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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Jan 23. 2023

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k.

요 며칠 많이 추웠지. 수업 마치고 귀가하는 너의 모습에서 빨개진 코와 볼을 볼 때면 어느 정도의 추위인지 가늠할 수 있단다. 엄마는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겨울을 좋아했고, 겨울이라서 느낄 수 있는 차가운 계절의 기운을 좋아했어.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겨울의 추위가 살짝 무서워졌어. 기온이 내려가면 뒷목도 뻣뻣해지고 머리 현기증도 느껴지거든.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바람과 아프면 안 된다는 의무감이 늘 자리하게 되는 50을 바라보는 엄마가 되어간단다.


k.

오늘 엄마는 은행 창구에서 일하면서 고객으로 거래하러 온 중고등학교 시절 동창을 만났어. 그 동창은 엄마를 모르고, 엄마는 그 동창을 알아.(그렇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도 엄마를 알고는 있었어.) 왜냐면 그녀는 학교 다닐 적,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소위 '엄친딸'이었거든. 아마 엄마 동기들 대다수가 그녀를 잘 알고 있었거나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거라고 생각해. 


학창 시절에는 그녀가 참 부러웠어. 공부에 있어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고 모든 선생님들의 관심을 독차지했었거든. 그 동창에 대한 집중된 관심을 질투하는 사람, 부러워하는 사람, 비아냥 거리는 사람 등 다양한 감정으로 비라보았지만 엄마는 부러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단다. 왜 부러웠냐면......


"공부를 잘하니까!"


공부를 잘하니 부러움도 질투도 비아냥도 다 그녀가 견뎌내야 할 몫이고, 또 그 '몫' 자체가 마냥 부러웠어.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저 그런 엄마의 성적이 때로는 아쉽기도 하고 그랬단다. 참! 걔는 이름도 참 예뻤어. 작금의 작명 트렌드에도 잘 어울릴 만큼. 사랑 듬뿍 받은 부잣집 손녀딸 느낌의 이름이란다.




"좋은 대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해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유명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

"좋은 직업을 가지거나 유명회사에 취직하면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

"좋은 대학교를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지거나 유명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시집을 잘 갈 수 있다."


엄마 학창 시절 학교에서, 집에서, 부지불식간 대중매체를 통해서 자주 들었던 인생 조언(?)이란다. 마치 공식처럼 학력과 학벌이 엄마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면서 결정지어 준다고 믿었던 거지. 그 믿음은 엄마로 하여금 학습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동했었어.


공부를 열심히 하자. 좋은 대학교에 가야 하니까.

그러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으니까.

결국 내 인생은 성공할 테니까.


엄마는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학습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당혹스러웠던 입시 성적과 극도로 기울어진 가산은 엄마가 전문대학으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합당하고, 자명한 이유가 되었어.


내 인생은 망했다!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으니까. 그다음부터는 도미노처럼 무너지면서 결과적으로 내 인생이 망할 수밖에 없는 순서를 복기하며 엄마 스스로가 낙인을 찍었단다. 어떤 탓도 없었어. 그저 현재의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엄마가 어릴 적부터 집에서 학교에서 TV드라마를 통해 내면 속에 고정시켜 온 공식만을 끄집어내고서는 막막해했거든. "나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면서 말이야. 합격증을 보이며 즐거워하던 급우들 사이에서 엄마 스스로를 달래던 기억도 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에 맞지도 않은 주제넘는 그런 걱정들을 해 가면서 말이야.


막상 전문대학을 가 보니, 사회생활을 하다가 온 20대 중반의 학우들이 꽤 있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력이 필요해서, 배움이 필요해서, 자격이 필요해서 등 여러 이유로 왔더구나. 그들은 성숙했고, 다양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런 환경 한가운데 놓인 엄마는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고 있었단다. 자격 면허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것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직업을 탐색했어. 그리고 언제쯤 4년제 대학교에 편입해서 이 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을지도 교수님과 면담도 하고 말이야. 엄마의 그러한 변화는 단순히 "좋은 4년제 대학교"라는 타이틀이 필요해서가 아니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온 엄마는 그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형성했던 공식을 해체시키고 있었던 거야.


k.

엄마는 22살에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교수님의 추천으로 (앞서 표현한)"유명회사"에 취직했단다. 그때는 유명회사라서가 아니고 취직했다는 기쁨, 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엄마를 행복하게 했어.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하루아침에 좁디좁은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며 전전긍긍하던 엄마 식구들은 그나마 엄마와 언니(k의 이모)의 취직으로 수입을 마련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몇 년이 지나서는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도 있었어. 짧으나마 5년을 근무하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지만 엄마에게 그곳 첫 직장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감사한 곳이고 소중한 곳이란다.


금융기관이라는 전공과도 첫 직장과도 전혀 관련 없는 직종으로 옮기고 나서 엄마는 적응하느라 한동안 힘들었어. 아주 독립적인 공간에서 일하다가 개방된 곳에서 매 순간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 숫자에 약한 엄마가 단순하지만 숫자 계산을 틀림없이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힘들어했던 대표적인 이유였던 것 같아.


