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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Nov 20. 2022

주말 일상

주말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휴(休)식의 의미가 가장 많이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주말이면 알람을 꺼두고 시간제한 없이 잠을 자도 되고, 근교에 드라이브 다니며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나 카페가 보이면 멈추고 즐길 수도 있다. 반면 밀린 집안일도 처리할 수 있고, 오랜만에 주변 지인을 만날 수도 있다.


나에게 주말은...... 금요일 퇴근길에 항상 다짐하는 바가 있다. '주말에는 무조건 쉰다.' 물론 그 다짐의 메시지에는 '그러나'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욕실 청소와 주중 끼니를 이어갈 밑반찬 만들기와 장보기는 예외로 한다. 이 두 가지가 주말 이틀 내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다음 일주일이 찝찝한 마음으로 피곤해진다.


남편은 교대근무를 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아침과 점심 식사를 집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매일 출근해야 하니 전업주부만큼 남편의 식사를 준비해 두기는 사실상 어렵다. 매일 김밥을 싸서 아침으로 먹고, 점심으로 먹으라고 도시락을 싸 두기도 해보았고, 또 물릴 때 즈음 아침을 계란물 적신 토스트를 먹기도 하고, 점심 반찬으로 계란말이, 소시지 구이, 김치 등을 준비해 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남편은 반찬 투정이라고는 한 번도 없었고, 그저 밥을 챙겨준다는 고마움을 종종 표시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알아서 밥을 챙겨 먹지 못하나? 하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남편은 집 청소와 빨래 세탁을 전담하고 있고, 혼자서 챙겨는 먹지만 좀 부실한 것 같아서 먹는 데 있어서는 내가 좀 더 관여하는 편이다.


밑반찬 준비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지만 지금껏 롱런하고 있는 우리 집 메뉴는 단연 나물비빔밥이다. 서너 가지나물을 만들어 놓으면 비벼 먹어도 되고, 비벼 먹는 게 물리면 나물을 반찬으로 두고 김치와 맛김을 곁들여 밥과 반찬으로 먹어도 된다. 또한 주말을 이용해 그 서너 가지의 나물을 넉넉하게 만들어 두면 주중 반찬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어마어마한 장점도 있다. 또 덧붙이자면 나물 비빔밥은 가지런히 세팅하면 근사하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시작된 나물 무치기, 나물 볶기는 욕실 청소와 더불어 내 주말 일과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먼저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점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멍 때리기, 책 읽기를 한 시간 가량 가지고, 오전 9시 30분에 즈음하여 마트에 도착한다. 과일, 나물 만들 채소, 아들 간식 만두, 쌈채소, 김밥 재료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도착해서 식구들과 아점을 먹는다. 설거지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두 곳의 욕실 청소를 시작한다.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욕실 청소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한다는 이야기를 더러 듣기도 했지만 나의 경우 두 번은 좀 버겁다. 대신 남편이 틈나는 대로 간단하게 변기와 주변 바닥 청소 정도는 물로 하기도 하지만 전용 옷으로 갈아입고, 세제 뿌려서 박박 문지르는 청소는 토요일에 내 손으로 직접 한다. 사실 욕실 청소를 해 놓지 않으면 다른 게 손에 잘 안 잡힌다. 반대로 해 놓고 나면 주말 일과가 술술 풀리는 느낌이다. (남편은 내가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다음엔 남편과 드라이브를 다니기도 하고, 아니면 내일(일요일) 만들 나물 재료를 다듬거나 하면서 오후를 보내기도 한다.


시금치, 머위, 콩나물, 애호박, 오이, 무. 초록초록한 채소들을 보면 기분 정말 좋다.


선택한 나물은 계절에 따라서 그때그때 바뀌기도 하지만 콩나물은 항상 고정이다. 지금은 시금치와 무가 맛있을 때라서 최근에 추가했고, 애호박과 오이도 거의 고정에 가깝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에는 나물을 다섯 가지 하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머위까지. 또 반찬으로 먹을 당근 샐러드를 만들었고, 아들의 주중 아침식사용 전복죽도 고정이다. 무청시래기를 사려고 집어 든 내 오른손을 내 왼손이 말렸다. 주말을 주방에 서서 다 보낼 참이냐고......


오십 중반의 남편은 결혼하고 20년이 다 된 지금껏 반찬투정을 한 번도 안 했다. 가끔 짜다 싱겁다 정도의 품평은 하지만 이 반찬 해달라, 저건 다음부터 안 먹는다 등의 표현은 없었다. 과식을 경계하지만 삼시 세끼 배꼽시계의 욕망은 꼭 지키려 한다. 지금껏 매년 건강검진을 해 오면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에 대한 지적도 한 번 없었고, 나물 반찬을 매일 먹어서 인지 늘 쾌변이라고 자랑(?)한다. 그 공을 나에게 돌리기도 하지만 밥을 먹을 때 늘 고마움이 묻어나는 표현을 해 주니 나도 더 챙기고 싶을 수밖에.


두 시간 정도 애쓰고 나면 결과물이 너무 만족스럽다. 


남편은 오늘 아침 퇴근을 하고 바로 남해 본가로 내려갔다. 아버님 떠나시고 나서 혼자 계신 어머님께 더 자주 찾아뵙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한 것 같다. 아들은 이제 2주 앞으로 다가온 기말 시험 준비로 방에서 자습하고 있다. 잠시 휴식시간에 나와서 과일 한 접시, 커피 한 잔 등의 간식 요기만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아들은 도서관이나 스터디 카페보다 본인 방에서 혼자 학습하는 것이 더 집중된다고 한다.) 그 속에서 나는 나물을 무치고, 볶는다. 전복죽을 끓인다. 과일을 준비한다.


나의 주말 일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장보고, 청소하고, 조리하고...... 특별한 이벤트는 없지만 또 어찌 보면 좀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일상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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