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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Oct 30. 2022

도시락

내가 즐거워지는 시간

오늘 아침, 아니 새벽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5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오전 5시 50분, 6시, 6시 10분, 7시 10분. 이렇게 네 번의 알람을 맞추고 잠들지만 늘 첫 알람보다 5분 정도 일찍 일어나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보다 훨씬 빠른 시각에 그것도 개운하게 일어났다.


아침시간에 정신없는 분주함이 부담스러워 전날 저녁에 웬만한 준비는 다 해놓고 잠든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침에 먹을 비빔밥 나물을 대접에 미리 세팅해두거나 아이가 아침 식사로 늘 먹는 전복죽을 바로 데울 수 있도록 작은 냄비에 덜어놓는 정도 말이다. (전복죽은 5일 동안 먹을 양을 주말 저녁에 만들어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둔다.) 또 회사에서 내가 먹을 점심 도시락 반찬도 어느 정도 손은 봐 놓는다.(대부분이 나물이다.) 그럼 내 아침식사는? 비빔밥을 좋아하지만 비빔밥만 먹으면 급하게 먹는 듯해서 밥과 반찬으로 나물을 덜어서 먹는다. 즉, 단시간 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선호도가 다른 우리 가족의 아침 식탁을 세팅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해놓는 셈이다.


오늘 아침엔 눈을 뜨고, 보리차 한 잔 마신 다음, 하늘을 향한 짧은 기도를 끝내고 전날 설거지해놓은 그릇과 찬통, 조리도구들을 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5시 50분이다. 출근 준비하기엔 너무 이른 때고, 그렇다고 마땅히 할 일도 없었기에 노트북을 켜고 글을 보려고 식탁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이내 김밥이 떠오른다.

'그래 오늘은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 가자.'


어릴 적부터 먹는 걸 너무 좋아했던 탓에 일찍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곤로 사용법을 혼자 터득해서 언니, 동생에게 라면도 끓여주고, 계란 프라이, 계란으로 응용한 이름 붙이기 묘한 몇 가지 요리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40년 전에 이미 난 계란 오믈렛을 시도한 거였다. (공부머리가) 똘똘한 장녀와 (공부머리가) 똘똘하고 귀한 아들에겐 불에 데일 세라 오랫동안 곤로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 엄마였지만, 공부보다는 밖에서 뛰어다니고 먹는데 관심 많았던 나에겐 곤로 사용을 후하게 윤허하셨으니 음식에 대한 갈망과 직접 해 먹으려는 나의 욕구는 그때부터 싹이 꿈틀대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조금 더 쉬고 출근 준비하고 세팅해 놓은 걸로 꺼내 아침식사와 도시락까지 마무리하면 될 것을 기어코 앞치마를 두르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낸다. 재료라 해봐야 아보카도와 단무지, 소금에 절여둔 오이, 조려둔 우엉이 전부이지만. 어떤 간도 거치지 않은 고슬고슬한 현미밥을 얇게 김에 펴 바르고 물기 빼둔 재료를 가지런히 올려서 터지지 않게,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게 돌돌 말아 준다. 밥 양으로는 작은 밥공기로 두 공기 양이지만 얇게 펴 바르기에 세 줄을 만들 수 있다.


현미밥의 고소함, 오이와 단무지의 상큼함, 우엉의 묵직함, 그리고 아보카도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김밥을 잘 썰어서 아침식사로 먹을 양을 덜어두고 도시락통에 조심스레 담는다. 또 곁들여 먹을 무채 나물도 따로 담는다. 20여분 가량 뚝닥거리면 정갈한 아침식사와 든든한 점심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간혹 직장 동료들은 사찰음식 같다고 과한 칭찬도 해 준다. 그러면 나는 먹어보라고 즐겁게 한 조각 권한다.


6년 전부터 식습관을 채식에 염두에 두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살 빼려고 그러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몇 가지 이유로 채식을 시도하게 되었고, 완전하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현재는 95% 정도 도달한 느낌이다. 5%는 가끔 회식을 한다거나 직원이 가져오는 빵을 보면서 무너질 때다.(우리 사무실에 함께 근무하는 선배의 배우자께서 제과점을 운영하신다.)


작년 여름 직장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기능 저하증과 고지혈증 수치가 너무 높게 나온 결과를 두고 검진병원에서는 반드시 내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며 전화까지 주었다. 승진 인사를 앞두고 업무적으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던 게 화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고기 종류만 먹질 않았지 면, 빵, 견과류를 습관적으로 먹었고, 배가 부른데도 먹었던 것이다.


나름의 조치로 가장 먼저 정비한 것이 식습관이었고, 그때부터 회사 식당을 이용하지 않고 나에게 맞는 음식으로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며 점심식사를 했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아침 시간에 없던 스케줄이 만들어진 상황이 다소 힘에 부쳤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점심 도시락을 펼치며 먹는 한 시간이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 또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나더라도 도시락을 계속 준비해 다닐  예정이다.


정성을 들인 덕인지 올해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은 안정적으로 수치가 잡혔고,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아직 약 복용을 끊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작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든 업무 속에서 식사시간의 즐거움을 상상하며 기다리는 설렘이 늘 있어서 좋다. 마치 초등 4학년 때부터 가지고 다녔던 도시락 가방을 보면서 점심시간만 오매불망 기다렸던 그때의 기다림이 3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재현되는 기분이다.


단출한 김밥 세 줄 싸고, 곁들일 반찬 한 가지 준비해서 오늘도 야무지게 도시락 준비하면서 하루를 열어본다. 오늘 모든 일들이 무사히 잘 지나가길 기도하며......


***이번 주 화요일 새벽부터 쓰기 시작한 글을 금일(일요일) 완성해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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