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 Nov 07. 2022

주황색 오렌지 주스

그때는 간절했고, 이제는 추억이다.

어릴 적, TV 드라마를 볼 때 등장인물이 냉장고 문을 열어 오렌지 주스가 들어있는 반투명의 병을 꺼내어 주스를 컵에 따라 마시는 장면을 종종 보았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은 '부잣집 사람들은 병에 든 오렌지 주스를 항상 냉장고에 두고 사나 보다.', '서울 사람들은 간식으로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구나.'였다. 가끔 동네 슈퍼에 과자를 사러 가면 드라마에서 본 그 오렌지 주스가 빛바랜 박스에 세트로 포장되어 진열되어 있었고 또 아주 가끔은 우리도 저 주스를 사서 마시자고 어머니께 졸라댄 적도 있었다. 물론 사 주신적은 없었다.


명절 선물로 드라마 속 주스 선물 세트를 받았던 기억이 서너 번 정도 있다. 언니와 동생은 먹는 입이 짧았던 탓에 별 관심도 없었지만 나는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여닫으면서 병 채로 입에 대고 몇 모금씩 마신다는 게 반나절도 안 되어 한 병을, 하루를 겨우 넘겨 두 병을 모두 해치우기 일쑤였다. 돌이켜보건대 큰 딸과 아들의 입 짧음과는 반대로 귀신같이 찾아내고 알아서 챙겨 먹는 둘째인 내가 어머니는 얼마나 야속했을까.


지금은 음료수라고 하면 커피와 물 이외엔 내 돈으로 사지도 않거니와 누군가가 마시라고 음료수를 권해도 받기만 할 뿐 포장은 뜯지 않는다. 한켠에 살짝 밀어둘 뿐이다. 주황색의 오렌지 주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때는 왜 그리도 간절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의 입맛도 변한다고는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단지 그 주스가 간절했던 어린 시절에는 우리 집 형편이 녹록지 않았기에 '간식'이라고 하는 것을 떠올리는 것도, 게다가 반투명 병 속의 주황색 오렌지 주스는 크나큰 사치였으리라. 또한 그때의 가난을 떠올려 보라면 나는 주황색 오렌지 주스에 대한 갈망의 마음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도시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