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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Dec 30. 2022

인사 발령, 그리고 이동

이제 2022년도 끝자락에 거의 도달했다. 사업평가는 11월 실적까지만 해당되기에 12월은 앞만 보고 달려온 그간의 시간과는 달리 여유가 느껴지는 달이기도 하다. 미뤄왔던 문서정리가 주를 이루고, 해를 넘겨 이월이 안 되는 휴가도 직원들끼리 안 겹치게 일정 짜서 소진한다. 올해는 처음으로 지점 직원들 전원이 함께하는 연말 회식도 했다. 늘 영업 실적에 고군분투하며 팽팽했던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그저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회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12월에는.


하지만 결코 비켜갈 수 없는 것, 본인 순서가 되었다 싶으면 긴장하는 것. 바로 인사 발령이다.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지점은 인사발령 문서 하나에 직원들의 희비와 당혹스러움, 놀람, 아주 드물게는 기쁨으로 뒤엉켜버린다. 빠른 속도로 마우스를 굴려가며 함께 일하게 될 동료들을 파악하고, 아직 문서 잉크도 다 마르지 않은 것 같은데 전입할 지점의 지점장님께 유선으로 인사를 드리고 있다.(이번에 내가 그랬다.) 몇 번이고 명단을 읽어 내려가며 한숨도 쉬고, 표현하기 뭣하니 속으로는 '앗싸라비아!' 하는 직원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 남게 되는 직원들은 누가 우리 지점으로 올 것인지 찬찬히 파악하면서 본인의 업무 위치를 예상해 볼 것이다.


나의 경우, 한숨 쉬며 실망했다가도 막상 새로운 지점에 적응기간을 거쳐 결국엔 잘 이어간 경우도 있었고, 또 쾌재를 부르며 만족하다가도 예상치 못한 복병으로 적응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사실 이번에는 지금의 지점에서 업무기간으로 만 3년을 채운 터라 당연 이동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해만 더 있고 싶은 아쉬움에 자기 평가서에도 노골적으로 "이동 원하지 않음"을 서술했고, 가까운 선배에게도 종종 표현했었는데, 나의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이동 대상 명단에 떡하니 내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잠시 '욱!' 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이동하게 될 지점의 지점장님께 인사 전화를 드렸다. 오래전 2년의 시간 동안 함께 일했던 분이어서 낯설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지점이고 지점장님은 조심스럽고, 어렵다고 느낀다.


이곳 조직에서 20년의 근무기간 동안 이번 발령을 포함하여 9번의 지점 이동을 가졌다. 발령 문서를 보면서 '가라고 하면 때가 된 것이고, 짐 싸서 가면 된다.'는 아주 순수한 생각으로 받아들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인사 발령 시즌이 되면 예민해지고, 곤두서게 되었다. 그리고 문서가 올라오면 그 속의 내용을 보고는 만족과 불만이 섞인 이런저런 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내가 느껴졌다. 결국 내가 바라던 결과면 만족이고, 뭔가 찜찜한 그림이 보이면 불만인 셈이다. 머리 쥐어짜가며 틀을 만든 인사 담당자에게 고마워하기도 원망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정작 인사 담당자는 한 지점 근속연수와 직급을 보고 분류하고 또 분류한 여러 직원들 중 한 사람으로서 나를 줄 세운 것뿐인데 나 혼자서 이분법적인 사고로 좋네, 싫네 하면서 북도치고 장구도 치고 그랬다.


그런데,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여러 번의 이동을 했으면서도 나는 왜 인사이동이 힘들게 느껴지는 걸까. 늘 어렵다. 결국엔 적응하고 어째 어째 2년 내지 3년의 시간을 이어갈 거면서 점점 그 횟수가 늘어갈수록 어렵다고 느끼는 정도도 커지는 것 같다. 내년이면 직장생활 27년째 접어드는 나름의 긴 시간을 잘 이어온 나인데......



첫 직장에서 3주 정도의 업무 연수를 받고 현장에 투입되어 사수선배와 2인 1조로 다닐 때였다.


"제가 하게 될 일이 많이 어려워요?"


선배는 불쑥 철없는 질문을 던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해주었다.


"일은 힘들게 없어. 설령 힘들더라도 다른 직원들의 협조나 도움 받아서 하면 다 해결되는 게 우리 일이야. 회사 생활은 사람이 힘든 거야. 인간관계를 두루뭉술하게 잘 이어가면 어려운 일도 도움 받아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반대로 인간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별거 아닌 것도 힘들게 느껴지는 게 회사 생활이야."


난 아직도 그때 사수선배와 대화를 주고받았던 느낌이 선명하다. 그리고 선배의 말은 지금껏 나의 직장 생활에서 지침처럼 새겨지게 되었다.



그렇다. 인사이동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다. 이래 봬도 이곳 조직에서 20년을 근무한 나인데, 그 노련함이 없겠는가. 그리고 업무에 대한 자신감의 강약은 있었어도 주어진 업무에 대해 낙오도 없었는데...... 어찌 보면 새로운 멤버들과의 융합과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을 아직도 긴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잘 지내온 지점을 떠나 또다시 새로운 구성원들과 잘 지내야 한다는 부담감, 또 그간 고객들과 다져온 업무적 라포(rapport)를 다 접고 새 고객들을 관찰하며 다시 만들어가야 한다는 부담감. 나에겐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숙제로 느껴졌기에 내 순서가 되었다 싶은 인사발령 때가 되면 예민해졌나 보다.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 혼자 남아 자리 정리를 했다. 나 때문에 퇴근이 늦어지는 당직 선배직원은 연신 괜찮으니 천천히 정리하라고 나에게 배려해 주신다. 예전에는 꽁꽁 싸 짊어지고 두세 박스씩 만들어 냈는데, 횟수를 더하면서 박스 개수가 줄어들고, 박스 사이즈 마저 작아지더니, 올해는 작은 사각 부직포 가방 하나에 다 담긴다. 무게도 차 없이 들고 갈 수 있을 정도다. 이런 간소함, 정말 좋다. 늘 자리 정리를 한 번 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 이동 때가 되어서야 책상이며 서랍을 탈탈 털고,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게 된다. 명목은 이 자리를 쓰게 될 다음 직원에 대한 배려이지만, 그 속에는 이곳에서 내가 가진 미련과 아쉬움, 시원함, 고마움을 다 정리하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직원이 되어야 할 텐데......

작아져라...... 더 작아져라.

당분간은 새 지점에서 적응하느라 우왕좌왕하겠지.

하지만 어느새 녹아있는 나를 알아차릴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짐을 싸는 나를 마주할 것이다. 그때는 더 간소하게, 가볍게 움직이기를......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과 고마움이 뒤섞인 인사이동 시즌에만 가질 수 있는 복합적 심리를 다시 한번 느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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