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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Oct 01. 2022

모두가 사랑하는 불금

머리의 묵직함이 가시고, 찌뿌둥한 몸은 가볍게 느껴진다. 오늘 저녁은 뭘로 해서 먹을지 고민해도 숙제의 느낌보다는 즐거운 고민으로 받아들인다. 퇴근길 도로가 막혀도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 손가락은 라디오 음악에, 혼자 흥얼거림에 박자를 맞추며 까딱거린다.


야호!! 오늘은 금요일이다~~~~~~~~~~~


그것도 공휴일인 월요일까지 3일이라니.

남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퇴근하면 드라이브 가자고 할 계획이었기에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해운대로 가서 오랜만에 스페인 식당에서 밤바다 보며 저녁을 먹을까.', '송정 바닷가에서 토스트랑 커피 사서 해변에서 데이트하자고 할까.', '아니면 집 근처 황산공원?'...... 일단 집이 아닌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 머릿속은 뒤덮혀 있었다. 집으로 가면 아무리 쉬어준다고 마음먹어도 내 눈에 들어오는 "지금 해 주면 좋은 일"들이 밟혀서 계속 움직이고 그러다 보면 "지금 안 해도 될 일"까지 끄집어내서 금요일 특별 기분을 다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본가 주택 등기 이전으로 휴가 내고 남해로 다녀와 집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했다.


"여보, 오늘 바람 쐬러 갈까요?"

"좋아요. 저녁도 밖에서 먹고 들어오면 되겠네."

"퇴근할 때 전화할게요, 5시 30분쯤엔 옷 입고 기다리고 있어요."

"알았어요. 근데 어디로 가려고요?"

"여보, 해운대 가자! 지하철 타고. 오랜만에 와인도 마시고 싶고 밤바다 보면서 걷고 싶고 그러네."

"해운대 까지나요?"

"빠예야도 먹고 싶고, 와인도 마시고 싶고 그런데......."

"...... 음, 알았어요. 마치면 전화해요. 나갈게요."


한 박자 쉬고 답하는 남편의 반응이 살짝 걸리긴 했지만, 난 꼭 해운대로 가고 싶었다. 참고로 우리 집에서 해운대까지 순수하게 지하철 시간만 편도 한 시간 소요되는 거리고, 자가운전해서 가면 금요일 퇴근 시간 감안해서 한 시간이 더 소요되는 거리다. 그러니까 남편이 한 박자 쉬고 답한 데는 갔다 오는 이동 시간에 대한 부담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해운대로 달려가고 싶었다. 해산물 빠예야와 새우 감바스, 그리고 와인을 꼭 먹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편에게 내려오라고 전화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기운이 다 빠진 내가 느껴졌다. 이 컨디션으로 해운대는 가당치가 않았다. 일주일 참 열심히 달려왔나 보다. 긴장이 풀리니 맥도 풀리고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단 집으로 가보자.


"전화하기로 했잖아요. 왜 왔어요?"

"그게...... 해운대는 보류하고, 다른 장소로 가는 게 좋은 것 같아서. 너무 멀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죠?"

" ^^ "


우리는 아들 간식으로 준비돼 있던 샤인 머스캣 한 송이를 나눠 먹으며 어디로 향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 보았다. 그 결과, 그냥 집에 있는 걸로. 그러면서 남편은 나에게 이것저것 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다음 고민으로 넘어갔다.

"저녁식사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최대한 손 덜 가는 메뉴로.

비빔밥...... 주말 즈음에는 나물이 거의 동이 난 상태라서 양이 적어 패스!

밥과 김치...... 너무 단출해서, 먹고 나면 또 다른 걸 찾을 것 같아서 패스!

라면...... 먹고 싶지만 속에서 안 받아줄 것 같아서 패스!

만두...... 먹고 싶지만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패스!

김밥...... 그래, 김밥으로 하자. 비빔밥과 버금가는 우리 집 단골 메뉴이니 손이 덜 가는 게 아니라 손 빨리 할 수 있겠지.

나의 김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밥 양은 최대한 적게, 그러니까 김에 밥알이 촘촘하게 붙어 있는 정도로만 밥을 깔고 그 위에 아보카도, 단무지, 오이, 우엉 이렇게 네 가지 재료만으로 마는 야채김밥에 가깝다. 우리 집은 김밥 재료가 항시 준비되어 있어서 식사 메뉴가 애매할 때는 김밥으로 해결하는 편이다.


이 소중한 금요일에 김밥만 먹기엔 밋밋해서 라면을 한 개 끓였다. 거기에 만두 두 개를 넣어 우리는 김밥 두 줄과 만두 두 개, 라면 한 개로 사이좋게 저녁 식사를 했다.


다 먹고 부른 배를 만지작 거리며 우리는 강변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한 시간 가량 걷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아홉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자기야, 우리 만약 해운대로 갔었다면 이제 집으로 돌아올 지하철을 탔겠죠? 체력 방전된 상태로 말이에요. 자기 말대로 해운대 안 가길 잘했네."


집으로 돌아와 씻은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잠들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정말 피곤했나 보다. 그 몸으로 해운대 갈 거라고 바등거렸으니...... 같은 부산 권역이어도 체력이 안 받혀주면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피곤한 상태로 깊은 잠을 잤더라도 오늘 아침엔 또 5시 50분쯤 눈이 떠졌다. 남편이 주간 근무하는 날이니 아침 식사를 차려 줘야 한다. 내가 가장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메뉴, 김밥 한 줄을 싸고, 미역국을 데워서 아침 식사를 차려 준다.

두 끼 연속으로 같은 메뉴. 남편은 고맙다고 하며 아침 식사를 했다. 반찬 투정 안 해서 고맙다.


"여보, 다음 주 금요일엔 꼭 해운대 갔다 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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