되었다.

화요일.

......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J야, 너 차인 거야!!!!!!" 그 언젠가 친구가 답답해하며 나에게 소리쳤던 말이 메아리로 돌아왔다.

또 똑같은 방식, 잠수 타기로 차이다니. 하지만 이번엔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그의 말에 담긴 의도가 궁금했다. 분명 늘 먼저 전화를 주었고,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묻지 않았던가. 근데 "왜?" 나에게 전화를 주지도, 내 전화를 받지도 않는 거야?


이직하고 몇 개월 채 안된 상태에서 나는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힘들기도 바쁘기도 했다. 5개월쯤 지났을까, 어느 날 e메일을 열어보니 그로부터 장문의 편지가 한 통 와 있었다.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내용, 그때(3일 연휴) 왜 연락을 못 했는지에 대한 내용, 진짜 미안하다는 사과, 그리고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 나는 지그시 웃으며 답장을 보내 주었다. 괜찮다고, 하지만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답장을 웃으며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만한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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