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 Oct 09. 2022

내 곁의 행복, 알아차리기.

요 며칠 사이 많이 피곤했나 보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보통 새벽 다섯 시 삼십 분에서 여섯 시 사이에는 알람의 도움이 없어도 눈이 떠지는데, 어제오늘은 그러질 못했다. 금요일만 하더라도 영업시간을 넘어서서 퇴근 시간에 가깝도록 고객과의 상담이 이어졌고 그 사이 어찌나 말을 많이 했던지 퇴근 무렵 진이 빠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운전도 힘겹게 했으니 말이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본가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아들 K는 학원에 간 상태라 나 혼자서 남아있는 나물과 두부조림을 싹싹 긁어서 한 상 푸짐하게 저녁식사를 했다. 그 후에 K가 귀가했고, 새우 볶음밥을 해주었고, 설거지를 했고, 내가 씻었는데...... 그다음 기억이 없다. 다음날 남편의 말로는 저녁 아홉 시 삼십 분에 집에 도착했더니 K는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고, 나는 코를 세게 골면서 자고 있더라는 것이다. 문을 여닫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도 한 번도 안 깨더라며 내가 아주 많이 피곤했음을 시사해 주었다.


오늘 아침 남편이 주간 근무를 들어가는 날이다. 여섯 시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켰는데 솔직히 가뿐함 보다는 힘겨움이 더 컸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먹는 데는 진심인지라 웬만해서 삼시 세 끼를 놓치지 않는다. 특히 나를 포함한 가족들 아침과 저녁은 가급적 집밥을 먹을 수 있게 하려고 공을 들인다. 점심 식사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각자 알아서 해야 할 부분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오늘처럼 남편이 주말 근무를 들어가거나 야간 근무를 들어가는 날에는 그 마음이 안쓰러워서 출근 전 식사는 꼭 챙기려 한다. 아들 K를 낳고 산후조리하던 그 기간을 제외하고 아침밥을 차려 주지 못한 날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 정도 되려나? 양처 코스프레를 하려는 게 아니고 내 식구들이 먹는 것만큼은 소박하되 덜 가공된 음식을 먹기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남편의 식사는 나물 비빔밥과 두부조림이다. 그저께 본가에서 어머님으로부터 받아온 나물 세 가지가 있어서 거기에다 어제 내가 만든 무나물을 곁들이고 반찬으로 두부조림을 차렸다. 남편은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우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아직 자고 있는 K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현관문을 여닫고 출근한다.


설거지를 끝내고 나도 집을 나서본다. 비가 올 것 같기 때문이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엔 통창의 카페에서 따뜻한 바닐라 라테를 마시면서 '멍' 하기에 너무 좋다. 열심히 일하고 있을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잘 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일상 회로도 원활해진다.




대단한 감동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내 행복 항아리가 채워지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 항아리를 채우려면 넉넉한 금전과 사회적 위치, 괄목할 만한 업무 성과, 적당히 여유 있는 물질, 괜찮은 인간관계, 아들의 우수한 성적, 주기적인 여행, 근사하게 차려진 음식 등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모든 요소의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맞춰 "그렇게 보이는"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변하고 있었다. '탁!'하고 요술처럼 바뀐 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변하고 있었다. 아마 그 시작은 끝이 없을 것 같았던 혹독한 우울증과 전신마취를 필요로 하는 수술을 받은 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탈없이 살아가고 있는 평안한 일상에 대한 감사함, 계절을 눈으로 귀로 코로 피부로 느끼고 그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려는 마음, 남편과 아들 K, 그리고 나에게 좋은 음식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 독서와 사색을 통해 내면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 몸과 마음이 건강한 식구들, 라테 한 잔 마시려 할 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유, 휴식을 부여하고 나를 아껴주는 마음. 내 행복 항아리는 내 곁에 있는 이러한 일상과 요소들로 천천히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모두가 사랑하는 불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