어느 날부터인가 고객으로 대면하는 사람들 중 중고등학교 동창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었어. 알아차리는 순서도 다양했어. 첫째는 엄마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 둘째는 엄마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 셋째는 서로 알아는 보는데 동시에 모르는 척하는 사람.


첫째의 경우가 꽤 많았어. 은행창구에서 일하는 엄마를 보고 의외라는 반응, 어울린다는 반응, 또 때로는 부러워하는 반응...... 여러 리액션을 보면서 그들의 근황과 그들과 연결돼 있는 다른 동창들의 근황도 들을 수 있었지. 몇몇의 상황이 일반화될 수는 없지만, 동창들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들었던 그들의 상황은 어릴 적, 10대 시절의 엄마 머릿속에 철저하게 꽂힌 채 "좋은 대학교"로 시작해서 산출되던 "성공 인생"의 공식을 깨부수어 주었단다. 


앞서 고객으로 마주했던 그 동창은 사실 엄마가 첫 직장에 취직을 하면서부터 거리에서 가끔씩 봐 왔어. 옷차림으로 봐선 직장생활을 하는 것 같지 않았고, 학생도 아닌 것 같았지. 그렇다고 결혼을 한 것 같지도 않았고...... 엄친딸이었던 그녀가 궁금했어. 엄마가 기억하는 그녀는 학창 시절 S대학교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다는 것 까지가 전부였거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엄마가 지금의 직장에 근무할 때 다른 동창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야기는 재수 시절 너무 힘들어서 대학 진학 자체를 포기했다는 거야. 그녀는 엄마가 근무하는 지점 앞 커피숍에서 출근하듯 제일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저녁까지 있는 모습을 종종 보였어. 아마도 매일 그런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았고, 7년이 지나 엄마가 지금의 지점에 다시 발령받아 왔을 때에도 여전히 그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었어. 가끔은 그녀 아버지로 추정되는 예금주의 통장을 지니고 와서 은행창구에서 1,20만 원의 현금을 인출하곤 했어. 


엄마는 그 동창이 엄마의 존재를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엄마를 알고 있었더라. 그녀가 먼저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엄마를 보며 아는 척했지만 엄마는 끝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으로 상투적인 업무만 이어갔거든. 그 뒤로는 그녀도 엄마도 그렇게 직원과 고객으로만 마주했을 뿐이야. 엄마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녀에 대해 그 어떤 감정도 없었는데...... 


k.

장황하게 여러 에피소드를 늘어놓고서 엄마는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걸까. 솔직히 이렇게 쓰면서도 간결한 정리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엄마는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아주 궁금해했어. 그 궁금함 속에는 설렘도 있었고, 불안함도 있었는데, 불안함이 차지했던 자리가 더 컸던 것 같아. 설렘이라면 어떤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 아이는 몇 명을 낳게 될까. 불안함은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까, 난 과연 제대로 독립할 수 있을까. 설렘도 불안함도 내용의 결이 비슷했지.


엄마가 느끼기에 엄마의 10대나 지금 k의 10대나 "좋은 대학교"는 "성공 인생"과 관련 어구로 아직 남아 있다는 거야. 누군가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욱 촘촘하게 엮여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비례 관계가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뗄 수는 없다고 하기도 해.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어느 곳에 놓여 있든,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내 인생의 성공은 내가 만들어가고 결정하는 것이라는 거야. "좋은 대학교"가 주는 사회적 신뢰도,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이미지는 내가 계획하고 노력하고 나아갈 때 플러스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지 학교 그 자체가 내 인생을 결정해 주고 보장해 줄 수 있는 기능도, 의무도 없단다.


k.

엄마가 (너보다 30년 먼저) 살아보니 나의 미래는 외부의 조건이 결정지어 주진 않아. 그 조건들은 거들뿐, 미래는 스스로가 견고한 집을 짓듯 천천히 꾸준하게 나아가는 지금이 내 모습이 내 미래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지금 너의 노력이 "좋은 대학교"를 진학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곳에 가서도 또 그러지 못한 대학교에 가더라도 주위를 둘러보고 생각과 시야를 확장하면서 너를 위한 계획을 발굴하고 나아가길 바라. 그 속에서 너의 심신 건강을 늘 돌보면서 네 삶을 외부가 아닌 너의 선택과 결정으로 영위해 나가는 인생이 "성공 인생"아닐까. 아무리 대단한 사회적 타이틀을 가진다고 해도 자신의 심신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야. 추상적이지만 이 메시지를 너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긴 서두를 늘어놨구나. 마지막으로 엄마가 매일 아침 올리는 기도를 알려줄게.


널 항상 응원한단다.


"하늘이시여.

오늘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이렇게 안전하고, 건강하고, 현명하고, 행복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현관문을 통해 나서는 가족 모두가 저녁에 저 현관문을 통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k, 다 잘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심성이 바르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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